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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왼쪽)는 로스앤젤레스 시내 중심가의 부자 동네로 꼽히는 '벨 에어' 저택에서 최재천 교수를 맞았다.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이 다재다능한 석학은 현대문명이 저지르는 무절제한 환경파괴의 위험을 경고했다. 이 대담은 8월 9일 이뤄졌다. LA중앙일보=임상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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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인도양 연안 국가를 덮친 쓰나미(지진해일)에 이어 2005년 여름 두 차례의 강력한 허리케인이 미국을 강타했다.
파키스탄은 지진으로 순식간에 8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연 재앙의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과 우리 인간의 무차별적 환경파괴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세계적인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근저 '문명의 붕괴'(원제 Collapse)
에서 아나사지.마야 등 한 시대를
풍미한 화려한 문명이 몰락한 배경에는 어김없이 무절제한 환경파괴가 있었음을 경고한다.
'총, 균, 쇠' '제3의 침팬지' '섹스의
진화' 등의 저서로 우리 독자에게도 친숙한 제러드 다이아몬드(68) 교수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만나고 싶어하던 석학 중 한
사람이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시내로 접어드는 차창 밖으로 진기한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길가 가로등마다 'Collapse'라는
단어를 굵게 써붙인 포스터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Collapse'는 다이아몬드 교수가 최근에 출간한 저서의 제목이기도 해서 유심히
올려다보니,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에서 그의 저서 발간을 기념해 특별전시회를 연다는 광고 포스터였다. 이튿날 나는 곧바로 자연사박물관으로
달려갔다. 자연사박물관까지 나서서 온 도시가 한 대학교수의 신간 출간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고 있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말로 '멸망' 또는 '몰락'쯤으로 번역하면 좋을 법한 그의 근저 '문명의 붕괴'(김영사에서 번역본 출간 예정)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총, 균, 쇠'의 속편 격이다.
'총, 균, 쇠'가 지난 1만5000년간의 인류 역사를 재분석해 유라시아인이
오늘날 인류 문명을 주도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과학적 원인을 설명한 책이라면, '문명의 붕괴'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역사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멸망의 순서를 밟고 있는 '어리석은' 사회에 대한 경고와 분석도 담고 있다. 그는 사회 붕괴의 원인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분석한다.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의 위기 대처능력 저하가 그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몰락한 문명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스터 섬의 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때 울창했던 열대림을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들판으로 전락시키며 거대한 석상만 문명의 흔적으로 남겨놓은 채 정작 그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은 절멸해 버린 이스터 섬의 멸망
과정은 오늘날 지구촌 전체가 대면하고 있는 상황과 소름이 끼치도록 흡사하다. 이스터 섬의 경우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또는 우호적 관계는 붕괴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
"교통수단과 인터넷의 발달, 국제 교역과 세계화로 지구의 모든 나라는 제한된 자원을 놓고 무한경쟁을 벌이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지구는 이를테면 우주의 바다에 떠 있는 이스터 섬입니다. 이스터 섬의 역사는 지구촌 전체의 문명이 자체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이스터 섬의 경우는 물론 마야.아나사지.바이킹.그린란드 등 몰락한
문명은 한결같이 심각한 생태환경의 붕괴를 경험했다. 그렇다면 결국 환경파괴가 가장 궁극적인 문명 붕괴의 원인이 아닐까?
"환경파괴가
가장 중요하거나 유일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몰락한 문명은 예외없이 환경을 파괴했다는 사실입니다. 공통분모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끊임없이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이념 아래 우리 산야 곳곳을 할퀴고 있는 굴착기의 발톱을 떠올렸다.
환경파괴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끝내 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인류의 역사에서 생태환경을 잘 보전하면서도 문명을 꽃피운 경우는 없는가? 다이아몬드 교수는 가장 훌륭한 성공
사례로 일본 도쿠가와 사회를 꼽는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쇼군이 산림을 보전하는 것이 국민은 물론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환경파괴 등 사회 붕괴의 요인이 발생할 때 그에 대처하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능력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위정자의 몰이해와 오판으로 사회가 몰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인간 사회에 언제나
존재하지요."
'문명의 붕괴'에는 '사회들은 어떻게 실패 또는 성공을 선택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던 이스터 섬과 달리 우리에게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못지않게 다른 나라와의 적대적 또는 우호적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지금
우리나라를 동북아 거점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잠시 주춤한 듯싶던 일본이 또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고,
머지않아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설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한국 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이기에 반드시 어떤 해법을 제시하리라 믿었다. 조금도 주저없이 나온 그의 대답은 "핀란드를
벤치마킹하라"는 것이었다.
"핀란드는 역사의 상당 기간 강대국 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신에 맞는 발전의
모델을 개발해 왔습니다. 늘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한국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주변 강대국에는 탁월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입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마치 내 질문을 예견하고 미리
답변을 준비한 사람처럼 당시 핀란드 왕들의 이름까지 대며, 언제 어떻게 러시아 왕을 찾아가 굴욕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실리적인 외교적 이득을
얻어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68세의 나이답지 않은 그의 기억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어서 중국
사회가 반드시 성공의 길을 선택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혁명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딛고 뒤늦게나마 부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아직도, 그의 표현을 빌리면 '너무 심하게 뒤뚱거린다'는 것이다. 거인의 뒤뚱거림은 막상 무너졌을 때 그 자신에게도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지만 주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중국이 내뱉는 온갖 기침과 가래가 상당
부분 우리 뜰에 떨어지고 있는 줄 잘 알면서도 가장 큰 수출 대상국이 돼버린 중국에 제대로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경제와 정치가 더 복잡하게 얽히기 전에 우리나라의 생태학회가 일본.중국의 생태학회와 EAFES(East Asian
Federation of Ecological Societies)라는 생태연합을 조직해 학문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알려줬더니 대단히
훌륭한 노력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그의 다음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인간이 왜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쓰고 있다고 했다. 2010년께 나올 것이란다. 끊임없이 역사학과 과학의 통섭을
시도하고 있는 그의 학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환경생물학 등의
대가 '21세기 르네상스인' 평가 저서 '총, 균, 쇠' 퓰리처상
21세기를 사는 르네상스인이다. 명색이
학자라고 으스대는 우리 대부분은 한 분야에서도 제대로 이름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무려 세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에 오른 학자다.
1937년 태어나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66년부터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의과대학 생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40대 초반에 이미 미국립과학한림원 회원에 추대될 정도로 생리학계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실험실에서
생리학 연구를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새의 생태와 진화에 관한 연구를 계속, 진화생물학계에서도 일찌감치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한편
환경 문제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70년대부터는 환경생물학 분야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지리학과로
자리를 옮겨 인간생태학과 생물지리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네이처.디스커버리.내추럴 히스토리 등 과학잡지에 고정적으로 기고하며, 93년 '제3의
침팬지'를 시작으로 '섹스의 진화''총, 균, 쇠'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중 '총, 균, 쇠'는 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1년 이상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최재천 교수는
인터뷰를 맡은 최재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개미 제국의 발견'등의 책을 썼다.
2005.10.26 05:5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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