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對北 관련 자료

[개성관광 화보―르포] 54년만에 달랜 실향의 한…분단이후 처음 열린 개성관광길

鶴山 徐 仁 2005. 8. 27. 06:02
[개성관광 화보―르포] 54년만에 달랜 실향의 한…분단이후 처음 열린 개성관광길


[쿠키르포] ○…“55년전 바로 이 자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윤정덕(71·서울 마포) 할아버지는 선죽교 다리에 앉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들고 눈시울을 붉혔다. 6·25 동란이 나기 석달 전. 윤 할아버지가 개성중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16세때 친구,선배와 선죽교에 놀러왔다 찍은 사진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선죽교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살았더랬다. 선죽교는 고려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에 살해된 돌다리로 ‘선지교’로도 불리던 다리. 피의 다리라지만 윤 할아버지에겐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장소다.

윤 할아버지는 “사진 속 친구,선배가 모두 살아있다”며 “친구는 미국 시카고에 살고 선배는 서울서 치과를 하는 데 꼭 한 번 다시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다.

분단이후 개성관광길이 처음으로 열린 26일 실향민들은 아이가 돼 버렸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1·4후퇴때 사흘만 내려갔다 오겠다며 짐을 싸들고 나간 지 54년여만에 귀향의 소원을 풀었다. 하늘도 알았는 지 전날 사납게 내리던 장대비는 오 간데 없고 따사로운 햇볕으로 실향민들을 감싸 안았다.

새벽 6시 경복궁에서 출발해 개성에 도착하니 2시간30분이 조금 지났다. 두 차례의 검문을 거치고 휴전선도 지났건만 서울에서 대전 만큼이나 가까웠다.

개성의 첫 관광지는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지금은 고려박물관으로 바뀌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라며 탄성이 곳 곳에서 터져나왔다. 개성 고려중학교를 나와 6·25전쟁이 나기 전 남으로 내려온 손충식(87)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라면서 “내 키만하던 나무가 훌쩍 커버린 걸 보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고령의 송한덕(98·충남 온양) 할아버지는 선죽교를 지나 숭양서원에 들어가면서 “여기만 와봤어도 소원이 없다 했다”라며 “보고 싶은 사람들은 다 저 세상으로 가 만날 수 없어도 땅을 밟은 것 만으로도 족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점심시간. 정갈한 개성식 12첩 반상으로 차려진 오찬에 남측 사람들은 또 한 번 감동했다. 식사가 끝난 뒤 찾아간 곳은 박연폭포. 절경 중에 절경으로 불리는 북의 천연기념물 답게 장관을 뽐냈다. 저마다 창을 부르며 흥겨워하는 동안 어느새 개성관광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북측의 한 여성 안내원은 “개성공단이 들어서고 많이들 찾아옵네다. 통일로 가는 길 아니겠습네까”라고 뿌듯해했다.

개성 시범관광은 다음달 2일과 7일 두 차례 더 남아있다. 인원은 한번에 500명씩이며 관광요금은 왕복교통비와 점심값 등을 포함해 1인당 19만5000원이다.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은 “조만간 본관광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측과 협의해 관광비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개성=이경선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