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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綠野]프로이트 [Freud, Sigmund, 1856.5.6~1939.9.23]

鶴山 徐 仁 2005. 8. 7. 19:05

 

 

프로이트 (Freud , 1856-1939)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856년 5월 6일, 오늘날의 체코의 프라이버(Pribor)인 모라비아(Moravia), 프라이버그(Freiberg)에서 아버지인 야콥 프로이트(Jacob Freud)와 그의 세 번째 아내 아말리아(Amalia, 남편보다 20살이나 어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기(Sigi)’-친척들이 그를 부르던 이름이다- 아래로 7명의 형제, 자매들이 태어났다.
그의 가족 구성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배다른 형제, 엠마뉴엘(Emmanuel) 과 필립(Philipp)은 프로이트의 어머니와 거의 같은 나이였다. 프로이트는 Emmanuel의 아들인 그의 조카 존(John)보다 약간 어렸다.
유대인 모피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프로이트의 가족은 독일의 라이프찌히(Leipzig)로 이사했다(1859). 그리고 비엔나(Vienna)에 정착했다(1860). 프로이트는 비엔나에서 1938년까지 살았다.  
프로이트는 여덟살에, 그는 세익스피어를 읽었고, 청소년기에는  자연에 대한 괴테의 에세이에 관한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다.
1877년에 그의 이름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로 줄여 바꿨다.
이전에 법률에
  대해 공부할 것을 생각했으나, 비엔나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 의학분야에서 직업을 갖기로 결정했다(1873). 학생으로서, 프로이트는 Ernst von Breuer의 지도로 중앙신경체계(the central nervous system)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1876). 그리고 1881년에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테오도르 마이너트 정신의학 클리닉(The Theodor Meynert's Psychiatric Clinic)에서 일했다(1882-83). 후에 파리 Salpetri에서 샤르코(Charcot)의 지도하에 최면요법을 연구했다(1885).
1884년부터 1887년까지 프로이트는 코카인에 대한 몇 개의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1886년에 마르타 버나이스(Martha Bernays)와 결혼했고, 7명의 자녀가 태어났다.(Mathilde, 1887; Jean-Martin, 1889; Olivier, 1891; Ernst, 1892; Sophie, 1893; Anna, 1895). 그의 히스테리아에 대한 관심은 브로이어(Breuer)와 샤르코(Charcot)의 최면술에 자극받아 생긴 것이다(1887-1888). 프로이트는 1891년에  Berggasse 19 의 공동주택으로 이사했다. 그 곳은 80년이 지난 1971년에 프로이트 비엔나 박물관(The Freud Museum Vienna)으로 바뀌었다.

링크(Links)

정신분석학에 일생을 바친 프로이트의 연보
185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4살때에 빈으로 이주 정착.
1865년 중등과정을 거쳐서 1873년 빈 대학 의학부에 입학.
1882년까지 생리학연구소에서 활동.
1877년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논문 제출.
1881년 의학박사가 되어서 1885년까지 빈 종합병원에서 뇌해부학을 집중적으로 연구.
1885년 파리의 살페뜨리에르병원에서 신경질환의 대가인 샤르코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활동.
1886년 빈에서 개업하여 신경질환 환자 치료.
1887년 최면암시요법을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
1888년 동료인 브로이어와 함께 카타르시스요법을 통한 히스테리치료에
최면술을 사용하다가 점차 자유연상기법을 시도.
1893년에서 1989년까지 히스테리, 강박증, 불안에 관한 연구와 짧은 논문 다수 발표.
1985년 브로이어와 함께 치료기법에 대한 증례연구와 설명을 담은
[히스테리 연구] 출판, 감정 전이(轉移)기법에 대한 설명이 처음으로 소개됨.
1986년 <정신분석>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소개함.
1897년 유아성욕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식하게됨.
1900년 [꿈의 해석]출판.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정신과정, 무의식, 쾌락원칙에
대한 프로이트의 역동적인 관점이 처음으로 자세하게 설명됨.
1901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출판, 이 책은 꿈에 관한 저서와 함께
프로이트의 이론이 벙적인 상태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정신생활에까지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
1902년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발표, 유아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성적 본능과정을 처음으로 추적함.
1909년 <꼬마 한스>라는 다섯살바기 어린이의 병력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어린이에 대한 정신분석 시도, 이 연구를 통해 성인분석에서
수립된 추론들이 특히 유아의 성적 본능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및
거세 콤플렉스까지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함.
1910년 <나르시시즘>이론 처음으로 등장
1912년 [토템과 타부]출판, 정신분석학을 인류학에 적용한 저서임.
1915년에서 1917년까지 [정신분석 강의] 출판.
1918년 [늑대인간] 출판.
1919년 나르시시즘 이론을 전쟁 노이로제에 적용.
1920년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출판. 이 책에서 <반복강박>이란 개념과
<죽음의 본능이론>을 처음으로 소개함.
1926년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출판, 불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룸.
1930년 [문명속의 불만] 출판, 이 책은 죽음의 본능의 표현으로 간주되는
<파괴본능>에 대한 프로이트의 본격적인 연구서임.
1934년 [인간모세와 일신교]출판, 프로이트 생종시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
1938년 [정신분석학 개요]집필, 미완성의 마지막 저작인 이 논문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음.
1939년 영국 런던에서 8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함.

 

프로이트 [Freud, Sigmund, 1856.5.6~1939.9.23]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의 창시자.
국적 오스트리아
활동분야 심리학
출생지 오스트리아 모라비아(현재 체코) 프라이베르크
주요저서 《꿈의 해석》(1900)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물관 / 1891년에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병원을 시작한 곳으로 그가 영국에 망명한 1938년까지 이곳에서 사례를 연구하고 집필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꿈의 해석>도 이곳에서 쓰여졌다. 1971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장되어 현재는 그의 개인 소장품, 도서관,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라비아(현재 체코) 프라이베르크 출생. 빈대학 의학부 졸업 후 얼마 동안 뇌의 해부학적
연구, 코카인의 마취작용 연구 등에 종사하였다. 1885년 파리의 사르베토리에르 정신병원에
서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였고, 1889년 여름에는 낭시(프랑스)의 베르넴
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보게 되어,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J.브로이어는 히스테리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
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후에 그가 수립
한 심리학의 체계까지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00년 이후 그는 꿈 ·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
립하였고, 또 1905년에는 소아성욕론(小兒性慾論)을 수립하였다. 그의 학설은 처음에는 무시
되었으나, 1902년경부터 점차 공명하는 사람들(슈테켈, 아들러, 융, 브로일러)이 나타났으며,
1908년에는 제1회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개최되어 잡지 《정신병리학 ·정신분석학연구연보》
(1908∼1914) 《국제정신분석학잡지》 등이 간행되었다. 또 1909년 클라크대학 20주년 기념
식에 초청되어 강연한 일은 정신분석을 미국에 보급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
전 후 사변적 경향을 강화하여 이드(id) ·자아 ·상위자아(上位自我)와 같은 생각과,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설을 내세웠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스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하고, 이듬해 암으로 죽었다.

20세기의 사상가로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으며, 심리학 ·정신의학에서뿐만 아니
라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교육학 ·범죄학 ·문예비평에도 큰 영향을 끼쳤
다. 주요저서에는 《히스테리의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일상생활의 정신병리》
(1904) 《성(性)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 《토템과 터부》(1913) 《정신분석입
문》(1917) 《쾌감원칙의 피안(彼岸)》(1920) 《자아와 이드》(1923) 등이 있다.
 


 

 


 
가져온 곳: [행복/사랑/성공/예술/詩/經營/여행]  글쓴이: 綠野GreenField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