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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綠野]프롬 Fromm, Erich

鶴山 徐 仁 2005. 8. 7. 19:04
프롬 [Fromm, Erich, 1900.3.23~80.3.18]
美國의 新프로이트파의 精神分析學者·社會心理學者.
國籍 美國
活動分野 心理學
出生地 獨逸 프랑크푸르트암마인
主要著書 《自由로부터의 도피》(1941)
 

프롬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은 1900년 3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났다. 프롬의 양친은 모두 유태인이였다. 프롬의 양친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 였으며, 생활도 넉넉한 편이였다. 외아들로 태어난 프롬은 그의 이런 가족적 상황으로 외롭고 숫기없이 자랐고, 일찍부터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의 흐름에 민감했다.

프롬은 '사람들은 어째서 각양각색의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어린 시절 자신의 최대 관심사였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롬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두 가지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그가 일생동안 붙들고 씨름한 문제의 씨앗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프롬이 열두살 때 겪은 사건에서 비롯 되었다. 어떤 아름다운 아 가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따라죽은 것이였다. '아름다운 젊은 아가씨가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보다 같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하고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프롬이 보기에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고 아버지는 늙은 노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결국 이 사건은 프롬에게 '사람은 왜, 어떻게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하는 심리학적인 문제 의식을 심어 준 셈이였다. 뒷날 프롬의 이 의문에 해답을 던져준 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였다.

프롬은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구약성서를 탐독했다. 프롬은 그중 특히 이사야,아모스,호세아의 예언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랑과 우애가 충만 하리라는 희망을 제시한 이 예언서들이 특히 프롬의 마음을 사로잡은데는 까닭이 있었다. 독일은 반유대 감정이 강한 기독교 사회였다. 프롬은 그 속에서 유대인, 비유대인 사이에 존재하는 적개심과 배타심,갈등과 분쟁을 겪으며 자라났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의좋게 살아갈 수 없는 걸까?'라는 염원을 품게 되었고, 성서의 예언서들은 '세계평화, 세계 동포주의'라는 전망을 통해 프롬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주었던 것이다. 이 문제 의식은 앞의 심리학적인 문제에 비해 상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 할 수 있는데 훗날 해답을 준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이였다.

1914년 여름 1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세계대전은 조숙하고 꿈많던 프롬 에게 뼈저린 현실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쟁이 지속된 몇년간 프롬은 비합리적인 광기로 사람들을 내모는 집단 히스테리를 목격하였다. 평소에는 선량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전쟁을 찬양하였고, 거짓약속, 기만적인 선전, 말뿐인 평화제의, 성의없는 강화회담이 난무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의 프롬은 인간의 엄청난 파괴 본능에 압도되고 말았다. 이 전쟁을 치르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더욱 절박하게 프롬의 머리에 박혀 버렸다.

1918년 전쟁이 끝났을 때 프롬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프롬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이어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을 폭넓게 공부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던지 스무 살 나던 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을 정도였다. 프롬은 열렬한 탐구끝에 마침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사상체계속에서 개인적, 사회적 현상을 둘러싼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프롬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 정신 분석 연구소의 일원으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연구에 몰두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와 심리학사이의 갈등적인 상황에서 프롬이 참여하고 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 이론을 기계적이고 교조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보완할 새로운 통찰을 얻어내려 하였다.

 

出處 :www.fifi.co.kr/kgb-cafe/psychology/fromm.htm   


 

 

                                                       프롬 Fromm, Erich (1900∼1980) :

                                                                            

독일계 미국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철학자로서 신프로이트주의의 주도적 제안자. 그는 인간주의적 정신분석을 창출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그 나름의 인간주의적 윤리학을 펼쳐나갔다. 프롬은 전통적인 심리분석학의 이론적인 위상을 재검토하면서 프로이트를 심리학과 윤리학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비판하였다. 그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규범들이 인간 활동의 조직화된 원리를 구성한다는 견해를 최초로 표현한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신경증의 문제는 분명히 윤리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경증은 도덕적 갈등에 의해 야기되곤 하는 도덕적 문제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이 도덕적 문제에 관한 프롬의 관심과 세계 속의 인간 실존의 도덕적, 윤리적 측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프롬의 노력을 낳게한 것이다. 프롬은 다양한 윤리적 개념을 재검토하면서 인간이 본래적으로 악하고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인간이 본유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졌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 규칙과 가치 판단이 상대적인 그늘을 점하는 실존주의적인 가치 취급을 비판하였다. 프롬은 사회적으로 내재하는 가치 개념(그 개념에 의하면, 사회적인 규범과 동일시되는 윤리학의 기준들은 인간 소외를 이끄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치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생물학적으로 내재하는 가치이론(이 이론은 인간 본성의 특정한 특성을 평준화시키고 이기주의와 경쟁을 삶에 있어서의 최고의 가치로 본다) 모두를 반대하면서, 인간주의적 윤리학(또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동시에 두 가지 잠재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낀다. 첫째는 '바이오필리아(삶에의 사랑)'으로 불리우는 것과 둘째는 '네크로필리아(죽음에 대한 사랑/necrophilia)'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그는 후자를 병리학적인 증상으로 보았다. 프롬에게 있어서 윤리학의 주요한 대안은 '바이오필리아'와 '네크로필리아'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자본주의적인 환경에서 네크로필리아의 기초는 급진적인 영웅주의, 억제할 수 없는 이기주의와 폭력(이는 개인들이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이라는 독특한 성격으로서 그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인간주의적인 윤리학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독특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이 윤리학은 개인을 강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그 자신의 삶의 모든 발현으로 끌어올린다. 그들은 '∼로부터의 자유(소극적 자유)'보다는 '∼를 위한 자유(적극적 자유)'의 달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사회적 능력을 개인들 간의 경쟁심보다는 공통의 사랑 위에 놓고자 한다. 프롬의 인간주의적 윤리학의 발전은 사회적인 관계의 주요 변형 대신에 개인주의적인 자기 깨달음을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주의적인 심리분석의 방법론을 그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프롬은 개인의 도덕-윤리적 향상을 수단으로 하는 사회의 정화라는 추상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유토피아의 구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프롬의 유토피아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도덕적 개념과 함께 개인의 깨달음과 인간 내적 자아의 달성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불교의 도덕적 정초화를 견지하고 있다. 프롬의 윤리적 견해는 다음의 저작들에 담겨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스스로를 위한 인간}(1947), {사랑의 기술}(1956), {인간의 마음}(1964), {희망의 혁명. 인간주의적인 기법}(1968), {인간 파괴의 이분}(1973), {소유냐, 존재냐}(1976).

 


 
가져온 곳: [행복/사랑/성공/예술/詩/經營/여행]  글쓴이: 綠野GreenField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