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원인 '69년 무혈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카다피가 반미 과격노선을 추구함에 따라 중동지역으로 국한되었던 국제 테러행위가 유럽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그 중에 미국인을 겨냥한 테러가 증가하면서 인명피해가 늘어나자 미국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익을 위해서 군사적 대응조치를 하기에 이르렀다. '79년 트리폴리 주재 미대사관에 대한 방화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과 리비아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어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85년 12월 로마와 비엔나에서의 동시 폭탄 테러사건은 양국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결국 미국은 '86년 3월 24∼25일에 1차 보 복공격으로 항공모함 3척을 투입하여 리비아의 SAM(지대공 유도 무기)기지 및 함정을 폭격하여 파괴시켰다. 그후 86년 4월 5일 서 베를린에서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리비아 소행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고 2차 보복공격으로 리비아 공습을 실시한다. |
작전 개요 미국은 리비아 공습을 위해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86년 1월부터 3개월간 인원을 선발하고 임무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해군과 연계한 가상 공격훈련을 지중해에서 실시하였으며 폭탄투하 연습은 터키에서 실시하였다. 단지 12분간의 폭격을 위하여 야간 비행의 어려움과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15시간 동안 5600마일을 비행해야 했으며 동원된 항공기는 무려 100여대에 달했고 60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하였다. 투입된 전력으로 장거리 비행편대의 공중급유를 위해 28대의 KC-10과 KC-135 그리고 F-111 공격기 24대(이중 6대는 예비기로서 첫 공중급유 후 되돌아감)와 EF-111 전자전기 5대(이중 3대 가 공격군에 참가하고 2대는 예비기)가 영국의 4개 기지에서 각 각 이륙하였다. 이후 지중해 항모에서 대공제압과 벵가지 지역 공격을 위해 A-6E 14대, A-7 6대, F/A-18 6대가 합세하였고, 추가 로 20여대의 F-14A와 F/A-18이 공중전투초계 임무를 담당하였 다. 공습은 02:00부터 12분간 2개 도시 5군데 주요 군사시설물에 대해 이루어졌으며, 공격개시 6분전에 EF-111을 이용한 리비아의 통신망과 레이더에 대해 전자교란을 실시하고, 공격개시 5분전에 A-7 및 F/A-18이 SAM제압 공격을 실시하였다. 표적 공격은 트리폴리 시가지에 위치한 알아지지야 병영(해외테러 지휘본부, 카다피 숙소)과 시디비랄 훈련기지(특공대 훈련소) 그리고 트리폴리 공항(테러공수용 5/IL-76 격파)에 대해 F-111 13대가 담당하였고, 벵가지시에 위치한 알줌마히리야 병영(알아지지야 예비사령부)과 베니나 공군기지(4/MIG-23, 2/MI-8, 2/F-27 항공기 격파)는 A-6 12대가 담당하였다. 공격에서 F-111 1대가 리비아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고 나머지 항공기는 무사히 귀환하였다. |
작전 분석 원거리에 위치한 영국의 기지에서 F-111을 투입한 것은 유럽에서 단지 F-111만이전 화면천후 주야간 공격 및 항법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어 야간정밀공격이 가능하고, 항모 함재기로는 공격전력이 부족하였다. 그리고 카다피 숙소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밀성을 갖춘 전력이 필요했으며 리비아 전투기의 대규모 반격에 대비하여 가능한 많은 대응전력을 항모상에 대기시키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영공통과 거부로(프랑스와 스페인 양국은 리비아에 대한 계속적인 경제적 이익 추구와 새로운 테러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비록 동맹국의 군사협력이라도 국익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단호히 거절하는 자주적인 주권을 행사하였다) 지브랄타와 지중해 연안을 거쳐 2800마일이나 우회해야 했기 때문에 15시간이 소요되었으며, 공격진입시 저고도 침투로 인한 4회의 공중급유와 공격후 귀환시 2회를 포함하여 총 6회의 공중급유 실시가 실시되었다. 미국이 이러한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일단 유사시 장거리 폭격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며, 야간공격 이유는 기습의 효과를 최대로 하면서 카다피 제거와 민간인 피해 최소화 그리고 정밀무기의 실험을 위해서였다. 정밀장비 장착항공기의 임무 포기율을 고려하여 6대의 예비 공격기를 계획하였으나 장거리 항법동안 18대 F-111 중 5대가 공중 임무 포기로 13대만이 공격에 참가하였다. 야간정밀유도무기 운영 결과 13대중 5대가 정확한 목표식별 미흡으로 폭탄투하에 실패하고 8대만이 성공한 반면, 완벽한 대공제압과 2대의 E-2C에 의한 참가항공기 공중통제, 정밀항법장치를 장착한 공격, 정확한 목표 공격시간 등으로 기습효과를 극대화했다. 미국의 리비아 공습은 월남전 이후 최대규모의 폭격작전으로 선제기습 효과를 최대로 이용하여 정치적 시위를 적절하게 구사한 작전이었으며, 항공작전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복잡성을 띠게 됨으로써 월남전에서 운영하기 시작하여 발전시킨 컴퓨터를 이용한 일일작전명령 작성으로 100여대의 항공기를 완벽하게 통제하였다. 이는 효과적인 전투작전 지휘통제를 위하여 통합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컴퓨터 체계가 필수적이며, 계획수립을 지원하는데도 신속성, 정확성, 신축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항공력 교훈 리비아 공습의 교훈은 테러에 대한 강력한 응징으로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항공력이 최적임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항공 무기체계 사용에 역사적 의미를 갖는 실험적 무대로서 야간 정밀 항법장비 및 공격장비를 탑재한 대규모 편대의 장거리 야간정밀 폭격 실시로 원거리 기습보복 가능성을 증대시켰으며, 고가의 정밀무기에 의한 정확한 공격이 대량의 재래식 무기보다 비용 대 효과에서 우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무기체계 획득과정에 새로운 개념정립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밀장비의 가동률을 재평가하여 작전 계획시 예비기 운용 절차를 발전시키고, 공격 시간 위주의 기습에서 전자전 무기운용에 의한 기습 방법의 변화로 전자전 대응능력의 필수적인 구비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미래의 전자전 양상을 제시하였다는 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자료 출처: http://www.airforce.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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