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있어서 공중우세
제2차 대전 이후 현대전까지 불변의 교훈은 공중우세가 전쟁승패의 관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중우세의 획득, 유지는 그 자체가 작전목적이 아니라, 육·해·공군의 제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선결적 필수조건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중의 하나가 한국전이었다. 한국전은 지상군 주도로 수행되었고, 공군은 주로, 특히 초기에
지·해상군의 지원에 주력되었으며 정치적인 제한과 더불어 항공 전략의 부재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유엔군의 지원하에 증강된 항공전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중우세, 후방차단, 근접지원, 공수 작전, 공중정찰작전등의 성공적인 수행은 북괴 지상군 전력의 가속적인 남하속도를 저지시켰고,
지속적인 작전수행을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요소는 아군의 항공력을 바탕으로 한 상대적인 공중우세확보였으며, 이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에서 아(我) 지·해상군의 자유로운 작전을 보장하게 되었다. 실제로 전쟁초기인 1950년 8월 초순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우군의 완전한 제공권을 획득한 이후 폭격기에 대한 전투기의 엄호임무를 폐지할 수 있었으며, 미 항공모함과 함정들 역시 적공습의 위협이
제거됨으로써 해안에 더 접근하여 포격과 공중공격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전쟁의 의의와 교훈
한국전쟁에서 항공전의 가장 큰 의의는 최초로 제트기에 의한 공중전 수행이었다.
압록강 남쪽 적지 상공에서 수행된 미공군의 F-86(Sabre)과 북괴의 최신예기인 MIG-15의 공중전에서 미공군 이 15 : 1 의 우세를
보였으며, 이는 동일한 성능의 제트기에의 한 전투에서 무기체계와 조종사 기량이 중요함을 입증하였다. 또한 각종 전략목표 공격으로 정치적,
심리적, 압박작전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휴전이 진행되는동안 북괴의 산업시설, 병참선, 저수지, 댐 등을 파괴함으로써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특히 저수지에 대한 폭격은 북괴의 농업경제상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황폐화시킬 수 있었으며 홍수에 의하여 적의 병참선을
파괴함으로써 유엔 공군의 어느 작전보다도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친 작전이었다. 지상군 주도로 수행된 3년간의 한국전쟁은 지·해상군의 지원에 주력된
항공력 운용과 정치적인 제한 및 항공전략의 부재속에서 실시된 제한적인 전략폭격으로 인해 장기간의 전쟁기간과 많은 인명 및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한
비효율적인 전쟁이 되었으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항공력은 압박작전, 항공차단작전 등 주요작전을 통하여 휴전회담의 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전은 항공기 개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항공력의 정확한 이해와 운용이전 화면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인지시켰으며, 북괴는
한국전에서 공군력에 의한 참패로 인해 현재까지 공군력 중심으로 군사력을 건설케 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월남전과 미국의 패배 원인
미국은 월남전에서 전술적으로는 성공하였으나 전략적으로 실패함으로써 결국
전쟁에 패배하게 되었다. 패배의 원인으로는 먼저, 전쟁의 가변성과 불확실성을 무시하고 시종일관 점진적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전략적 실패를
야기하였다. 이는 최소의 희생을 통한 협상의사 전달이라는 명목으로 전략적 기습효과를 완전히 도외시한 결과였다. 독립월남재건 및 대게릴라전을
제1임무로 하고, 월맹의 격퇴를 제2차 임무로 하여 항공전력을 대 게릴라 지원작전에 집중 투입함으로써 항공전략의 1차적인 목표를 도외시함으로써
전쟁의 실패를 가져왔다. 미국은 월남전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여 공격력의 구심점을 상실하였고, 대게릴라전에서는 압승하였으나 월맹군은 격멸하지
못하여 전술적 승리만 쟁취하였을뿐이다. 따라서 군사목표 우선 순위 결정상의 오류로 인하여 전략적 실패를 야기한 것이 실패의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월남 측의 전쟁수행을 위한 정신력의 결핍과 폭격의 제한구역을 설치한 것 또한 전쟁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군부는 월맹의 전쟁의지를 꺾는
차원에서 군사력 사용을 종용한 반면, 정계 지도자들은 군사력을 월맹이 회담에 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외교술의 한 형태로 취급함으로써 군부의
강력한 전쟁의지 결여를 초래하였다. 결국, 결정적인 패인은 최종목표를 "전쟁승리"에 두지 않고 "회담 성사"에 둔 오류에 있었다. 또한 중공군의
개입 및 확전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적 군사요충지를 "적 영토내의 성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적에게 대응할 여유를 제공하였다. 끝으로,
지휘·통제체계의 분산으로 항공전력의 효율적 사용이 불가능하였다. 월남 영내는 주월 미군사 지원사에 의해, 월남 영외의 월맹과 라오스 및 캄보디아
지역은 태평양 지역 사령부가 각각 지휘통제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월맹 및 라오스 일부 지역의 항공작전권은 7공군 사령부가 가지고 있었으나 B-52
항공기에 대 한 지휘권은 전략공군사령부에 의해 나누어 지휘 및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현장 지휘관으로 하여금 항공력 운용상 융통성의 결여와
대상목표에 대한 적시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상의 몇 가지 원인은 전쟁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되었으며, 그 결과 국제적 지지와 미온적인
국내여론으로 더 이상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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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http://www.airforce.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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