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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야성', 김우중
'기동성', GE 잭 웰치 '간편성'… 기자는 1996년 7월에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심야에 두 시간 동안 몽골기마군단과 칭기즈칸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두 달 전부터 미국 언론들이 김회장을 '20세기의 칭기즈칸'이라 부르면서 자동 차 산업을 앞세운 대우의 유럽 진출을 1240∼41년 겨울에 있었던 몽골 기마군단의 동구 침입에 비유하고 있을 때였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가 건설한 연산 20만대 규모의 안디잔 자동차 공장 준공식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은 호레즘 제국에 대한 침략에서 시작되 었는데 이 나라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그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 수도?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였다. 이웃한 카자흐스탄 에서는 칭기즈칸이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지만 그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악마로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은 티무르인데 재미있는 것은 티무르 자신은 '칭기즈칸의 종손' 이라 칭하면서 초원의 대제국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김우중 - 기동성의 상품화 기자는 김우중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다른 기업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기업을 사고 파는 상품으로 보는 사람이다. 기업은 나무를 키우듯이 정성스럽게 가꾸고 지켜가야 하는 존재라는 집착을 경멸한다. 그가 국내외에서 거느리고 있는 기업의 거의 전부는 창업한 것이 아니라 사들이거나 합병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유목민족적인 기업관이다. 군사력만 있으면 농경민족을 쳐부수어 나라를 빼앗고 거기에 내 나라를 세우면 풔?것이지 굳이 농토와 국토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을 본부로 삼아 세계정복에 나섰듯이 김회장은 대한민국을 본부로 두고 세계경영에 나서고 있다. 대우그룹의 종사자들은 약 31만명인데 21만명이 해외종사자.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582개의 해외 법인, 지사, 연구소, 건설현장에 본부에서 파 견되어 21만명의 이민족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2천3백명이다. 1 백만 몽골인이 그 백배의 인구를 지배하였듯이 대우도 1당 백이다. 김우중 회장은 칭기즈칸 전략의 핵심인 기동성을 기업화한 사람이다. 그는 말과 활에서 나오는 몽골 기마군단의 기동성을 총수의 발 빠른 정상외교에 의한 진출지 선점과 직관적인 의사결정, 그리고 놀라 운 해외금융 동원력으로써 대체한 사람이다. 그는 투자의 위험이 있는 곳이라도 신속한 의사 결정과 사업착수로써 그 위험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칭기즈칸이 세계 정복에서 기마군단을 주력으로 삼았듯이 김우중은 자동차산업을 해외진출의 선봉으로 내세우고 전자·통신, ?설, 무역·금융을 공병과 보병처럼 뒤따라 붙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공장(연산 20만대), 우크라이나의 오토자즈(연산 25만대목표), 폴란드의 FSO(연산 57만대 목표)를 3대 포함한 12개 해외 자동차 공장. 여기서 생산된 자동차 대수는 서기 2000년에 가면 15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지금 가장 성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폴란드의 FSO공장을 인수할 때 대우가 투자한 돈은 약 1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향후 10억달러를 투자하게 되면 연산 55만대 체제를 갖춘다. 삼성이 부산에 짓는 공장 은 약 65억달러를 투자하여야 연산 50만대 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김우중식 계산으로는 공장을 짓는 것보다는 인수하는 것이 싸게 먹힐 뿐만 아니라 빠른 것이다. 칭기즈칸에게 있어서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는 나라를 정복하는 것이 더 싸게 먹혔듯이. 대우가 진출에 성공한 곳은 거의 정확하게 칭기즈칸의 정복로와 일치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거쳐 동구에 이르는 칭기즈칸의 길을 연장시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구의 심장부로 파고 들어 21세기에 가서는 매출액 2천억달러의 세계 최대기업군을 만들겠다는 것 이 김회장의 꿈이다. 2류시장을 돌아서 1류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 이것도 칭기즈칸의 전술을 본뜬 전형적인 우회 상법인 것이다. 정주영 - 야성의 생리화 정주영 명예회장은 칭기즈칸 성공비결의 야성을 현대그룹의 생리로 만든 경영자이다. 야성의 핵심은 적자생존의 투지이며 사치와 인공 을 경멸하는 투박한 소박성이다. 정주영 회장은 자연에서 배운 사람이 다. 그는 못난 부하들에게 "빈대보다 못한 사람이다"고 소리친다. 자신이 노동자합숙소에서 잘 때 침상으로 올라와 공격하던 그 빈대를 말한다. 정주영은 침상의 네 다리를 물을 담은 대야에 넣어 빈대가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잤다. 며칠 뒤 빈대도 머리를 썼는지 벽을 타고 천장으로 기어올라가 정주영의 복부를 향해서 낙하공격을 하더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는 문맹이었던 칭기즈칸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동물세계에서 투지와 지혜를 배웠고 그것을 현대그룹의 조직생리로 삼았다. 오전에 합격통보를 받은 신입사원에게 오후에는 책상 하나를 주고는 당장 서류보따리를 맡겨놓고서 일을 시킨다. 그는 한달 동안 집에도 못 가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상태에서 일과 씨름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높던 벽이 낮게 보이고 뱃속 깊은 곳에서는 불끈거리는 생존에의 자신감이 솟구쳐 오른다. 그는 현대맨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어미 사자가 새끼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고 살아남은 것들만 골라서 끔찍이 아껴주는 비정한 야성의 생리. 이를 정주영회장은 현대의 체질로 삼은 것이다. 정 회장이 지은 현대그룹의 사훈은 '근면, 검소, 친애'이고 현대정신은 '창조적 예지, 적극의지, 강인한 추진력'이 다. 검소한 생활자세와 사내 인화에서 투지와 창의력이 우러나온다는 그의 믿음. 이것은 칭기즈칸의 전략 사상과 일치한다. 연막전술, 심리전, 간첩망 등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전술을 창안했던 칭기즈칸처럼 정주영은 '벽이다 싶을 때면 번쩍 하고 "이것이다" 하고 떠올라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녔다. 충남 서산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 때 초당 8m나 되는 유속에 쏟아 붓는 돌덩어리들이 '코끼리에게 먹이는 비스켓'처럼 쓸려나갔다. 이때 정회장이 생각해낸 것이 23만t짜리 유조선을 갈아앉혀 물줄기를 막아 놓고 물막이 공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 토목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 '유조선 공법'으로 290억원이 절감되었다. 정주영은 이런 동물적 슬기와 투지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고도 노동자 시절의 검소함을 지켜가고 있다. 그는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 몸으로 품 팔아 번 돈을 왜 담배연기로 날려버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집도 없으면서 TV는 왜 사서 셋방으로 끌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라디오 하나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 다 아는데'라면서 '나는 전차삯 5전을 아끼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구두 닳는 것을 늦추려고 징을 박아 신고 다녔고, 춘추복 한 벌로 겨울에는 내의를 입고 지냈고 봄 가을에는 그냥 입었다'고 회고했다. 칭기즈칸이 '나는 북방의 야만인이다'면서 중국 문명을 경멸한 이유는 중국인의 사치였다. 정주영 회장도 사치는 결국 이기심과 무사안 일로 흘러 야성과 창의성과 투지를 좀먹게 된다는 것을 알고있는 것이다. 1992년 선거에서도 실증되었던 현대그룹의 무서운 응집력은 정주 영 회장의 이런 질박한 혼과 야성이 기업조직의 능률성으로 전환된 결과인 것이다. 잭 웰치 - 조직의 간편화 1981년 45세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회장에 취임한 잭 웰치는 요사이는 항상 '세계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연매출액이 약 8백 억달러인 GE는 주식의 시장가치로는 세계최대의 회사이다. 엔진, 발전 소 시설 등 중화학공업체인 이 회사는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상품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였다. 웰치는 취임하자마자 약 8만명을 정리莫灼臼?'중성자탄'이란 별명을 얻었다. 중성자탄은 건물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죽이는 원폭이다. 사람은 줄여도 조직이 더 생산성 있게 가동하는 비결을 그는 간편성(Simplicity)에서 찾았다.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가진 기동성의 비결은 유목사회조직의 단순성과 보병이 붙지 않은 전원기병이란 군단 편성의 간편성에 있었듯이 웰치도 GE의 개혁을 '간편하게 살자'라는 구호에 두었다. 조직의 간편성에 방해가 되는 것은 피라미드식 관료주의. 그는 기획실, 비서실 같은 참모부서가 현장부서 위에서 군림하는 폐습을 타파했다. 기획부서는 현장부서로부터 보고를 받지 말고 현장에 보고를 해 주도록 했다. 참모조직의 기능을 생산, 판매 현장을 도와주는 것으로 못박은 것이다. 그는 또 다단계 조직을 혁파하여 납짝하게 만듦으로써 회장이 직접 현장부서와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GE의 목표를 신속성과 간편성에 두었다. 의사결정의 신속화, 제조과정의 간편화, 사원들 행태의 간소화 등등. 그는 이 간편성의 철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가 간편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빨라질 수 없고, 빨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이길 수 없다. 간편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감과 지적인 자기확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 없는 부장들은 무엇이든지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들은 뚜꺼운 편람과 슬라이드를 좋아한다 . 자신 있는 부장들은 서류 뭉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간편한 것을 두려워한다. 간편한 것이 단순한 것이라고 오해받기 싫어서이다. 사실은 반대이다. 명석하고 강력한 사람들이 가장 심플(Simple)한 사람들이다". 웰치 회장은 간편성의 개혁철학을 영업이나 디자인에까지 적용하였다. "간편성은 엔지니어에게는 깔끔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의미한다. 영업에서는 명쾌하고 복선이 깔리지 않은 설명을 뜻한다. 제조부 문 종사자들에게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정을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이 간편성은 쉬운 말로 하는것, 솔직성, 그리고 정직한 자세를 가리킨다". 웰치는 업무가 과중한 부서장이 가장 능률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일에 치여 있는 사람은 쓸데 없는 인간관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부하들이 맡은 자질구레한 업무에까지 간섭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부서장이 매일 6∼7개의 직접보고만 받아야 한다는 이론이 있는데 나는 10∼15개의 보고도 소화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책임자들 은 좀 바빠야 부하들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자연히 중요한 데만 정력을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웰치는 칭기즈칸에 굉장히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 이 21세기의 칭기즈칸이 될 것이란 기분 좋은 예언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98년 1월 22일 주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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