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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전쟁-문명의
용광로…지중해 버금가는 '문명의 요람' 기자는 1996년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두 달간 몽골 벨트를 따라서 10여개국을 여행하였다. 몽골∼ 카자흐스탄∼ 중국 신강성∼ 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터키∼불가리아∼러시아∼폴란드∼ 헝가리로 이어지는 이 유라시아 대초원은 우리와 인종적 뿌리를 같이한 몽골·투르크 유목 기마민 족의 기동 공간이었다. 만주에서 헝가리까지 뻗어 있는 이 초원에는 기동을 막는 산맥도 절벽도 바다도 없다. 이 대초원이 사실은 대륙 속 바다, 즉 제2의 지중해인 것이다. 몽골족은 3백m까지 날아가는 활을 주력 무기로 삼고 말을 배처럼 이용하여 제2의 지중해에서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17세기에 총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세계사의 주먹'인 몽골 기마군 단이 무적의 군사력으로써 이 바다의 연안에 수시로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이 대초원의 바다 주변에 있는 중국 한국 중앙아시아 이란 인도 아나톨리아반도 발칸반도 러시아 동유럽은 몽골 기마군단의 작전범위안 에 들어있었다. 기마군단은 이 주변지역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 셀주크 투르크, 인도의 무굴제국, 아틸라의 훈 제국, 북위, 원나라 같은 것들이 몽골 계통의 정복 제국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북방 유목 기마민족이 세운 세계적 대제국은 20개를 넘고 나라 수는 1백 개를 웃돈다고 한다. 몽골·투르크족의 이런 세계 제패는 대초원이란 제2의 지중해 덕분에 가능했다. 그리스·로마 문명의 요람이었던 진짜 지중해와 비슷한 역할을 이 유라시아 북방 초원이 해냈던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려면 기동 공간이 필요하다. 서로 교류, 교역, 충돌하는 공간이 있어야 사상 과학 경제가 발달하는 것이다. 기동공간은 곧 시장이요, 전장이며 문명의 용광로이다. 지중해가 그런 기동 공간이었다. 이집트 중동 이스라엘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의 문명이 지중해를 매개로 서로 섞이고 부딪치며 성장하고 명멸해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면서 유럽역사에서 지중해의 비중은 떨어지고 대서양이 중심적 기동 공간이 된다. 유럽의 중심도 지중해국가인 이탈리아 베니스 오스만 투르크에서 대서양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로 옮겨가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지도를 거꾸로 돌려놓고 보면 이 북방 대초원의 의미를 유목민의 시점에 서서 실감할 수 있다. 왼쪽 끝인 한반도에서 오른쪽 끝인 헝가리까지 대초원은 활처럼 굽어 있다. 이 원호의 남쪽에 중국 인도 이란 동유럽 등 농경 정착 국가들이 화살의 과녁처럼 벌벌 떨면서 초라하게 모여 있다. 이 농경 국가들은 약 2천년간 이 유목민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들은 대초원의 생리와 논리, 그리고 전법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제2의 지중해로 들어오면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총이 등장하면서 말과 활에 의존하던 유목 기마군단의 전법은 힘을 잃게 되고 이 대초원의 세계사적인 효용성도 약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동서양의 무역로라고 하면 실크 로드를 연상한다. 이 실크로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핏줄 같은 통상로였고 그 북쪽에는 바다 같은 대초원이 동서를 관통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시시한 대상이 아니라 수십만의 기마군단이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하늘을 덮는 먼지를 날리면서 폭풍처럼 대제국을 쓸어버리고 다시 세우곤 했다. 우리나라는 이 대초원과 닿아 있는 역사를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사마르칸트 박물관에 가면 6세기경 의 벽화가 있다. 여기에는 신라에서 온 사신이 그려져 있다. 신라에서 이북방의 초원을 말 타고 가로지르면 중앙아시아까지는 수개월이면 도달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동성 때문에 신라의 유물에는 중앙아시아적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구려와 부여는 전형적인 북방 기마문화권에 들어가는 국가였다. 조선조가 주자학을 받아들여 중국에 빌붙는 사대적 정책을 쓰기까지 우리에게 있어서 북방의 이 초원은 항상 민족의 활동 공간으로 열려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의 `한'은 북방초원제국의 왕을 의미하는 칸(Khan)에서 유래한 한자이다. 우리는 오른쪽과 서쪽을 같이 보는 방향 감각을 갖고 있다. 이는 북방 초원에서 출발한 민족 이동의 물결이 수 천년간 한반도로 남하해 오면서 우리의 본능으로 뿌리내린 방향성일 것이다. 유럽의 지중해 문화와 유라시아의 대초원 문화는 공통점이 많다. 개방무역 활달 진취성 관용으로 상징되는 역동적 문화가 그것이다. 초원의 생리는 다분히 해양적이다. 칭기즈칸이란 이름은 '대양의 왕'이란 뜻이다. 이 초원의 삶은 끊임없는 기동과 이동이다. 움직이는 인간은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하며 열려 있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병참과 정보수집, 전투와 협상력, 그리고 지도력을 필요로 한 다. 움직이는 인간은 강하다. 움직이는 문화는 힘이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활동 공간으로서의 대초원을 상기한다는 것은 이 '바다'가 상징 하는 개방성과 진취성을 우리의 유산으로 간직하자는 뜻이다. <1998년 1월 8일 주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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