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 경제학상, 번역 오류가 남북 제도 오해 불렀다
박희봉 중앙대 행정대학원장
입력 2024.10.30. 00:00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저자들은 오랫동안 같은 인종으로 같은 문화에 함께 살아왔는데도 왜 남한은 잘살고, 북한은 못사는가를 예시로 들어 부강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를 비교한다.
저자들은 정치·경제 제도에 초점을 둔다.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갖춘 나라는 부강하고, 경제 활동 의지가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시장경제를 채택하며, 개인의 재능과 혁신, 창의성에 보상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부강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제도적으로 이와 반대되는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inclusive institution”과 “extracting institution”이라는 개념을 대비시켰다. 사전적 의미로 ‘inclusive’는 포함 또는 포괄이라는 뜻으로 더 많은 사람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킨다는 개념이고, ‘extracting’은 발췌 또는 추출의 의미로 경제활동인구를 제한하고 선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2012년 출간된 이 책의 번역서는 ‘inclusive institution’을 ‘포용적 제도’로, ‘extracting institution’을 ‘착취적 제도’로 번역하고 있다. 의도적 오역은 아니겠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말에서 포용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이는’이라는 뜻으로서, 이 책 원저자들의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유인하는’이라는 의미와 차이가 있다. 더욱이 착취는 ‘계급사회 한 계층이 다른 계층의 소유물 또는 생산물을 빼앗는다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들어있다. 원저자의 의미를 적지 않게 훼손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 번역자의 표현대로 포용과 착취를 일반화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원저자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장군”을 독재자로 묘사한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시장경제를 채택했다는 점을 원저자들은 주목한다. 박정희가 외자를 끌어들여 기업에 대출과 보조금을 주며 더 많은 경제활동을 유도하는 “유인·포함적(inclusive) 제도”를 실현한 결과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반면, 김일성이 지배한 북한은 사유재산을 불법화하고, 시장을 금지했으며, 북한 주민을 시장뿐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배제·추출적(extracting) 제도”를 시행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북한에서 극소수 지배 엘리트 계층만이 경제활동을 한 결과 경제가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고 원저자들은 지적했다.
그동안 국내 일부 지식인들은 스웨덴을 가리켜 포용적인 복지 정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시하는 국가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근년에 스웨덴은 경제 성장이 정체돼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스웨덴 정부가 적극적인 경제 활동가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일할 맛이 나는 정책을 시행하기보다는 경제활동에 공헌하지 않는 다수에게 많은 사회적 혜택을 퍼줌으로써 자초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지속적으로 부강해지려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이 일할 맛이 나도록 유도하는 정치·경제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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