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부산 출생 노벨상 1호
입력 2024.10.16. 20:38업데이트 2024.10.17. 00:18
일러스트=박상훈
노벨상 홈페이지에 한국 출신이 3명이라고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소설가 한강에 앞서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찰스 J. 피더슨(1904~1989)의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홈페이지에 국적을 표기하지 않고 출생지, 소속기관 등만 명시한다.
▶찰스 J. 피더슨은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4년 10월 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르웨이인,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노르웨이를 떠나 극동행 화물선 기관사로 일했다. 한국에 정착해 해관(세관)에도 근무했고 이후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금광 엔지니어로 일했다. 무역업 하는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여성 야스이 다키노를 만나 결혼했다.
▶운산금광은 20세기 초반에 동양 최대의 수익을 올린 광산이다. 미국 외교관 호러스 알렌이 고종을 설득해 채굴권을 따냈다. 미국 기업 동양합동광업이 1939년 일본 기업에 넘기기 전까지 근 40년간 금을 캐냈다. 영어 ‘노 터치(No Touch)’에서 비롯된 유행어 ‘노다지’가 이곳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알렌의 서한 기록에 따르면 1902년 당시 운산금광은 서양인 70명 이상, 일본인 40~50명, 중국인 600~700명, 조선인 2000~2500명 이상을 고용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서양인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고 별도의 클럽 건물까지 두었다.
▶피더슨이 평북 운산 아닌 남쪽 땅 부산에서 태어난 건 마적단의 공격이 잦아지면서다. 피더슨의 어머니가 다른 미국인 여성들과 부산으로 피란 가 출산했다. 다시 운산금광으로 돌아가 살다가 8세 때 일본에 있는 외국인 학교로 조기 유학을 갔다. 대학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데이턴대로 진학했고 MIT에서 유기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금을 추출할 때의 냄새와 금이 쏟아지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어린 시절 운산금광의 기억을 떠올렸던 피더슨은 결국 화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박사 과정에는 진학하지 않고 1927년 미국 화학회사 듀폰에 취직했다.
▶듀폰에서 42년간 근무한 피더슨은 박사 학위 없는 노벨상 수상자로도 유명하다. 1967년 ‘크라운 에테르’라는 고리 모양의 화합물을 발견한 뒤 1969년 퇴직했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건 퇴직 후 18년 만이다. 그의 ‘크라운 에테르’ 연구를 확장시킨 미국 화학자 도널드 크램, 프랑스 화학자 장마리 렌과 공동 수상하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한국 출생 노벨화학상 수상자 말고 한국인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한다. 꿈으로 끝나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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