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두 번째 계시 왕상 9:1-9

鶴山 徐 仁 2022. 10. 15. 10:08

두 번째 계시 왕상 9:1-9

 
 
 
10월 15일 (토)
   
두 번째 계시 왕상 9:1-9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2절).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방식은 밤에 꿈을 통해서였습니다.(3:5, 15). 그런데 그 기브온 계시에 이어 두 번째로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다는 것인데 이번에도 역시 꿈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성전뿐 아니라 궁전까지도 완공한 후였습니다(1절). 성전 완공 후 13년(17:1)만에 드디어 궁전까지 완공하자 하나님의 두 번째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솔로몬 즉위 24년째가 되던 무렵으로(6:37-38, 7:1), 안으로는 성전과 궁전 등 주요 건축 사업이 성공적으로 종료되고, 밖으로는 외교와 무역이 몹시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이 때는 솔로몬이 자칫 교만과 사치, 그리고 이방 문화의 유혹에 노출될 우려가 가장 컸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런 시점에 여호와께서 다시금 나타나사 솔로몬의 신앙 상태를 재점검해 주신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6절).
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관심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에서 비롯하여 결국은 하나님을 내 삶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나의 인간적 관심>이 최우선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는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하나님이 지적하신 망국의 병, 즉 이스라엘의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강대국의 침공이나 국력의 약화 등이 아니라 <우상 숭배>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땅에서 끊어 버릴 것>(7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상 숭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독특한 계약 관계를 뿌리 째 흔드는 영적 간음 행위였기 때문에(신 7:4, 25-26, 12:31, 18:12, 20:18, 27:15) 이렇듯 엄중하게 경고하고 나서신 겁니다.
<...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9절).
 
 
 
-하나님이 <내 눈길, 내 마음>이라고 하신 3절 말씀을 읽고 당신의 느낌을 한 번 적어 보십시오.
-오늘 이 본문과 사무엘하 7:12-17을 비교해보십시오.
-<다른 신>(6, 9절)을 뜻하는 이방의 온갖 우상들을 신명기 6:14, 11:28, 13:2 등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주님,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두 번째 계시가 임했습니다.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을 항상 거기에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경배하면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멀리 던져버리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일찍이 솔로몬에게 주신 이 경고의 메시지를 오늘 저희도 귀담아 듣고 늘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그의 법도를 지키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나쁘고 악한 상담가를 만나면
 
“지석영은 1894년 7월 5일 그 당시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 글은 《고종실록》에 실려 있다.
‘...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친 간신 민영준과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신병주 저(著) 《우리 역사 속 전염병》 (매일경제신문사, 201-20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임오군란’으로 피신했던 명성황후는 충주에 이르러 『삼국지』에 나
오는 관우 장군의 딸이며 관우 장군을 모신다는 무당 박창렬을 만납니다.
무당 박 씨는 명성황후가 곧 복귀한다는 점을 치고, 그 점대로 명성황
후는 궁으로 돌아옵니다. 명성황후는 무당 박 씨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리고, 그의 요청대로 북묘(北廟)라는 관우 사당을 지어줍니다.
고종도 진령군에게 미혹되어 관우 사당의 비문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세간에는 “밤에 무당이 한 말이 아침에 어명으로 내려온다”는 말이
퍼졌고, 북묘에는 뇌물로 관직을 청탁하는 무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령군은 부정부패를 일삼았습니다. 백성은 굶주리는데 허약한 세자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병을 고친다고 굿판을 벌이고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 쌀 한 섬과 돈 천 량과 무명 한 필을 올려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소수의 충신들이 진령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쏟아냈으나,고종은 오히려
이들을 유배 보내 버립니다.
최악의 책사, 최악의 상담가를 만나면 이 꼴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최상의 상담가를 만나게 해주
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하나님의 가치관과
마음을 품고 있는 최상의 상담가를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신약의 바나바가 그러하였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
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행4:36)
‘위로의 아들’이라는 칭호답게 바나바는 최고의 상담가가 되어 바울
사도와 마가 등 많은 사람들을 주의 마음을 권면하고 위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모습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하는 인간이다. 
하나님의 형상도 모든 인간을 지향하고,
 자기 비움이나 자기 낮춤도 동료 인간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손을 쭉 펼치는 것이다. 
어떤 특정인이나 한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거나 
자기만을 위한 비움과 낮춤은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다. 
나를 비운다고 하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말한다.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 겸손하게 됨으로써 
더 큰 교만이 자기를 지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이병일 목사의 ‘어떤 신을 섬길지’ 에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신앙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이웃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흔히 발견하는 오해는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다가 사람과의 관계를 잊는 일입니다. 
 매일매일 겸손으로 이웃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 일은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