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창세기 1장 26-31절
10월 12일 (수)
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창세기 1장 26-31절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가수 이상민씨가 얼마 전 길거리 버스킹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60억 자산을 가지고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오히려 진짜 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강연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참 좋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다.”라고 말씀하신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니까, 실수하고 넘어진 모습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내가 여기 있다. 네가 나에게도 오면 내가 너와 함께 할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녀를 보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을 주더라고 자녀와 바꾸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그런 가치로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것이 우리가 세상의 기준을 따라 우리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소위 ‘객관적’이라는 말로 우리 자신을 바라봅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이 아무리 흉측한 모습을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예쁜 모습이 아닐지라도 어머니에게 그 자식은 어느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10달 동안 배 속에서 기르고 낳은 마음이 이미 절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를 열심히 드려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과계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수하고 넘어져도 세상이 보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 실수와 죄로 인해 나 자신에게 실망한 모습 때문에 낙심해 있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님! 나는 오늘도 세상의 기준으로 인해 낙심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나의 죄와 실수를 보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로 나를 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렇게 나 자신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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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뉴스
“한 방송국이 자정 직전에 내일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노스
트라다무스를 메인 앵커로 내세운 이 예언 뉴스는 방송 3일 만에 90%를 넘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중략).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습니 다. 방송 한 달 만에 내일 뉴스는 폐지되고 맙니다. 시청률 제로로 곤 두박질쳤기 때문입니다. 의외라고요? 당연한 일입니다. 내일 일을 오늘 안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 없겠습니까. 기대감과 가능성이 사라진 내 일은 죽은 내일입니다.” 정철 저(著) 《내 머리 사용법》 (허밍버드, 18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내일’ 일을 알고 있다면, ‘오늘’은 그저 내일을 위한 죽은 오늘이 됩니다. 기대감과 가능성이 사라진 ‘내일’ 또한 죽은 내일입니다. 세계적 복음전도자인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에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장차 올 세상의 미래,역사의 미래에 대해서 설교를 많이 하시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십니까?” 그때 빌리 그래함목사님이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솔직히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가 나의 미래를 붙들고 있는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내일 무슨 급작스러운 일이 일어날지, 아니면 평범한 날이 전개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목사님의 고백처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 래까지도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주님이 우리 삶을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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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9장 23절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Concerning Damascus: "Hamath and Arpad are dismayed, for they have heard bad news. They are disheartened, troubled like the restless sea. Jeremiah 49:23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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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 가족
예수원 설립자인 나의 남편 아처의 아버지는 선교사였으며,
또 아처의 할아버지(무디학교 교장을 맡았던 토레이 1세,)는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한 분이셨다. 남편의 아버지 토레이 선교사는, 어릴 때 세상에 속한 학생이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절망해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고, 예수님께 자신의 번민과 죄를 내려놓음으로 삶의 목적을 찾게 되었다. 어떻게 그에게 그러한 회심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토레이 선교사는 그의 어머니가 끊임없이 기도해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기도는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그 역시 자신의 자녀와 손자, 손녀와 후대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끄시는 믿음의 5세대를 보게 되었다. -현재인 목사의 ‘산골짜기 가족 스케치’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대를 물려 고통을 허용하시기도 하지만,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3~4대에 걸쳐 은혜를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는 3대째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이는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큰 기쁨으로 그들을 품으시며, 모든 면에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예수 안에서의 가족, 믿음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이 내리시는 귀한 상급이며 축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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