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왕상 1:1-4 "이불을 덮어도"

鶴山 徐 仁 2022. 10. 6. 11:09

왕상 1:1-4 "이불을 덮어도"

 
 
 
10월 06일 (목)
   
왕상 1:1-4 "이불을 덮어도"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1절).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으므로(2:11, 대상 29:27) 이때의 나이는 약 70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의 삶과 내면에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면모에서 어느 것 하나를 뽑아 이게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간 평가의 방식이나 기준, 또는 그 평가의 내용이 아닙니다. 언제나 자신의 평가를 결정적인 것,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확실한 것, 최후의 결론인 것처럼 믿는 그 완고함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는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했는데, 다윗은 어째서 70세쯤에 벌써 제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한 때 혈기충천하고 영력까지도 드높았던 인물이 이제는 어느덧 노쇠의 운명을 피할 길이 없어 생명의 촛불이 흔들리는 시각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의 이런 쇠약한 말년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원인을 넘어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닌 오랜 망명생활, 숱한 전쟁으로 온갖 풍상을 겪었고, 말년에는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 갖은 시련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을 것입니다. 


<...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2절). 
한때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성군으로서의 온갖 역량을 다 발휘하던 그가 이제는 노쇠한 인생이 되어 몸의 온기마저 잃고 젊은 처녀의 몸에서 따뜻한 체온을 공급받아야 하는 실로 가련한 처지가 됐습니다.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 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4절).
 
-노쇠한 다윗에 대한 신하들의 처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절)?
-생각보다 빠른 다윗의 노화에 대한 당신의 소견은?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헬몬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수넴>(3절)을 확인해 보십시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세월의 속절없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육신의 나이를 이기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바울의 고백처럼 <겉 사람은 날로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도리어 날로 새롭도다>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한 목동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어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이제 극도로 노쇠하여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오늘 저희에게도 많은 깨달음과 지혜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어느 무신론자가 씨앗을 보았을 때
 
“이 세상에 경이로운 것 하나를 들라면 나는 씨앗을 꼽겠다(중략).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흙을 밀어 올리고 떡잎을 펼치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할지 모든 정보들이 이 작고 단단한 씨앗
에는 모두 담겨있다(중략). 식물의 씨앗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동물의
씨앗에도 유전자의 정보가 담겨 있으리라.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이
대목에만 미치면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의 진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섬세하고 오묘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에 기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절대자의 권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김상욱 저(著) 《잠 못드는 밤 백석의 시를 생각하며》
(뒤란, 198-19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경이로운 것이 어디 씨앗 뿐이겠습니까.  0.00000001의 어긋남도 없이
조율된 우주의 조화는 경이로운 그 자체입니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소
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의 경이로움을 보라.
하지만 만물 가운데 인간만큼 경이로운 존재가 또 있으랴!”
생각을 하고 예술을 만들어 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인간은
가장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시인 보들레르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상형문자이고, 시인은 번역자이며 암호 해독자다.”
이 세상 만물은 초월자의 암호, 신앙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 만물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스며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진리를 바울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0)
모든 세계에 주님의 권능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정욕의 눈을 벗고 경이
로운 눈을 회복하면 꼬불꼬불한 달팽이집과 개들의 꼬리,토끼 주둥이를
보아도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신비를 봅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for man's anger does not bring about the righteous
life that God desires.
James 1:20 [NIV]
   
훈련
훈련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따르는 고통에 건설적으로 대처하는 기술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어야 합니다. 네 가지로 나누어 기본 방법을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즉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것과 의무를 받아들임과 진실에의 충실함과 균형 등이 그것입니다. 이 방법들의 상호 연관 관계가 밀접하므로 훈련은 이 방법들의 ‘체계화’입니다. 
-M 스콧 펙의 [끝나지 않은 길] 중에서-


우리의 훈련은 목적이 분명합니다. 성장과 성숙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훈련이며, 믿는 우리에게 자라는 시간입니다.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훈련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성장과 성숙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