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생명을 보존하리라 신 19:1-10

鶴山 徐 仁 2022. 8. 17. 10:39

생명을 보존하리라 신 19:1-10

 
 
 
08월 17일 (수)
   
생명을 보존하리라 신 19:1-10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도피성에 관한 말씀인데 <...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2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도피성 제도>가 모든 백성을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한 말씀입니다. 즉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의 신변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 전체의 질서와 기강 유지를 위해 주어진 규례라는 것입니다(민 35:11). 왜냐하면 살인자에 대한 보복이 과실치사 자에게까지 무차별로 적용된다면 이스라엘 사회는 곧 보복에 재보복을 가하는 끊임없는 악순환으로 결국은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도피성 제도를 통해 본의 아니게 실수한 사람, 억울한 사람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존하시기 위해 정당한 재판 절차를 통해 공의로운 판결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요단 서편 가나안 땅 전체를 3등분하여 각 구획의 중심부에 도피성을 설치하게 하신 겁니다. 이는 도피자가 어디에 있든 보복자를 피해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신속히 피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 역시도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도피처이신 주님께로 피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주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진리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 숨는다 해도 죄인은 결국 냉혹한 보응의 원리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피성 되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면 삽니다. 그것만이 죄인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도피성>은 고대라는 시간적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형식주의를 극복한 고도의 윤리적 제도였고,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한 소중한 인권 보호제도였습니다. 이는 신정사회였던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그래도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의 통치 원리가 관철되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도피성> 제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 셋, 요단 서편에 셋 도합 여섯 개였습니다. 도피성이 있었던 성읍을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당신이 이해한 하나님의 공의와 인권에 대한 배려를 도피성 제도를 통해 한 번 설명해 보십시오.
 
주님,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도피성>은 이 시대 저희에게도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진정한 살인자와 본의 아닌 살인자,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을 같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해 <도피성>을 만들게 하사 그들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셨습니다. 
주님은 저희 모두의 <도피성>이십니다. 따라서 누구든, 어디서든 주님께로 나아가면 그의 생명을 보존하십니다. 도피성이란 그 옛날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확신하오니 주님께로 도피한 저희 모두를 지키사 더 이상 화를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설명할 길이 없는
 
“중력 법칙은 원래 표현대로 인용하면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있을
때 그 두 물체는 서로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서로 잡아
당긴다.’입니다. 이 중력 법칙은 무게가 있는 세상의 모든 물체들이
안정적으로 현재와 같이 존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힘을 설
명합니다. 특히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태양계, 은하계 등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칙입니다.”


김도현 저(著) 《과학과 신앙 사이》 (생활성서사, 4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중력 법칙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이 1687년에 저술한 기념비적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물체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잡아당
긴다는 것입니다(중략). 중력 법칙에 왜 반드시 ‘제곱’이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중략)‘제곱’이라는 숫자,2라는 숫자는 대단히 중요합니
다. 만일 뉴턴의 중력 법칙이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있을 때 그 두
물체는 서로 떨어진 거리의 2.0001승 혹은 1.9999승에 반비례하게 서로
잡아당긴다.’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0001승의 경우라면
우리 태양계를 비롯한 이 우주의 모든 은하계가 멀리 흘어지면서 와해
되고 맙니다. 반면,1.9999승의 경우라면 모든 별들과 행성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금세 다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48-49쪽)
이 우주가 지금처럼 안정되고 조화롭게 유지되려면 행성들이 각자의 궤
도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거리의 ‘2승’에 반비례하게
서로 잡아 당겨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제곱 2승일까요? 중력법칙에
왜 반드시 제곱이 들어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뉴턴도 모릅니다.
단지 물리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제곱이더라, 그리고 제곱이 아니면 안
되더라 정도까지만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가리켜
‘과학주의’ 혹은 ‘과학만능주의’라고 부릅니다. 과연, 과학이 이
세상의 모든 사실들을 정확히 다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질문들의 답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과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일반 은총 중의 하나입니다.
과학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과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편으로 사
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학이 하나님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디모데후서 1장 14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Guard the good deposit that was entrusted to you--guard it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who lives in us.
2 Timothy 1:14 [NIV]
   
담대한 마음으로 싸워서 승리하라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온 천하에 자기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큰 금 신상을 세우고
 나팔 소리가 날 때 그 앞에 꿇어 절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세상 나라 왕의 권세가 높아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풀무 불에 들어가면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이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우리에게 뜻하는 것입니까?
-문성욱 목사의‘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에서-


풀무 불같이 뜨거운 시련 속에서도, 
사자 굴같이 무서운 시험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 싸워서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