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뇌물을 받지 말라 신 16:18-22

鶴山 徐 仁 2022. 8. 10. 10:22

뇌물을 받지 말라 신 16:18-22

 
 
 
08월 10일 (수)
   
뇌물을 받지 말라 신 16:18-22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18절).
여기서 말씀하는 <재판장>이란 히브리어 <솨파트>로 재판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법관을 뜻하고, <지도자>란 <쇼테르>로 서기관, 감독관, 관리를 뜻하는 말로 재판장을 보조했던 일종의 법원 서기를 가리킵니다. 한 편 왕정시대 이스라엘은 각 성읍마다 7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정이 있었으며, 120세대 이상 되는 성읍에는 23명으로 구성된 법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방 법정에서는 사형판결은 내릴 수 없었으며 사형은 오직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만 심리하고 판결할 수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현직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70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사형판결을 받으신 곳도 바로 이 곳인데(마 26:57-27:1), 이 산헤드린은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도 존속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결을 굽게 하지>(19절) 않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고 ... 공의만을 따르라>(19-20절)고 하셨습니다. 각 성읍이나 산헤드린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은 역시 사람이 내리는 심판이므로 외모, 즉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재산 유무를 본다든지 뇌물을 받고 부당하고도 왜곡된 판결을 내리는 예가 적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런 불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법조 비리, 전관예우, 재판거래,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말들이 날마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사정을 보면 우리 사회 역시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한다>고 합니다. <공의를 따라야 네가 살 것이라>고 합니다. 부디 뇌물을 배격하고 공의를 추구하므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하는>(20절)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당신은 남에게 뇌물을 주거나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공의롭지 못한 재판의 피해자가 되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 정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주님, 재판의 공의 문제는 곧 현대 우리 사회의 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외모를 보거나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불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해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고 하셨고, <외모도 보지 말고, 뇌물도 받지 말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결코 하나님의 그 당부대로 가고 있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 무고한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 외모나 뇌물이 아니라 오직 공의와 공평과 정의만을 추구하며,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야고보서1장26절
 
 
   
성장해야 성공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서 이 세 사람을 생각해 보라
군인으로 한 번도 실수 없이 
을지문덕같은 장군이 될 수 있겠는가?
김연아같은 선수가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죄절했겠는가?
풍성한 수확을 거둔 농부가 한 번의 시도로
 그렇게 많은 것을 거두었겠는가?
그들이 성공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 계속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나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까?”이다.
- 이윤재 목사의 ‘넘어져도 배우면서 자란다’에서-


오늘 읽은 것에서, 오늘 본 것에서,
  오늘 들은 것에서, 오늘 경험한 것에서 
오늘 잘못한 일에서, 오늘 만난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이야기한 것에서, 오늘 설교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까?를 늘 생각하십시오.
 프레드 스미스란 사람은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보다는 우리의 성장에
 더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성장해야 성공합니다
우리가 사는 날,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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