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칠칠절 신 16:9-12

鶴山 徐 仁 2022. 8. 9. 09:21

칠칠절 신 16:9-12

 
 
 
08월 09일 (화)
   
칠칠절 신 16:9-12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9-10절).
칠칠절이란 유월절로부터 7주가 지난 날 지키는 절기라 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지키는 절기여서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밭작물의 첫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라 하여 초실절,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라 하여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이 칠칠절 또한 오늘 우리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오랜 성서적 전통입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거의 보리 재배를 하지 않아 맥추절의 의의가 무색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계속 계승해야 할 소중한 믿음의 유산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칠칠절의 값진 정신은 초실을 구분하여 하나님께 바친다는 데 있습니다. 초실인 보리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므로 그해 밭작물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장자를 하나님께 드리고, 짐승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듯, 한 주간의 철 날인 주일을 바치고,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을 드리듯 그렇게 한 해 소출의 초실을 하나님께 드리며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절기와 관련해 또 하나 꼭 짚고 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령강림 사건이 바로 이 칠칠절, 오순절에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냥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에겐 모든 게 다 필연입니다. 굳이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것은 성령강림이 이를테면 기독교사의 첫 열매, 초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성령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개막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원은 성탄절이 아니라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초실절이었던 오순절에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칠칠절은 구약의 절기요, 유대교 전통의 규례일 뿐 아니라 우리 기독교의 기원이요 첫 열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절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이해하는 칠칠절의 정신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칠칠절에 발생한 성령강림 사건의 의의를 적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절기들에 대한 이 시대 우리들의 올바른 태도와 이해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적어 보십시오.
 
주님, 칠칠절이라는 절기 또한 의미심장하고 오늘 저희도 많은 것을 생각하며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칠칠절은 초실절입니다. 밭작물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초실과 초태생, 첫 소득, 첫 시간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그 초실과 초태생을 바치며 시인하고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저희도 그런 칠칠절의 정신을 꼭 계승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바로 그 칠칠절에 성령강림이 이루어진 사실도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하사 하나님의 심오하신 구속사적인 뜻을 바르게 헤아리며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베드로전서3장10절
 
 
   
어떻게 사용했는지 반드시 셈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상주심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심판을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 고백을 할 때마다 심판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정말 심판을 믿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이유는 기독교의 요체는 의, 절제, 심판이지만 
 즉 신앙의 진전은
 역순으로 이루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심판을 믿는 사람만 자기 삶 속에서 
잘라낼 것을 잘라낼 수 있다. 
그런 사람만 주님과 바른 관계를 평생 맺게 된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시험이 있다고 공지하면
시험을 중요시 하지 않는 학생은 공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험이 자기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학생들은 놀고 싶은 것을 잘라버리고 공부를 한다.
 그 결과로 좋은 성적을 얻는다.-이재철 목사의 ‘인간의 박수갈채와 주님의 심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에 새기고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마다
 내 호흡이 멎는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삶에서 절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기에
 평생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지만, 
주님 앞에서 구원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상주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라는,
 시간이라는, 능력이라는, 물질이라는 달란트,
가족이라는 달란트, 직위라는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반드시 셈하실 것이고
 그리고 그 셈에 의해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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