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의 이름 신 5:11 외 1

鶴山 徐 仁 2022. 5. 19. 11:07

 

여호와의 이름 신 5:11

 
 
05월 19일 (목)
   
여호와의 이름 신 5:11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십계명의 제3계명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11절). 
이름이란 단순한 기호나 호칭이 아닙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 자체, 그의 존재 전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어른의 이름,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입에 올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엄격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망령되이>란 히브리어 <랏솨웨>는 <거짓을 위하여, 범죄를 위하여, 사악함을 위하여, 허무함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런 것들에 욕되게 사용하면 큰 죄가 된다는 것인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강력한 부정 명령어 <로>가 문장 서두에 사용되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고 축복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데만 사용해야 합니다. 


<일컫지 말라>는 뜻의 히브리어 <로 팃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모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불손하게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은 영화롭고도 두려운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일국의 왕의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폐하나 전하, 각하 등의 극존칭으로 대신 했고, 자칫 이름과 관련해 실수를 했다가는 왕의 존엄을 능멸한 죄로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나 다짐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처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을 저주하거나 증오하며 보복하는 짓을 정당화하는 행위도 다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악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 그분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적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적어 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며 자신의 그릇된 행위를 정당화한 적이 없습니까?
 
주님, 저희는 너무도 쉽게, 너무도 경솔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을 해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 주신 십계명의 제3계명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이 새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지언정 더는 욕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의 혀를 단속해 주시옵소서. 결코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해치지 않도록 성령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어느 면접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면접 때마다 번번이 떨어졌어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면접에서도
떨어지게 되자,청년실업자는 회장님을 붙잡고 읍소했습니다.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뜻밖에도 회장님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홀어머니가 계시다고? 그러면 발을 씻겨 드리고 내일 다시 오게’”


이어령 저(著) 《느껴야 움직인다》 (시공미디어, 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처음 어머니의 발을 씻겨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발은 거북이 등처럼 굳어지고, 갈라지고 발톱은 닳아
검게 오그라져 있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피멍이 들도록 걸어온 사랑의
흔적들이었습니다. 청년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회사로 다시 찾아간 청년은 회장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회장님,감사합니다. 저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돌아서 나오려는 청년에게 회장님은 말했습니다.
“되었네. 내일부터 출근하게. 몸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 것처럼
고객에게도 똑같은 가슴으로 대해 주게나...”
부모님을 손으로 만져 보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마음의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병들고 약한 자들을 고치실 수
있었지만, 일부러 손을 만지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손을 만져 주시려 이 땅에 직접 오신 것입니다.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마8:15a)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was without sin. Hebrews 4:15 [NIV]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
과거에 주신 은혜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다.
 앞에 축복을 약속 받았지만 
아직 우리 손에 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돈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돈을 잃게 되면 기쁨도 잃게 된다.
 건강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게 되면
 기쁨도 잃게 된다.
 내게 건강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으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런 물질이나 건강이 우리들의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감사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성과 기쁨성이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작자 미상의 글 ‘헌신의 은혜성’에서-


은혜의 현재성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던 병이 들었던 성공하건 실패했건 
언제나 감사하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건 없건 이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 은혜의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내 마음에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혜를 못 받았다고 합니다.
 즉 받은 것의 조건에 따라 감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감사의 충분한 조건입니다.

 

노하신 여호와 왕하 13:1-9

 
 
05월 16일 (월)
   
노하신 여호와 왕하 13:1-9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8.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를 몰아내고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재정립하였으나, 잔혹한 숙청과 간교한 술책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커다란 진노를 사 외교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세벨의 모국인 시돈뿐 아니라 남왕국 유다, 아람 등의 주변국들과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결국은 이스라엘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는데 본 장의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게 더욱 누적되어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됨을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3-4절).
흔히 인간의 분노는 이비성적이고 잔인하며 자기 방어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는 그와 전혀 다른 감정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나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묘사됩니다. 여기 아람 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침공도 바로 그런 여호와의 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올바른 이성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명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7절).
아람의 잔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모습은 낙심과 좌절, 우상 숭배와 헛된 탐욕으로 방황하던 영혼이 신속히 하나님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이끄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십시오. 당신의 발길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으로 되돌리십시오. 
우리는 오직 그분의 의가 이루어지는 푯대를 향해 달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회복하는 복된 통로이자 운명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다시 우상 숭배에 빠졌고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사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거의 전멸의 위기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9절).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구원자>(5절)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 이스라엘이 숭배한 <아세라 목상>(6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 여호아하스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9절)?
 
주님, 온 세상이 우상을 따르느라 정신이 없다 해도 비록 그 수가 미미 할 지라도 끝끝내 하나님만을 섬기며 주님의 길을 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안락한 대세를 추종한다 해도 저희만큼은 필히 좁은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그가 일찍 죽은 기막힌 이유
 
“문종文宗(1414-1452)은 조선 왕 중에서도 늘 애틋함이 남아 있는 왕이
다.  29년의 세자 생활을 하는 동안 부왕 세종을 잘 보필했고. 1450년
조선 왕 가운데 최초로 적장자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문종은
연이은 국상의 후유증으로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신병주 저(著)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위즈덤하우스, 5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문종은 29년간 세자로 있으면서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던 세종을 보좌
하며 많은 성과들을 이루었습니다.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 사업에
힘썼고, 4군 6진 개척 때에는 직접 화차를 발명했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측우기의 발명 또한 문종의 업적임이 밝혀졌습니다. 문종은 무엇보다도
효심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종 승하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지극한 효심
이었다(중략). 지극한 효심이 문종의 건강을 해친 것은 어머니 소헌왕
후가 승하한 1446년(세종 28)부터였다. 문종은 어머니의 삼년상에 온 정
성을 다했다. 그 후 잠시 건강을 챙기며 국정을 운영했던 문종은 1450년
(세종 32) 2월, 아버지 세종의 승하를 맞았다. 이번에도 문종은 삼년
상에 모든 정성을 다했고, 이것이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60쪽)
문종은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많이 한 약골(弱骨)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연이은 부모의 상(喪)을 치르느라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것을 어
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성경이 말하는 효도는 다릅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마치 하나님을 공
경하듯 공경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천하신 부모님은 부활하여 천국
에서 다시 만난다는 믿음 안에서 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효도가 더욱 선하고 창조적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
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
리라.” (신5:16)
   
사도행전 1장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Acts 1:5 [NIV]
   
그리스도를 믿어 덧입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교회의 제직이 되고 중책을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방법과 수단을 그대로 동원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의인을 요구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관이지만 
그 죄인을 구원하는 일은 죄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인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을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고귀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 -박종태 목사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적 의인이란
 죄없는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어 덧입음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덧입은 사람은 그 생각과 말과 행동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총으로 인해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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