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현곤 칼럼
문 대통령이 퇴임 전 해야 할 일
중앙일보 입력 2022.04.26 00:42
고현곤 기자중앙일보 논설주간 구독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중도 하차로 대통령을 거저 줍다시피 했다. 촛불집회의 여세를 몰아 80% 넘는 압도적 지지로 출발했다. 마음만 먹으면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었다. 존경받는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절호의 기회였다. 탄핵으로 상처 받은 국민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같은 화해의 리더십을 기대했다.
만델라는 600년간 흑인을 가혹하게 탄압한 백인 정권을 용서했다.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한 검사를 대통령 관저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했다. 27년 옥살이와 모진 고문을 당한 그였다. 만델라는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덕분에 남아공은 신생 독립국이나 민주화 국가에서 벌어진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전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집권 중 가장 큰 잘못은 편 가르기 증오 부추기며 정치적 내전 초래 40%지지 취해 물러나면 불행해져 사과하고, 국민 응어리 풀어줘야 |
문 대통령은 만델라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취임사에선 “진정한 국민 통합의 시작”이라고 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정치 보복에 매달렸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거칠게 없었다. 온 국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진영의 보스’ 같았다. 모든 게 이념화, 정치화됐다. 경제·사회·외교정책마저 정치 슬로건으로 변질됐다.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탈원전, 정규직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일관계, 사법개혁 등 주요 정책이 줄줄이 실패했다. 문제가 있어도 중도에 고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고통 받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소득주도 성장을 더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늘 자주한다”는 혼밥으로 다져진 자신만의 세계, 특유의 아집을 꺽지 않았다. “반대 의견이 나오면 더 밀어붙이는 게 문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한 친문 인사의 말 그대로였다.
정책 실패야 그렇다 치고, 문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것은 편 가르기다. 노무현 정부의 유산인데, 더 심해졌다. 유시민·김어준 류가 저속한 추임새와 궤변으로 갈등을 부추겼다. 원로 진보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편을 갈라 지지세력을 동원하는 게 현 정부의 기본전략”이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2019년 가을 조국 사태는 나라를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두 동강 냈다. 국민 마음 속에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심었다. 문 대통령은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달 후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조국에 분노한 절반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한 발언이었다.
코로나 사태도 편 가르기에 이용했다. 민주노총 집회에는 엄격한 방역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파업 중인 의사를 공격하려고 의사와 간호사를 갈랐다. 그는 “의료진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라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고 페북에 썼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편 가르기였다. 간호사들조차 “글을 읽고 난감했다”는 반응이었다.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부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세입자와 집주인을 선악의 프레임으로 갈랐다. 한일 무역분쟁 때는 토착 왜구 같은 프레임을 동원해 외교 실패를 덮었다. 폭력시위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같은 진영 사람들을 대거 사면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업인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올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직선제로 선출한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민주 정부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대선을 앞둔 갈라치기였다.
편 가르기에는 남 탓과 내로남불을 동원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직전 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옷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가방, 많은 옷들, 이런데 쓰는 돈이 다 국가예산으로 나가는 것이다. 대통령 앞으로 굉장히 많은 특수활동비가 책정돼 있는데, 대통령 맘대로 쓰라는 돈이 아니다.” 내로남불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2주 남았다. 막판까지 40% 지지율을 유지했다. 편 가르기로 자기세력을 결집한 덕분이었다. 국민은 정치적 내전(內戰) 한복판에 놓여 있다. 3월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갈등을 씻어내고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당부했다. 집권 내내 분열을 조장한 그가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강인한 멘탈을 갖고 있거나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책도 내고, 언론도 만나면서 성과를 알리는데 열심이다. 지지율에 고무돼 자화자찬이나 자기 합리화에 몰두하다 물러나면 불행해진다. 25일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도 편 가르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는 없었다. 퇴임 후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지만, 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퇴임 전에 나라가 분열된 것을 진솔하게 사과하고, 국민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줬으면 한다. 이게 통합에 도움이 되고, 본인에게도 약이 될 것이다. 대통합 사면도 검토할만 하다.
양산 사저에 아래 말을 붙여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김수환 추기경). “우리를 갈라놓은 균열 위에 다리를 놓아야할 때입니다”(만델라).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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