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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정치는 어떤 제도도 악용하고 왜곡시킨다

鶴山 徐 仁 2022. 4. 20. 05:51

[사설] 한국 정치는 어떤 제도도 악용하고 왜곡시킨다

 

조선일보


입력 2022.04.19 03:22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권은희 원내대표. /뉴스1

 

 

국민의당 비례대표 권은희 의원이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반대하면서 스스로 “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비례대표가 자진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제명되면 의원직을 유지한다. 비례대표는 지역 주민의 직접 투표로 뽑히는 지역구와 달리 당의 추천으로 의원이 된다. 따라서 당의 노선과 정책, 결정에 더 충실히 따를 의무가 있다. 그래서 지역구는 탈당해도 의원직을 유지하지만 비례대표는 의원직을 잃는다. 비례대표의 도입 취지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하다.

 

국민의당은 18일 국민의힘과 합당을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양당 대표가 공식 합당 선언도 했다. 권 의원이 이에 반대한다면 스스로 사퇴하고 탈당하는 게 옳다. 권 의원은 광주에서 지역구 의원을 지낸 뒤 비례대표로 재선하는 특혜를 누렸다. 그런데도 당을 떠난다면서 안 대표와 동료 의원들에게 제명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 노선과 이념보다 의원직을 우선시하는 행태다.

 

비례대표 의원직 유지를 위해 탈당이 아닌 제명이라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 이제는 상습화되고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함께 데리고 나가기 위해 의원총회에서 ‘셀프 제명’을 의결했다. 국민의당 분당 때도 탈당파들이 똑같은 요구를 했다. 바른미래당 분당 때는 탈당파들이 비례 9명 ‘셀프 제명’을 의결했지만 법원에서 무효 결정이 났다. 지난 총선 때는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자기들 비례 위성 정당이 앞 순위 기호를 받도록 의원 꿔주기를 시도하면서 비례의원들을 셀프 제명해 보내는 낯 뜨거운 꼼수 경쟁까지 벌였다.

 

민주당은 김홍걸·윤미향·양정숙 의원 등의 각종 투기·후원금 불법 의혹에 대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제명했다.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의원직까지 유지시켜 준 것이다. 한국 정치는 어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왜곡시키고 악용한다. 비례대표 의원직을 둘러싼 꼼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