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그 나물에 그 밥’ 비대위로 무슨 쇄신을 기대하나
입력 2022-03-12 03:00업데이트 2022-03-12 10:49
포장지만 살짝 바꾼 윤호중 민주 비대위
쇄신 없는 안정으로 위기 극복할 수 있나
정연욱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0일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임시 지도부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대선 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원내대표가 비대위 수장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비대위는 패인(敗因)을 진단하고 과감한 쇄신책을 모색해야 할 텐데, 비대위에서 ‘비상’이 빠진 느낌이다.
아마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최소 득표율 차(0.73%포인트)로 진 아쉬움이 큰 탓일 것이다. 그래서 갈등 소지가 큰 쇄신보다는 당 체제 안정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지방선거가 두 달여 남았으니 선거를 준비할 시간도 촉박하다는 현실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쓴 ‘아(阿)Q정전’의 주인공 ‘아Q’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겪을 때마다 자기 탓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고 아픈 기억은 묻어버린다. 현실은 외면하고 정신적으로 만족하는 ‘정신승리’다. 민주당 안에서 “졌지만 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민심의 호된 회초리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5년 만에 정권교체다.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 정권이 두 번씩 이어가는 ‘10년 주기설’이 깨졌다. 시그널은 벌써 1년 전부터 예고됐다. 지난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18%, 28%포인트 참패를 했다. 민주당의 강고한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는 스윙보터로 변신했다. 특히 보수 정당의 무덤이었던 서울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뼈아팠을 것이다. 표차는 줄었지만 이 흐름은 이번 대선에서 이어졌다. 정당의 지지기반이 재편되는 것이 중대(重大)선거다. 민주당은 중대선거의 의미를 애써 지우려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5년의 초라한 성적표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이재명 후보가 선거 기간 중 큰절을 하며 여러 차례 사과를 왜 했겠는가. 하지만 그 사과가 너무 늦었다. 부동산 실정이나 조국 사태, 거여(巨與)의 입법 독주가 벌어질 때 “이건 잘못됐다”는 이의 제기는 없었다. 선거가 다급해지니 사과한다고 해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겠나.
판세가 어려워지자 낡은 레코드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2002년 노무현의 극적인 대선 승리를 끄집어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국익과 직결된 정책에 대해선 지지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였던 기억은 보이지 않았다. 부동산 대책 실패 등으로 인기는 급락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전통적인 좌파 지지층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지 세력을 감싸는 데 급급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라면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지지층 40%만 결집시키면 진영 대결에서 밀리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국익을 내다본 노무현의 국정 운영엔 눈을 감은 것이다. 국민통합 구호가 힘을 받기 어려웠던 이유다.
흔히 대선은 미래비전 선거, 총선은 과거에 대한 심판선거라고 하지만 잘못된 분석이다. 과거와 미래는 기계적으로 쪼갤 수 없다. 미래 리더십을 보기 위해서도 과거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선에서 ‘닥치고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권 5년, 이 후보의 리스크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 40%대가 역대급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보고 싶은 절반만 본 것이다. 나머지 60%는 똘똘 뭉쳐버렸다. 이 60%가 문재인 정권을, 민주당을 심판한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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