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힘 모아 돌부리 함께 치울 때
중앙선데이 입력 2022.03.12 00:30
정여울 작가
최근 들어 부쩍 ‘작가님, 사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독자들의 고민을 듣고 있으면 저 또한 덩달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가 아는 온갖 문학작품과 제 삶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위로의 말들을 전해 줍니다. 그래도 항상 지혜와 위로의 언어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아무리 정성스레 낱말과 문장을 매만져 결 고운 편지를 쓰더라도,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아픔을 돌아볼 여유 따윈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황금자루 주는 것보다 모두가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든 이때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말았으면 |
어쩌자고 저는 작가가 되어서 힘들 때 힘들다고 투정부릴 자유마저도 반납했을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것은 제가 스스로 선택한 아름다운 지옥이라, 불평할 수도 없답니다. 절망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을 때마다, 문학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었으니까요. 『데미안』을 통해 남들에겐 보여 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 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진짜 나’를 발견했고, 『죄와 벌』을 통해 그 누구에도 내 아픔을 말할 수 없을 때 방구석 낡은 책장 속에서 빛나는 소울메이트를 마침내 찾았으니까요.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문학의 숲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나 자신일 수 있으니까요.
선데이 칼럼 3/12
요새 저에게 ‘내 아픔보다 더 소중한 타인의 아픔’을 깨우쳐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Walking Dead)’의 에피소드 중 ‘길가에 박힌 돌(Rock in the Road)’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왕국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박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피해 다니기만 합니다. 그 거대한 바위 탓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치고, 마차를 끄는 말의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아무도 치우지 않지요. 그때 한 소녀가 나섭니다. 가난한 소녀의 가족이 정성껏 빚은 맥주를 가득 실은 수레가 돌부리에 걸려서 와르르 쏟아져버린 것입니다. 맥주통은 떨어져 깨져 버렸고, 맥주는 흙에 스며들어 버렸습니다. 모두가 굶주리는데, 돈은 한 푼도 없으니, 맥주가 마지막 희망이었지요. 소녀는 주저앉아 서럽게 울다가 문득 거대한 바위가 왜 항상 거기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소녀는 무작정 바위를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올 때까지. 바위를 힘겹게 파냈더니, 놀랍게도 그 안에 황금이 잔뜩 든 자루가 보였습니다. 바위는 왕이 도로에 일부러 설치해 둔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바위를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든 파헤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왕의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위는 일종의 수수께끼이자 미션이었고, 황금자루는 왕의 포상이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훌륭하지만, 저는 황금자루가 위험한 유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황금자루가 있어야만, 높은 사람의 포상이 있어야만 힘겨운 노동의 보람이 있을까요. 돌부리가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이라 믿는 자에게는 끝없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돌부리를 치우는 도전을 하는 사람은 끝내 세상을 바꾸니까요. 그 자체가 황금자루보다 멋진 포상 아닐까요.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끝내 세상을 바꾸니까요. 사람들이 결코 다치지 않고 집에 돌아가는 것, 그보다 더 멋진 보상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황금자루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위를 치우려는 마음, 저 바위가 사람들을 자꾸 다치게 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된다는 올바른 세계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황금자루라는 보상이 없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있는 바로 당신의 용기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당신의 희망도 사랑도 우정도, 그 무엇도 결코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갈 길 한가운데 장애물이 있다면, 서로 떠밀지만 말고 함께 치우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힘을 모아 돌부리를 치우는 것이야말로 황금자루보다, 부동산이나 주식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황금자루가 포상으로 주어지는 것보다는 모두가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힘든 일과를 끝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따스한 저녁을 먹는 것이 황금자루의 유혹보다 더 소중하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황금자루의 포상에 눈이 팔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의 고통에 무심했던 것이 아닐까요.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편안하게 마실 물과 숨 쉴 깨끗한 공기가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통에 결코 눈감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타인의 위로가 필요한 그 많은 순간. 당신이 예전처럼 고통을 참기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적극적으로 세상의 기쁨을 찾고, 마침내 당신이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는 소식이 이토록 멀리 있는 내게도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을 볼 수 없는 고통을. 당신을 볼 수 없어도 당신이 웃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의 부재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안의 환한 이야기의 빛이 울고 있는 당신에게 끝내 가닿도록, 오늘도 밤늦도록 내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 둡니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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