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가운데 일생으로 한정된 인간의 세상살이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오직 단 한 번의 기회를 개인마다 어떻게 설계를 하고 어떻게 시행에 옮기느냐에 따라서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전개되어 저마다의 모습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흔히 많은 사람들은 한 인간의 일생은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한 편의 드라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본인은 정말 이 말에 긍정하는 편이며, 드라마의 창작자, 연출가 겸 감독을 저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조물주이신 하나님이라는 믿음 가운데 생활의 근간으로 삼아서 세상살이에 임하고 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저마다 성경이나 경전 등을 통해서, 세상살이의 지혜를 습득하고 쌓아서 삶의 지표로 살아가겠지만, 인간 세상에서 아직까지는 신[神]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인간의 세상살이에 관한 원안이나 이와 관련된 질문에 자신 있게 세상살이의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마다 세상살이의 모범 답안지를 만들어서 시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자신이 설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참 많다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라고 받아들이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주인공은 감독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만일 감독의 요구에 따를 수 없을 경우에는 무대에서 조기에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펼치고 있는 주인공은 100% 무조건 다 순종하는 것은 아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감독에게 대화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거나 교제의 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경우는 바로, 기도가 인간인 연기자와 감독이신 하나님과의 소통의 시간이며,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도와 응답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비우면서, 채워가는 세상살이'라고 생각한다.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을 수 있을 때에는 아직도 자신의 곳간에는 채울 수 있는 빈 공간,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곳간이 이미 꽉 찬 상태이기 때문에 채워줄 수 있는 빈 공간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세상이라는 무대 가운데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과욕으로 인하여, 자신의 곳간을 다 채우고도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은 청중에게 더 돋보이고 싶어 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마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분수에 알맞은 달란트대로 먹을 것, 입을 것, 쉴 곳을 적당하게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아예 무대에서 퇴장까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여담으로, 첨언을 한다면,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많은 교인들이 즐겨 찬송하는 찬송가의 가사 중에, "~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라는 구절이 있는데, 본인은 이 가사를 자신의 머리로는 넘치도록이 아니고, 알맞도록 채워 주소서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비우라는 얘기를 가끔 나누게 될 때, 예전에는 그 방법을 어떻게 찾을까를 고민도 하였지만, 이제는 구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면, 전자에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곳간이 이미 비워야 할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작은 것,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 꺼리를 찾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을 통해서, 항상 비우면서 채워가는 세상살이를 시도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안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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