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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셋 싱글맘에서 퍼스트레이디로…한국계 유미 호건의 기적

鶴山 徐 仁 2021. 10. 27. 11:02

딸 셋 싱글맘에서 퍼스트레이디로…한국계 유미 호건의 기적

 

중앙일보 입력 2021.10.27 05:00 데이트 2021.10.27 08:54


박현영 기자 



 

 

미국에 ‘퍼스트레이디’는 백악관에만 있지 않다. 50개 주(州) 지사와 수도 워싱턴DC 시장의 배우자도 ‘퍼스트레이디’ 또는 ‘퍼스트 젠틀맨’으로 불린다. 워싱턴DC와 접한 메릴랜드주 래리 호건(65) 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62)은 미 역사상 첫 한국계 퍼스트레이디이다. 2015년 남편의 주지사 취임 후 7년째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최근 42년 이민 생활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을 펴냈다. “영화를 몇 편도 만들 수 있는”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유미 호건 미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사진 이광조]

 

 

지난 20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주도(州都) 아나폴리스에 있는 관저에서 호건 여사를 만났다. 노랑 재킷에 다홍색 스커트, 쪽진 머리 스타일에 한국적 정서가 물씬 배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어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국도, 미국도 저처럼 싱글맘도 많고, 고생하시는 분도 많을 거예요. 그분들이 ‘유미 호건도 이렇게 살았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고’라고 생각하며 편이 돼주고 동지애를 느꼈으면 해요.”

 

 

2004년 결혼식 때 유미 호건의 세 딸이 들러리를 섰다. [유미 호건 제공]

 

 

그는 첫 결혼에서 얻은 세 딸을 데리고 2004년 호건 주지사와 재혼했다. 45세 때였다. 세 살 연상인 남편은 부동산업을 하는 노총각이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남편과 한국계 부인, 세 딸을 구성원으로 한 ‘모던 패밀리’가 탄생했다.

 

전남 나주에서 8남매 막내 ‘박유미’로 태어난 호건 여사는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서” 스무살 때 도미(渡美)를 결심했다. 밥을 굶진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은 가정 형편에 아메리칸 드림을 갖게 됐다. 네 살짜리 딸을 둔 한인 동포와 결혼해 텍사스주에 정착했다.

 

하지만 남편이 술과 도박에 빠져 지내면서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처소생의 큰딸과 자신이 낳은 둘째ㆍ셋째 딸을 홀로 키우는 20대 싱글맘이 됐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이었고 이혼까지 했으니 자존심 때문에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선 하루 십수 시간씩 일해야 했다.

 

-생계를 어떻게 꾸렸나.


“주로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나 캐셔(계산원)로 일했다. 스시 레스토랑에서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다. 내가 쉬면 돈이 없었다. 아파도 아플 수가 없었다. 내가 누우면 어디서 돈이 들어오겠나.”

 

-어떻게 버텨냈나.


“외롭고 나이도 어렸지만 내가 버리면 우리 아이들이 어딜 가겠나, 고아원 가지.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야지, 마음먹었다. 대가족에서 크면서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세 딸은 바르게 컸다. 큰딸은 군 복무를 마치고 회계사로, 둘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검사로 일하고 있다.

 

유미 여사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다 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서 “나는 여건이 어려울 때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잠들면서 ‘난 아티스트가 될 거야’라고 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덕에 남편도 만났다. 메릴랜드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그룹 전시회를 연 2000년 어느 날, 근처에 부동산을 보러 왔다가 호기심에 갤러리에 들른 호건과 마주쳤다. 4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세 딸이 엄마의 들러리를 섰다.

역대 메릴랜드주 퍼스트레이디 초상화가 걸린 관저의 빅토리아룸. 유미 호건 여사가 첫 아시아계 퍼스트레이디이다. [사진 이광조]

 

 

주지사가 출마를 결심했을 때 유미 여사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한인 사회는 호건 후보를 위한 첫 선거 자금 7800달러(약 1000만원)를 모았다. 발로 뛰어 민주당 성향이 강한 ‘블루 스테이트’ 메릴랜드에서 공화당 소속 호건이 승리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호건 주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5년 혈액암 3기 말 판정을 받았다. 유미 여사는 “힘겨운 선거 캠페인 끝에 기적처럼 주지사가 됐는데, 청천벽력이었다”고 회고했다.

 

메릴랜드 전역에서 주지사를 응원하는 ‘호건 스트롱’ 메시지가 답지했다. 호건 주지사는 6개월간 치료받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5년간 재발하지 않아 지난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여세를 몰아 2018년 재선됐다. 그해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공화당이 대패했지만, 호건은 10%포인트 이상 큰 차이로 이겼다. 공화당 주지사가 재선에 성공한 건 주 역사 234년 만에 두 번째에 불과했다. 메릴랜드주는 최대 재선까지만 허용하므로 내년 말이면 호건 부부는 관저를 떠나게 된다.

 

블루 스테이트에서 성공한 공화당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는 정치 양극화가 심한 미국에선 귀한 자산이다. 호건 주지사는 재임기간 줄곧 높은 인기를 유지했으며, 지난 2월 조사에선 지지율이 65%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호건은 2024년 대선 주자로도 거론된다. 트럼프의 재출마 여부가 변수이긴 하나, 호건의 출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최근 버지니아ㆍ조지아주 등 공화당이 열세인 경합주의 주지사 선거 유세 지원 연설에 나서는 등 전국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당선될 경우 첫 한국계 백악관 안주인이 탄생하게 된다. 유미 여사는 만약 남편이 대선 출마를 상의하면 “항상 겸손하고 초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겠다”면서 “주지사에 처음 나갔을 때처럼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텃밭에서 재선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유미 여사는 “메릴랜드는 공화당이 20%밖에 안 되는, 최고 블루 스테이트여서 많이 노력해야 했다”면서 “민주당원을 장관에 앉히는 등 관료를 골고루 기용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주민이 원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공약했다”고 설명했다.

래리 호건 미 메릴랜드 주지사 가족. [유미 호건 제공]

 

 

가정 내 ‘민주화’도 한몫했다. 유미 여사는 “둘째 딸과 사위는 공화당원이지만, 큰딸 내외와 셋째 딸 내외는 모두 민주당원”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가 공화당 정치인이라고 자녀들에게도 공화당을 강요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아버지를 찍어라 이렇게 말도 못해요. 그냥 믿는 거죠. 찍었겠죠. (웃음) 저희도 식사 테이블에서 정치 얘기를 해요. 하지만 서로 비판하거나 논쟁을 하진 않아요. 남편은 거의 코미디언인데, 농담으로 술술 넘기면서도 민주당원인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요.”

 

미국에서 산 날이 한국서 산 날보다 두배 많지만, 유미 여사에게 영어는 여전히 숙제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종종 연설해야 하고, 주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짧은 영어 때문에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저 여자 영어 못한다”는 수군거림은 인종 차별에 가까웠다.

 

7년째 공식 석상에 나서다 보니 한결 수월해지긴 했다. 유미 여사는 영어를 익히는 요령으로 “겁내지 말고 대화하라. 좀 틀려도 괜찮아, 내가 미국 사람도 아닌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떳떳하게 말하면 된다”고 했다.

 

유미 여사는 지난해 정원에 무궁화와 동백꽃을 심었다. 관저를 떠나더라도 한국인으로서 이곳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누군가 한국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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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