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요한복음 21장 19-25절)

鶴山 徐 仁 2020. 6. 10. 11:19

06월 10일 (수)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요한복음 21장 19-25절)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실망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망해서입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이나 리더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걸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을 때처럼 그들에게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게 하신 이후에 뭍으로 올라왔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 “내 양을 치라”고 하시면서 사명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에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보니 예수님 옆에 사랑스럽게 기대어 있는 제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은혜도 받고 사명도 받았는데 그 제자를 보니까 속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헌신하다가 누군가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보이면 이렇게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은 또 오해하며 생각합니다. “그는 죽지 않나봐” 우리는 이렇게 상황을 꼬아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지 않습니까? 자신의 약함과 죄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 내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먼저 보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항상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기 전에 너의 허물을 보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대 그 마음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때문에 내가 힘들 때,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가 가는 곳마다 서로 오해가 있거나 미움이 있는 나 다툼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으로 사랑과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길에 그것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기준으로 먼저 나를 비춰보고 회개하기 원합니다.

-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전략임을 깨닫고 그 마음을 쳐 내버리기 원합니다.

 

주님! 내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될까 신경 쓰다가 정작 나를 향한 주님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잊어 버렸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것이 선하다는 것을 믿고 의심 없이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가 차가운 이유

 

“ -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 젊은 부부가 가정불화를 이유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 젊은 부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의 지방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첫 번째 기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두 번째 기사는 「안나

카레리나」입니다. 세 번째는 「보봐리 부인」이고요.

신문에는 이렇게 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박웅현 저(著)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131,13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눈물과 애상함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한 줄의 객관적 기사로 표현되면

무미(無味)하기 그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벅찬 감동에 황홀하였습니다.

그때 도마가 말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요20:25)

도마는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흥분하지 말라. 감정에 치우치지 말란 말이야. 그때 너희들이 본

것은 잠시 헛 것을 본 것일 수가 있어.”

도마는 그저 객관적일 뿐입니다. 도마가 이렇듯 차가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에 없었기 때문입니다(요20:24).

그곳에서의 감격과 충만함의 체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개 교회

에서도 회사에서도 차갑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도 이런 사

람에게는 그저 흔한 젊은 남녀의 자살 이야기 일 뿐입니다.

객관적 시각은 조화와 균형을 잡는 중요한 시각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충만함이 없는 객관성은 진주도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If any of you lacks wisdom, he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him.(NIV)

   

하나님은 여러분도 요나처럼

도망가는 요나를 추격하시고,

바다에 빠진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물고기 밥으로서 인생을 마쳐도 될 자신을 살려주시고

두 번의 기회를 주시고,

자신의 입을 통해 전해진 말씀을 듣고,

악한 왕이 회개하게 하시고,

자신의 사역을 통해 니느웨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있는 그대로 요나서를 기록한 것이다.

요나서를 읽어보면 .... 자신은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면 된다. 하나님만 드러나면 된다는

마음으로 요나서를 기록한 것이다.

마치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는 고백과 같다.

-권오진 목사의 ‘니느웨와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내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1장의 단계부터

진정한 회개 후에, 자신의 약점까지도 그대로 나타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4장 이후의 단계 어느 지점에 여러분이 계십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도 요나처럼

온전한 사람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추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나처럼 힘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따르지 마시고 지금 현재 삶의 자리에서

오직 예수임을 아는 신자가 되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