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야베스 길르앗 (삿 21:8-12)

鶴山 徐 仁 2020. 6. 5. 09:17

야베스 길르앗 (삿 21:8-12)

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9절).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쪽 건너편에 있는 므낫세 반지파에 속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기브아에서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한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을 단죄하기로 한 미스바 총회에도, 또 베냐민 지파와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스바 총회가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들은 칼날로 치라>(10절)고 했고,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12절)은 살려 그들을 <림몬 바위로 도망하여 살아남은 베냐민 사람 육백 명>에게 주어 <이스라엘 중 한 지파의 사라짐>을 막으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야베스 길르앗>과 소멸의 위기에 몰렸던 베냐민 지파가 서로 관계를 맺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스라엘 총회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은 부모들의 딸들이 역시 그 비참한 사건의 원흉인 베냐민 사람들에게 넘겨져 그들의 여인들이 된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베냐민과의 인연은 참으로 묘합니다. 후에 베냐민 출신으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을 모아 암몬과의 전쟁을 벌여 마침내 야베스를 구해냅니다. 그리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때의 사울의 은헤를 잊지 못해 후에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자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7일 동안 금식하며 애도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천추의 한을 품을 수도 있었던 야베스 길르앗과 베냐민 지파는 이렇듯 서로 은혜를 나누는 관계로 오래 역사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 묘합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에 소집된 이스라엘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 총회가 야베스 길르앗의 처녀 사백 명을 베냐민 지파에 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울 왕이 암몬 족속으로부터 길르앗 야베스를 구해준 이유는?

 

주님, 후에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를 보내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삼하 2:5)고 했습니다. 서로 원수지간이 될 뻔한 야베스 길르앗과 베냐민 지파는 이렇게 서로를 돕고 받아주며 더불어 살았습니다. 부디 이들의 관계와 화해의 역사가 이 시대 저희들에게도 소중한 모범과 귀감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고전 중의 고전

 

“고전은 다소 어렵더라도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읽어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70명이나 탄생시킨

시카고 대학교와 주룽지 총리,

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의 지도층 인사를 대거 배출한

북경의 이공계 명문대인 칭화 대학교의 공통점은

고전 필독서 100권을 선정하여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반드시 읽게 한다는 점이다.”

 

김달국 저(著) 《29세까지 반드시 해야 할 일》

(새로운 제안, 13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고전(Classic)이란 라틴어의 클라시쿠스(classicus)라는 단어에서

유래 하였습니다.

클라시쿠스는 로마 시민계급의 최상급을 뜻하는 용어였습니다.

고전은 책 중의 최상급입니다.

《용비어천가》의 그 유명한 첫 부분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새 꽃 좋고 여름(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를새 내에 이러 바랄(바다)에 가느니”

모든 나무가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샘물이 다 바다로 가는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옛날의 문학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가 고전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과 가뭄을 견뎌낼 만한 깊은 뜻을 지닌 문학작품,

즉 개성이나 시대성이나 지역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작품이

고전이 됩니다.

현대 환상문학의 3대 거장이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을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고전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환경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어느 시대 어느 환경의 사람에게도

아직도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인류 최고의 고전는 성경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저자는 흠 많고

오류투성이인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인문 고전은 영감 정도를 주지만,

성경은 영생에 이르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죄 용서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말해 줍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욥기 12: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To God belong wisdom and power;

counsel and understanding are his.(NIV)

   

믿음의 대상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수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은

종종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깊이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자로 미묘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팀 켈러의 [복음으로 세우는 센터처치] 중에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놓치는 것이

인생의 주어가 나의 행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구원받기 위해 더 큰 믿음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칫 행위적인 것으로 흘러갑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