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옵소서!(삿 16:23-31)외 1

鶴山 徐 仁 2020. 4. 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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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월 02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옵소서!(삿 16:23-31)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본문 해석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삼손은 나실인임에도 허랑방탕하게 살다 딱 한번 죽음 앞에서 비로소 그의 힘과 뜻을 모아 맨 처음의 목적에 집중하여 거사했습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소서!> 이것은 그의 마지막 소원이자 그의 본래의 사명에 복귀하고자 한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영웅 삼손의 최후기도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30절).

 

삼손은 12명의 이스라엘 사사 가운데서 유일하게 적에게 잡혀가 산화한 비운의 사사입니다. 그러나 홀로가 아니라 수많은 블레셋의 방백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장렬한 그 죽음으로 블레셋에 대한 원수를 대대적으로 갚은 셈입니다. 

주님도 삼손이 다곤 신전의 기둥에 결박된 것처럼 그렇게 십자가의 형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배반당하시고 하나님마저도 외면하신 듯 침묵하고 계신 그 최후의 순간에 삼손이 <이번만 강하게 하소서!>하고 한 것처럼 주님도 피곤과 절망, 아픔 속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것은 복수를 위해 최후의 소원을 빌었던 삼손의 그것과는 다른, 오히려 사랑의 철저화이며 이쪽과 저쪽의 불화 사이에 자신을 화해의 제물로 바치는 중보자의 탄원이었습니다. 

 

이렇듯 때리는 자와 맞는 자 가운데 서서 맞는 자의 매를 자신의 온몸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주님의 그런 화해의 죽음이 바로 부활을 가져온 것입니다. 

삼손의 복수의 죽음은 배타적인 민족의식을 낳았지만 주님의 부활은 전혀 새로운 미래를 개막했습니다. 

그것은 때린 자나 맞은 자가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어 참여할 부활의 미래이며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결단과 적용

- 본문의 삼손과 희랍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복음서의 주님의 최후를 비교해 보십시오.

- 고린도전서 15:55-57 말씀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 삼손의 생애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삼손의 최후는 복수고 프로메테우스의 최후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용서와 화해셨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지만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그 파기-된 언약을 회복하사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의 비밀과 신비를 깊이 깨닫게 하사 삼손의 최후가 아닌 주님의 대속의 죽음에서 저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은총을 바르게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끝까지 하는 힘
인문학 나눔

“숨은 8부 능선에서 가장 가쁘다.  

닿을 듯 닿지 않고, 되돌리기엔흘린 땀이 아까운 바로 그 지점이다.  

고지를 밟는 자와 포기하는 자는여기서 갈린다.  

아홉 길 산을 만드는 일도 한 삼태기 흙에서 어긋난다고 했다.  

고지는 고비 몇 보 앞에 있다.  

그러니 숨이 차다는 것은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신동열 저(著) 《구겨진 마음 펴기》 

(한국경제신문, 37쪽) 중에 나오는구절입니다.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싹은 돋았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고,  

꽃은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불수자 유의부. 

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곡식이 처음 나온 것을 묘(苗)라고 하고, 꽃이 핀 것을 수(秀)라고 하며,

곡식을 이룬 것을 실(實)이라고 합니다.  싹이 파릇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꽃을 못 피우거나,  꽃 핀 것을 보고 알곡을 바랐지만 

열매가 없는쭉정이가 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보의 아들 종무(宗武)는 아버지를 닮아 시를 잘 써서 

완병조(阮兵曹)가 칭찬한 글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이후후세에 아무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

재는 꾸준히 노력하는 자를 못 이깁니다.  꾸준함이 재주를 이깁니다.

사람은 8부 능선 고빗길에서 그의 뚝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산에 가린앞 풍경은 그 산 능선을 넘어야 보입니다.

끝까지 하는 힘이 온전한 힘이고,  끝까지 하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기독 메시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도서 큐티더 보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교훈은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라."이다

이때 '자다'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진 상태를 가리키지만, 

이 대목에서는 몽롱함 속에 빠져 있는 

정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길을 따르려는 이들은 늘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김기석 목사의 ‘왜들 자고 있느냐’에서-

 

살다보면 시험이나 시련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다면 

시험에 빠져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들 자고 있느냐?" 이 말씀을 늘 생각하며 

깨어있기를 기도하십시오. 

지금 우리도 여전히 몽롱함 속에서

 갈 짓자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고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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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월 01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예수님, 간절하게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누가복음 19장 1-10절)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본문 해석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제일 만나고 싶은 분이 주님이 아니라면 그 시간들은 얼마나 헛된 시간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만날 만할 때’ 찾지 않으면 후회할 날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변했다면 나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여리고는 그 당시에 사해에서부터 올라오는 물품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가는 물품들이 거래되는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걷히는 곳이 가이사랴, 가버나움, 여리고였습니다. 거기에서 세금을 걷는 사람은 당연히 부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금의 종류는 정말 많았습니다. 인두세, 토지세, 소득세 뿐 만 아니라 마차에 바퀴별로 세금을 부과하고, 갑자기 물건을 검사하여 물건대로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세리장이 삭개오였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예수님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데 자신의 신분이 있어서 당당하게 예수님께는 나아가지 못하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거리에 나간 겁니다. 오늘 말씀 3절에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고자 하였다’라고 기록하지만 헬라어에서는 이것을 ‘갈망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자 갈망해서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납니다. 

 누가 주님을 만납니까?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 애타게 찾는 사람이 만납니다. 한번 만났다고 만족하지 마십시오.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은 더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거저 얻으면 감사한 줄을 모르는 법입니다. 보모에게 와서 감격하며 자신을 낳아 준 것을 감사하는 자식을 많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치룬 대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사람 앞에 드러내야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이 다 보이도록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심이 드러나는 것, 사람들이 세리장이라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있지만 너무나 주님을 보고 싶으니까 그런 것들은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것을 뿌리치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신앙생활은 하지만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의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 나의 콤플렉스 때문에, 사람의 시선 때문에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결단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삭개오처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건 주님을 만나는 기쁨 때문에 그 모든 대가를 기쁘게 지불할 수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인문학 큐티더 보기
부엌이 예술?
인문학 나눔

“샤르댕이라는 화가는 일상을 그린 사람이에요.  

책 속에 보면 샤르댕이 그린 부엌 그림이 나와요(중략).  

아무것도 아닌 날들, 특별할 것없는 날들을 그렸죠.  

그런데 그게 예술이 됐어요.  루브르 박물관에가면 

샤르댕 섹션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중략).  

샤르댕이 일상을 그린다음에서야 우리가 흔히 보는 

생수통,책상, 연필,안경이 훌륭한 예술작품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박웅현 저(著) 《다시 책은 도끼다》 

(북하우스, 33-3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일생 내내 부엌을 보아왔지만 라면이니 김치찌개를 떠올릴 뿐,  

예술적미학(美學)은 없었습니다.  

샤르댕이 그린 부엌 그림을 보면서,  

엌이 예술로 가득차 있는 미의 공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비단 부엌 뿐만이아닙니다.  

평생 보아온 권태로운 생수병, 운동화, 아스팔트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잠들어 있던 일상의사물들이 예술가들에 의해서 깨어납니다.

‘감사’도 이와 같습니다.  성숙한 성도들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범사’란 우리들이 늘 접하는 일상들입니다.  

예술가들이 뻔한 일상에서 미학을 발견하듯이, 

성숙한 성도는 당연한 일상처럼 보이던 것들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

기독 메시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그림 큐티더 보기
디모데전서 6장 12절
고린도전서 15:1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your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NIV)

도서 큐티더 보기
선택

인생의 어떤 선택은 치명적일 때가 있다. 

오르바의 선택이 그렇다. 오르바는 나쁜 여자가 아니다. 

시어머니를 섬길 줄 아는 심성을 지녔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가진 착한 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오르바가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신들을 선택했다고 기록한다. 

오르바가 살고자 한 선택은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오르바에게도 한 번의 선택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르바는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여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 여인은 이것을 끝으로 성경에서 사라진다.

-김남국의 [넌 내가 책임진다] 중에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빚으시고 다루어 가시는 방식을 

잘 안다면 늘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많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우리의 관심과 생각이 하나님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너무 많은 핑계를 찾기보다 하나님의 편에 서는 순종을 배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