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시 주님을 찾는 삶(시편 42:1~5) 외 1

鶴山 徐 仁 2019. 12. 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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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다시 주님을 찾는 삶(시편 42:1~5)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본문 해석

시편 42편은 시인이 예루살렘을 떠나 고통과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노래입니다. 

 

그의 신앙을 보면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 간절히 주님을 찾는 신앙입니다.(1-2)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온산을 헤매는 사슴과 같이, 아주 간절한 심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나를 둘러싼 절망적 상황입니다.(3) 환난을 지켜보던 사람들은“네가 그토록 믿었던 하나님은 어디에 있기에 네 형편을 돌아보지 않느냐. 네 하나님이 주무시고 계시냐”고 조롱합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 가운데 주야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절망은 시시 때때로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마음을 지키며 주님을 의지하면 절망이 변해 희망이 되고 고난이 변하여 축복의 발판, 성숙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입니다.(4-5) 시인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지금 그럴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가슴아파 합니다. 시인은 절망이 다가왔을 때 절망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는 절망의 때에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며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천지를 장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이 지치고 마음의 상처로 눈물 흘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불안할 때 원망과 불평, 절망하지 말고 주님을 찬송하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히12:2)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십니다. 주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면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단과 적용

- 성도로서 주님을 찾는 삶에 부족함이 있다면 고백하고 열심을 내십시다.

- 어려운 상황으로 사람에게 의존했다면, 이젠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 원망과 낙심보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자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저를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멀리하며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예배에 소홀했던 잘못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시고 회복시겨 주옵소서. 

주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주셔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인문학 나눔

“어느 날,매튜 헨리 목사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 전에 소매치기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소매치기는 지갑을 훔쳐갔지만,내 생명은 훔쳐가지 못했다.설령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털어 갔다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많은 것이아니다.  

또한 내가 약탈한게 아니고,약탈 당했기에 더욱 감사하다.

”김태광 저(著) 《내 안의 행복》 (가이드포스트, 127쪽) 중에 나오는구절입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개구쟁이아이 다섯을 데리고 탔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놈, 떼를 쓰는 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놈에다 버스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피우는 놈 해서 버스 안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런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저주하고 팔짝팔짝 뛰기까지 합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그 부흥사는 도무지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그래, 감사해야지!  

그리하여 부흥사는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기독 메시지

“하나님, 저 아줌마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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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4~15절
고린도전서 15:10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just as the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NIV)

도서 큐티더 보기
하나님의 일은 혈기로 할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젊었을 때 우뢰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혈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베드로도 말고의 귀를 자를 정도로 혈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주님은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셨다.

우리는 잘못하면 혈기로 대하기 쉬운 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혈기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혈기부리고 성질내는 것은 

무슨 변명을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작자 미상의 글 ‘좋은 신앙, 나쁜 신앙‘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 아니면 다 적으로 간주하고 

우리교회가 아니면 다른 교회에는 

구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파의 담도 높아지고

 교회의 담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신앙의 현상이 아닙니다. 

 박해가 있으면 다른 곳으로 피하여 

복음을 전하십시오.

예수님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를 떠나 

70명의 문도를 내 보내시면서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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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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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아얄론 골짜기(삿 1:29-36)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본문 해석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좇아내지 못했다>(9절)고 합니다. 

스불론도, 아셀도 납달리도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경우는 도리어 단 지파를 산지에 몰아넣고 그 골짜기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단속했다고 합니다(34절).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격퇴할 때 <아얄론> 골짜기에 달이 머문 사건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적입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수 10:12-13).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여호수아 10장에는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아니하였다>(13절)는 말씀도 있습니다. 

 

여리고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이 아얄론 골짜기의 이적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어떤 기적도 베푸시고, 그 어떤 이적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아모리의 다섯 왕들을 모두 막게다의 굴에서 체포하여 처단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던 여호수아의 전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모리 족속들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악의 세력의 진멸은 이토록 지난하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을 용인하거나 인간적인 연민을 품지 말고 단호히 척결할 것을 주문하신 겁니다. 살려주거나 대충 넘어가면 결국은 그게 화근이 되어 더 큰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머무르고 달이 머물렀던 아얄론의 기적을 기념하기에는 지금 단 지파를 골짜기에 몰아넣고 내려오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아모리 족속의 힘이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 안의 아모리 족속을 모조리 진멸합시다.

결단과 적용

-여호수아 10장을 읽으며 여호수아의 아모리 족속과의 전투를 확인해 보십시오.

-본문 31-32절 말씀에 나오는 아셀 지파의 경우를 보시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 삶의 아모리 족속>을 꼽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아얄론 골짜기의 기적은 정말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시므로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모리의 다섯 왕을 다 진멸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단 지파를 위협하고 통제할 만큼 강성했습니다. 본래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하나님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모두 처단하도록 명하셨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분부를 철저하게 이행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은 모든 지파들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이런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저희에게도 많은 깨달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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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눈이 열려야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내가 찾는 물건을 가까이 두고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만 

요사이는 젊은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이 있는데

산삼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산삼을 찾으러 나가기 전, 목욕재계 한 후에

 저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를 올린 다음에 찾아서 산으로 갑니다.

 어떤 때는 산삼을 곁에 두고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려도 줍는 임자는 따로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자기 눈에 띄어야 합니다. 

특히 신령한 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눈이 열려야 볼 수 있습니다.

-정판수 목사의 ‘하갈아 두려워 말라’에서-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멀리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것은 망원경을 가지고 보아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엄청납니다. 

새들이나 곤충 같은 것은 우리들이 볼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고 

우리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도 듣습니다. 

 인간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도 매우 한정적입니다.

육신의 머리로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한계가 있고

특히 신령한 세계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