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사후세계와 개인적 종말 (누가복음 16:19-31)

鶴山 徐 仁 2019. 6. 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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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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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후세계와 개인적 종말 (누가복음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 해석

  기독교의 종말론은 성경이 계시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속합니다.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지구 역시 하나의 행성이기에 다른 별처럼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각종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이 횡횡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종말에 대한 바른 성경적 신앙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크게 두 부분, 곧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로 나눕니다. 개인적 종말이란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한 것이고, 우주적 종말은 대 우주의 파국과 새 하늘, 새 땅에 관한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후에 각기 다른 세계로 인도됩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음부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22-23). 왜 두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명확한 언질을 주고 있지만, 성경 전체의 진리를 보자면 나사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었고, 부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죽음 후의 세계, 곧 사후세계를 명시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에는 믿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는 것이며, 천국과 지옥은 왕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26).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현 세계로 오고 갈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은 오로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교와 문화에 사후세계에 대한 기억이 존재합니다. 우리 민족은 이를 저승이라고 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데스’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많은 임사 체험자들, 곧 죽음과 소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죽음 후에 어떤 세계에 다녀왔다고 증언합니다. 물론 우리는 과학이 증명하기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사후세계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성경이 이를 계시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의지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천국은 신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며(고후 5:8), 지옥은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는 곳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계14:1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구체적인 묘사가 부족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크다 보니 자연히 각종 상상력이 동원됩니다. 천국에 가서 기와집을 보고 왔다는 둥 지옥에 갔더니 커다란 뱀이 계속 깨물고 있다는 등......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불교에서 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한에서 믿을 뿐이며 그 이상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자칫 이단을 부르게 됩니다. 

결단과 적용

-만약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천국의 삶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생명의 주되시는 하나님, 이렇게 선택하시고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믿어지는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제 더욱 천국의 삶을 경험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빅뱅 이전은 생각하지 말자?
인문학 나눔

“물리학자들은 빅뱅을 특이점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알려진 모든 자연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지점이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빅뱅 ‘이전에’ 무엇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발 하라리 저(著) 조현욱 역(譯) 《사피엔스》 (김영사, 58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은 생명의 기원을 우주의 대폭발 즉 빅뱅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빅뱅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 유명한 《코스모스》를 저술한 칼 세이건도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주 팽창과 대폭발 이론이 전반적으로 옳다고 한다면,우리는 좀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대폭발의 순간은 어떤 상태였는가?  대폭발 이전의 상황은?  

그 당시 우주의 크기는?  어떻게 물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우주에서 갑자기 물질이 생겨났는가?  

이러한 물음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 《코스모스》(513쪽) - 

기독 메시지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별들은?  인간은?   

이에 대한 정답은 성경이 명료하게 답해 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진화론자들은 유(有)에서 유(有)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유(有)’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자고 합니다.  

하나님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우주의 빅뱅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사피엔스 종이 우연히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인지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의 지배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4편7절
고린도전서 15:10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You have filled my heart with greater joy than when their grain and new wine abound.

도서 큐티더 보기
공감

자녀양육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공감(Empathy)입니다. 

공감이란 자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하며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행동과 태도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중학생 딸이 왜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지, 

왜 학교에서 엎드려 잠만 자는지, 왜 학교도 싫고 선생님도 싫다고 하는지 

그 마음의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이기복의 [자라는 중이니까 괜찮아] 중에서-

 

오늘날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가정이나 사회 안에서 공감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일을 진행할 때 공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부모는 자녀의 인생을 살찌우는 현명함입니다. 

때로는 더 많은 배부름보다 말 한 마디의 공감이 더 필요 할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