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골목이 보일거예요. 그 골목 막다른 곳에 집이 있어요. 그 집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두 번째로 보이는 하얗고 큰 집이 우리 집이예요.’
언뜻 보기에 이 설명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집을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중략), 비좁은 아파트에서 시어머니와 얼굴을 맞
대며 아슬아슬하게 지내는 여자에겐 견디기 힘든 한마디가 된다.”
소노 아야코 저(著) 김욱 역(譯) 「약간의 거리를 둔다」(책 읽는 고양
이, 10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웃이 내 손톱 밑에 찌른 작은 가시는 늘 기억하면서도,
내가 이웃에게 청룡도를 휘둘러 상처를 준 것은 쉽게 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가리켜 ‘상처를 받은 존재’ 라고 생각하지, ‘상처를
주는 존재’ 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성이 많은 우리는 의
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우리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죄 용서를 받는 제사 중에 ‘속죄제’ 라는 것이 있습니
다. 죄의 내용을 보면 “부지중에 범하는 죄” 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