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재판의 절대적 잣대인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또한 재판관도 최후의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위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건을 판결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 >(17절). 그래서 모세는 재판의 원칙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이렇게 제시합니다. ① 쌍방간 공정하게 판결하라(16절)
② 타국인을 차별하지 말라(16절) ③ 외모를 보지 말라(17절) ④ 귀천을 차별하지 말라 ⑤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라(17절).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의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하시듯 공평하고 의롭게 판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외모를 보시거나 부자를 편드시거나 권력자를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여 부당한 판결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판결은 오늘날까지도 결코 공정하거나 공평하게 이뤄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도 법정의 재판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고 엄정하고 공명정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도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장차 <성도가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절)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천사를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3절)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할 배심원으로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가히 믿는 자들의 혁명적인 자의식을 고백한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불의한 세계 속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도리어 훗날 이 세계를 심판할 사명을 가졌다는 말씀 아닙니까? 얼마나 대단한 성도의 동일성입니까?
부디 이 세상을 공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판단하십시오. 절대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지 마십시오. 외모를 보고 함부로 예단하지 마십시오.
귀천을 따져 대우하지 마십시오. 늘 사람의 낯이 아니라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십시오.
우리 모두가 그렇게만 살고 그렇게만 판단하고 판결한다면 우리 사회와 우리의 법정과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고 정의롭고 공평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