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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南=현금’인 北, 또 거액 내라는데

鶴山 徐 仁 2018. 2. 5. 13:58

[박제균 칼럼]‘南=현금’인 北, 또 거액 내라는데

박제균 논설실장 입력 2018-02-05 03:00수정 2018-02-05 09:25


南정권 바뀌면 돈 요구하는 北… “수십조 내면 核동결·고위대화”
北“核보유-비보유국 평등 불가”… 올해 남북관계 불평등으로
4강·北지도자 ‘힘을 통한 평화’… 文만 ‘대화 통한 평화’ 집착해선 北현금인출기 노릇 못 면해


     박제균 논설실장



아니나 다를까.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남쪽에서 정권만 바뀌면 되풀이해온 행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이 문제된 이후에도 북한 정권은 노무현 정부에 돈을 요구했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측에서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북측과 비선접촉 라인을 열고 싶어 하는 게 상례다. 대통령들은 저마다 ‘회담을 위한 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강하게 희망한다. 5년이라는 임기의 한계 때문에, 정상회담을 통해 다른 대통령이 못하는 큰 거 한방을 날리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불태운다. 

이 야망에 부응할 비선접촉 라인으로는 2009년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처럼 대통령 특사가 나서는 때도 있고,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나 통일전선부와 통하는 경우도 있다. 사전 정지(整地) 작업은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재미(在美)교포나 사업가, 조선족 사업가가 나설 때도 있다.


최근 모종의 경로를 통해 북측의 메시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대화와 핵 동결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 대가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현금이나 현물 지원이다. 이런 내용은 관계당국에 보고됐다.  

남북 사이에 얘기가 잘된다면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북한 실세이자 김정은 복심(腹心)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방남(訪南)할 가능성이 높다. 최룡해가 온다면 평창 올림픽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쏠릴 것이다. 북한에서 누가 오든 북측이 한국과 미국에 원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미국에는 안전, 한국에는 돈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채권증서까지 들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10·4 합의문서다. 거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약속한 △남북경협 투자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 이용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협력사업 등 수백조 원의 ‘채무’가 들어 있다. 김정은 자신이 아버지의 채권을 물려받았듯, 노무현을 계승한 문 대통령이 채무도 승계하라는 것이다.

수십조 원, 아니 수백조 원이 든다고 해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영영 포기한다면 못해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김정은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남쪽의 부자 나라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빈국(貧國)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동결하는 선까지만 갈 수밖에 없다. 남쪽이 수십조 원을 댄다면 남북대화와 정상회담 선물까지는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통일대박론’을 구체화할 방안을 제시했다. 남북관계를 재설정하자는 취지였지만, 그해부터 북측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남북관계 재설정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이 평등할 수 없으므로 남북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올해부터 북측이 말하는 남북관계 재설정 구도에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지난해 핵과 ICBM 실험을 통해 가공할 능력을 보여준 김정은 정권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에 마냥 끌려다니는 문재인 정부가 그런 불평등 관계로의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 주변 4강을 돌아보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지도자들은 모두 ‘힘을 통한 평화’를 외친다. 하물며 북쪽의 지도자도 ‘힘을 통한 평화’다. 문 대통령만 ‘대화를 통한 평화’다. 전쟁하자는 게 아니다. 평화를 지킬 힘이 없이 벌이는 대화는 불평등만 심화시킬 뿐이란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더구나 북측은 남북대화보다는 대화 테이블 밑에서 오갈 현찰에만 관심 있다. 막상 대화를 열어 남북이 합의한다고 해도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기 어려운 것이 작금의 국제정치 현실이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남북관계에서 머리를 들어 주변 4강의 이해(利害)관계와 역학구도까지 더 넓게 봐야 한다. ‘대화를 통한 평화’에만 집착하다간 북한의 현금인출기 노릇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3/all/20180205/88507657/1#csidx8c45dc253eb3bd482186e0849c12b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