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제부터 영원까지 외 6

鶴山 徐 仁 2017. 5. 21. 21:02
5월 19일 (금)
이제부터 영원까지 (미 4:6-8)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역시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저는 자>(6절)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쫓겨난 자>(6절)란 본토에서 살지 못하고 외국에 흩어져 고난당하며 사는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다 모으시고 회복시키사 <이제부터 영원까지>(7절)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다스리시며 살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뿐 아닙니다. <...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8절)고도 하셨습니다. 상실한 모든 옛 영광을 되찾게 되리라는 약속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의인됨을 주장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악함과 죄됨을 탓하지 않으시고, 그 모든 것을 과거지사로 덮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하기 쉬운 말로만 하신 게 아닙니다. 자신의 피를 온통 다 쏟으시며 증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그 변치 않은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악함을 감싸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저는 자>, <쫓겨난 자>를 다 받아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단 하나뿐인 생명으로 증거한 주님의 이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목숨 귀한 줄을 모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과 주님의 피는 인연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피의 절절한 사랑을 믿는 것은 곧 우리의 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서지 않으시고 다시 모으사 생기에 찬 모습으로 새 출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는다 함은 생의 목적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세울 줄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삶이 되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살아가는 가치의 빛을 새롭게 발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헛되이 살지 않도록 세상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의 핵심일 것입니다.

 
  
  
 

-본문 6절의 <그 날>이란 어떤 날을 뜻합니까?
-언제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7절) 우리를 다스리게 되실까요?
-믿는 자들의 궁극적인 회복과 복귀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주님, 지금은 저희가 다 모순과 시련과 고통과 장애 속에서 살지만 <그 날>이 오면 주님이 오사 모든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장애를 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온전케 하사 <이제부터 영원까지> 저희를 다스리시며 평안과 참 자유 속에서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때는 모든 모순과 아픔이 해소되고 불화와 갈등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과 평화만이 충만한 세계가 되어 영원까지 살게 될 것임을 믿사오니 늘 <그 날>을 대망하며 진정한 희망 속에서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믿음의 배짱이 없으면

믿는 자들이 믿음의 배짱을 가지고 하나님께 의탁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
그러나 용기 없이 자기의 계획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더욱 믿음의 배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힘들다 할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배짱으로 결단하는 것이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믿음이 절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자기를 얼마나 희생하느냐에 따라 그만큼
배짱 있는 신앙인으로 변해 가게 되는 것이다.
-오석득 목사의 ‘믿음의 배짱’에서-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자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적게 투자하고 떼돈을 벌려고 하는
한탕 주의자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하며
그 분의 말씀을 의지하며 의탁하느냐에 따라
배짱도 커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배짱이 없으면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결단을 내릴 때는 신앙의 배짱으로 과감하게 하십시오.
더 멋지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실 것입니다.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Many are the plans in a man's heart, but it is the LORD's purpose that prevails.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예수께서 이 땅에오신 이유
  
  



5월 18일 (목)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미 4:1-5)
  
 

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 이후 다시금 회복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이란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회복에 그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1절).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나님 통치의 온전한 회복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통치하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면 더 이상 칼이나 창이 필요 없습니다. <...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3절).
지금은 온 세계가 보습을 쳐서 열심히 칼을 벼르고 낫을 쳐서 창을 날카롭게 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하나님이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끝날>이 오면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도 못 느끼고, 이웃을 공격할 의향도 없게 되므로 이전과는 달리 두 번 다시 전쟁을 연습할 이유가 없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웃 간 민족 간의 평화 뿐 아니라 자연과 환경까지도 완전하게, 완벽하게 회복됨으로써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11:6-8)고도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때는 재앙이나 일체의 재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4절)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세계가 온통 전쟁 연습에 혈안입니다. 칼을 만들고 창을 사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 어떤 나라도 결코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나라가 그립고 하나님의 통치가 절실한 세상입니다.
부디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는 기도에 태만하지 않은 성도가 됩시다.

 
  
  
 

-본문 3절 말씀과 이사야 2:4, 그리고 요엘 3:10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본문 1절의 <끝날>은 어떤 날입니까?
-5절 말씀을 원용하여 당신의 신앙고백을 적어 보십시오.

 
  
  
 

주님, 이 세상은 극도로 불안하고 위태롭고 위험천만 하오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는 더 이상 싸움이 없고 전쟁이 없으며 전쟁 모습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자연도 모든 포악성이 해소되고 오직 서로 더불어 살며 모두가 서로를 위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저희가 마지막 날에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까닭입니다. 부디 세상이 살벌하고 불안할수록 늘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더 큰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설마 우리 애들이 곁길로 빠질라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신자 부모들이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내 아이들은 이미 유아세례를 받았고 주일학교 때부터
주일마다 날 따라서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겠지.'라고 한눈팔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목사 가정이고 장로 가정인데,
설마 우리 애들이 곁길로 빠질라고.' 방심하면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변을 당하게 될 수 있다.
딤전 3장 5절에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경고하지 않는가?
신정국가의 왕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대제사장의 자손이
불신결혼을 하게 되는 일은 구약시대 뿐 아니라
오늘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석기현 목사의 ‘이와 같이 저희로 깨끗하게 하고’에서-

 
   
 
  
 


부모가 기독신자라는 사실이 자녀가 자동적으로
기독신자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가 설혹 교회의 장로, 집사, 권사라 해도
자신의 신앙생활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일 뿐이며
목사가 아무리 주일마다 설교를 해도 그 말씀을 순종하여
신행일치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자녀 스스로가 해야 할 몫입니다.
내 자녀가 어려서부터 매주일 성경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정말 '빛'처럼 밝고 '소금'처럼
거룩한 경건생활을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직접 서원하고 이행해야 할 일이기에
부모의 방심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시기의 대표적인 경건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건전한 남녀교제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제멋대로 불신결혼을 했던 것처럼, 무조건 '사랑'만이 유일한 조건이요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동질의 신앙'이라는 조건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교제를 시작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로마서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The God of peace be with you all. Amen.

 
    
 
  
 김옥엽 시인
 포옹의 정성
  
  




5월 17일 (수)
이삭과 이스마엘 - 창세기 25장 1~10절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를 조금 당황스럽게 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줄 때, 이삭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자녀들에게도 소유를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마엘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175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이스마엘이 이삭과 함께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싸움과 전쟁의 이유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고통이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성경은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루고 있으며, 사이가 좋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이 유대인들의 편견에 영향을 받은 것이 많지 않은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삭이 선택받은 자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에게도 함께 하시고 동행하셨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의 싸움은 결국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그 동족 안에서 발생한 아픔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과 명령을 따르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시고, 무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잘못했을 때, 다른 민족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고난 받게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이 가장 긴 역사 동안 온 민족이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오늘, 나의 편견으로 인해서 어떤 사람이나 민족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오늘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있다고 믿습니다. 열방을 위해서 오늘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배짱은 다르다

국어사전에는 “배짱’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를 한다.
“조금도 굽히지 아니하고 버티어 나가는 태도.”
한 마디로 배짱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확신(self confidence)에서 나오는 강한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배짱은 좋은 쪽 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배짱은 다르다.
왜냐하면 그 배짱은 자신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배짱을 가지면
두렵고 떨려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그런 용기까지 나올 수 있게 된다.
-오석득 목사의 ‘믿음의 배짱’에서-

 
   
 
  
 


하나님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의지 하지 않고
오직 믿음의 배짱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매달릴 때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의 배짱이 필요 합니다.
믿음의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배짱이 없으면 늘 신앙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에 남아 있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배짱으로 밀고 나갈 때
기도의 응답과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믿음의 배짱으로 살고 있나요?
아니면 자기 마음속에서 나오는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나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배짱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에서 나오는 배짱은
절대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믿는 자들은 이런 믿음의 배짱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유해석선교사)
  
  




5월 16일 (화)
가정을 세우는 지혜 (시편 127:1~5)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7편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지혜의 왕인 솔로몬의 시이며 노래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싶은 모든 것 즉, 부귀와 영화와 쾌락을 다 누려 보았던 왕입니다. 수백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살았으나 그것으로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랜 후에 참 지혜를 깨달았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는 일은 모두가 다 의미가 없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욱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모든 것은 다 헛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을 기울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 가정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어떤 것도 여호와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깨어서 밤새 지킨다고 하여도 허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도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간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노력은 물거품같이 되어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바로 솔로몬 왕 자신이 체험한 바이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하였습니다(2). . 건강한 몸으로 부지런히 일하면서 걱정 없이 먹고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며,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평안함과 안식을 주십니다. 사람이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걸리게 되면, 이것처럼 괴로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걱정 근심 하나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복된 가정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양육하는 가정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였습니다(3). 좀 쉽게 번역하면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산이요, 태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산은 부모가 자식에게 값을 받지 않고 그냥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냥 주신 보상이요,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값을 매겨 놓을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내 뜻에 따라 자녀를 키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키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로 키워가야 합니다. 내 힘과 노력만으로는 어렵기에 기도하면서 키워가야 합니다.

 
  
  
 

- 내 가정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중심이 되도록 정리하십시다.
- 수고한 것만큼 안식하고 누리며 살아가는지 살펴보고, 주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 자녀들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양육하기로 결단하십시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영혼과 범사를 지켜주시옵소서. 저의 가정에 평안의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유업이요, 선물인 자녀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양육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냥 되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결과만 보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 일마다 잘 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저 사람은 자식들이 저렇게 잘 하는데 내 자식은 왜 이 모양일까?
남들은 좋은 집에서 좋은 차타고 잘도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된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찾아온 것은 그 우연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복권 당첨된 사람 90%이상이
복권 당첨되기 전보다 더 불행했다고 한다.
우연히 찾아온 것은 본인에게 저주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왜냐하면 그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데 채워지면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사용할 수 없고
올바로 판단할 수 없어서 망하게 되는 것이다.
-하영종 목사의 ‘대가’에서-

 
   
 
  
 


과정이 빠진 결과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나무에 맺히는 열매도 그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참아야합니다.
어떤 나무는 5년씩이나 참아내어야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는데
그것도 그냥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병충해와 싸워야하고 날씨와 온도 그리고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우박과 태풍과도 싸워야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풍파를 다 받고 싸워 이겨낼 때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 열매를 맺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느냐를 보셔야됩니다.
세상에서 그냥 되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믿음의 시간 1 (히브리서 11:2)
  
  




5월 15일 (월)
크리스천의 부모공경 (창세기 46:28~34)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민화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에게“지상에 가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져오라”하셨습니다. 천사는 세상을 두루 다니며 오랜 기간 찾았는데 한참 피고 있는 꽃이 아름다워 한 아름 꺽어 왔습니다. 또 다른 하나를 찾다가 엄마 품에서 방긋 방긋 있는 아이가 그렇게 아름다워 그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족을 위해 땀 흘리고 일하는 젊은 어머니를 발견했는데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이 셋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갔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꽂은 시들어 버렸고, 향기는 없어져 버렸습니다. 방실 방실 웃던 아이는 자라서 개구쟁이가 되어 아름답지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비록 나이가 들어 그때처럼 젊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왜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사람들은 어머니를 그렇게 그리워할까요? 어머니의 사랑은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낳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없이는 그 누구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근본입니다. 복 받고 사는 비결입니다(엡6:1-3).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으로 성장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깊이 사랑했고, 요셉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으로 아버지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꿈 이야기로 인하여 형들의 미움을 샀지만, 아버지는 요셉의 꿈을 가슴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순종하므로 효도했습니다(창 37: 3~11). 자녀는 부모님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자녀가 바른 삶을 살아감으로 부모님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효도이며, 순종함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공경입니다.
요셉은 20년을 객지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버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살았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가족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갈 때에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고센 땅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갔습니다. 두 부자는 서로 목을 껴안고 울었습니다(28-30). 요셉은 아버지를 끝까지 공궤했습니다. 형들과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 앞에 순종하겠다고 맹세하였으며 유언대로 순종하므로 아버지께 끝까지 효도했습니다. 요셉은 그와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창49:22-26). 그리스도인으로 부모님 공경하심으로 요셉과 같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바로 부모님께 문안하십시다.
- 부모님께 소망을 주는 삶을 위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다.
- 부모님이 복음을 모르신다면 당장 복음을 전하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십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름다운 가정주시고 귀한 부모님과 함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불순종한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성도로서 말씀따라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부모님의 여생이 주님과 동행하심으로 행복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께로

집을 나갔던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방탕하게 써 버리고
비참한 신세가 된 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다.
그 때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눅 15:20에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말씀한다.
아버지는 그가 이 세상에 있게 된 생명의 근원이며
그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분이시다.
그 본래적 위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 회귀가 아닌가?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던 인간이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비유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신다.
-최용준 목사의 ‘영적 회귀’에서-

 
   
 
  
 


“하나님 기뻐 노래하시네,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하나님 기뻐 춤추시네,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너무 기뻐 잔치를 베풉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올 때 주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참된 신앙의 개혁, 온전한 종교개혁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들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시편 81:1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Sing for joy to God our strength; shout aloud to the God of Jacob!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십자가를 지려고 하면 오히려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갑니다(2)
  
  




5월 13일 (토)
우두머리들아 들으라! (미 3:9-12)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9절)이란 통치자, 재판관, 제사장 등 미가 시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 지배 계층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같이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을 굽게 하고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한다고 합니다. 뇌물을 받고 그릇되게 재판하고, 제사장은 삯을 받고 교훈하며 선지자들도 돈을 위해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가 시대 이스라엘 사회는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총체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모두가 악과 죄에 빠져 철저하게 사회 정의와 신앙적인 의를 짓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미가 선지자가 시온을 피로 건축하고 있다고 고소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절)며 안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그들의 특권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벌도 자신들에게 임하지 못하도록 모든 징계를 막아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죄악과 착각에 빠진 그런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12절). 장차 시온은 갈아엎어질 것이고, 예루살렘 성은 돌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터는 수풀로 뒤덮이게 될 텐데 그게 다 지금 너희의 죄악과 허물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나라와 교회가 망하는 것은 우두머리들의 죄악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두머리들이 어리석거나 악하면 백성들이 고생하고 결국은 수난을 당합니다. 더구나 통치자와 제사장 같이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가 타락하면 그건 정말 치명적입니다. 미가 시대 이스라엘처럼 반드시 갈아엎음을 당할 수밖에 없고 완전히 무너져 돌무더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두머리들이 중요하고, 우두머리들이 정의롭고 신실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 공동체의 운명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두머리를 위해 더욱 기도합시다.

 
  
  
 

-미가 시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은 어떠했습니까?
-우두머리들로 인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우두머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를 말씀해 보십시오.

 
  
  
 

주님, 미가 시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은 다 악했고, 다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통치자는 정의를 미워했고, 그래서 시온을 피로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하며 공의를 짓밟았습니다. 또 선지자들도 돈을 받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온을 밭처럼 갈아엎겠다고 하셨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될 것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우두머리들이 타락하고 죄악에 빠지면 결국 그 공동체 전체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들도 깊이 깨닫게 하사 더욱 우두머리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무너진 삶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 우리에게는 새로운 종교 개혁이 필요하고
이 시대의 요시야 왕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요시야의 개혁은 나라 전체를 새롭게 했습니다.
야곱의 신앙 개혁은 가정을 살렸습니다.
모세의 종교 개혁은 민족을 살렸습니다.
루터가 생명을 내어 놓고 종교 개혁을 함으로 교회가 살아났습니다.
. 종교 개혁자들은 말합니다.
Ecclesia Reformata et Semper Reformanda.
교회는 개혁되었고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개혁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속적인 개혁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최용준 목사의 ‘회복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Recovery)’에서-

 
   
 
  
 


바른 신앙과 예배의 회복과 개혁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앞에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와 국가와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돌아와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헛된 우상들을 과감히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
무너진 삶의 성전을 회복하시려면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교회와 나라에 진정한 회복과 개혁이 시작되고
우리의 생애에서 지속적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기위해서는.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Behold, I will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former things will not be remembered, nor will they come to mind.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기독교의 순전함을 아십니까?
  
  




5월 20일 (토)
딸 시온이여! (미 4:9-13)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9절)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너의 그 비탄과 두려움을 떨쳐내라는 것입니다. 만약 네가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10절) 그러십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겪고 있는 고통은 죽음의 고통이 아니라 여인의 해산의 고통이니만큼 조금 후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 순간 모두 잊혀 질 산고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어떤 고통을 겪고 실제 어떤 궁지에 몰리더라도 그것은 다 메시야 오심을 위한 산고요 해산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으라는 격려입니다. 그리고 ①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도 결국은 복되게 끝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10절). ② 시온을 치려는 원수들의 모든 시도는 결국 좌절되고 그 모든 재난이 원수들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13절).

하나님이 마치 소가 곡식을 밟아 떨 듯 원수들을 밟아 떠시기 위해 타작마당에 모으실 때 <딸 시온이여 일어나> 도리깨질을 하듯 그들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승리하므로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십니다.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고 그들의 재물을 주께 돌리라>는 게 바로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악의 산고를 통해 아기가 출생하듯이 비록 갖은 아픔을 다 겪게 될지라도 그것은 모두 해산을 위한 아픔일 뿐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좌절이 아니라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본문 9, 10절의 <해산의 고통>이란 무엇을 비유한 말씀입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도 결국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말씀은 본문 몇 절에 나올까요?
-원수들을 쳐서 깨뜨리고 승리하므로 마침내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어디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주님, 그렇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이 땅에서 당하고 겪는 모든 시련이나 아픔은 마치 여인의 산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결국은 그 고통과 아픔을 통해 아기를 품에 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람과 기쁨으로 인해 그간의 모든 기억들을 다 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희로 하여금 반드시 원수들을 제압하게 하십니다. 저희의 뿔을 무쇠 같게 하시고 저희 발굽을 놋 같게 하사 필히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부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더욱 용기를 얻고 희망을 보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옵소서.

 
  
   
 

대가는 아름다운 것이다

대가(代價)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대가를 희생으로 또는 헌신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런 희생과 대가없이 꿈은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희생되는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이 대가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엄청난 권세를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영종 목사의 ‘대가’에서-

 
   
 
  
 


예수님은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마귀와 싸우시며 모신 고초와 굶주림과 수치와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고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계획된 일이고
우리가 하는 사명은
그 계획을 실천하는 일이요 함께 동역하는 일이기에
주님이 당하신 고난의 대가로
우리는 최고의 삶, 최고의 가치, 최고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믿음이 잡니다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인의 행복한 삶  (0) 2017.05.23
생을 즐겁게 사는 원리   (0) 2017.05.22
우두머리들아 들으라!  (0) 2017.05.14
종교인들아 들으라!  (0) 2017.05.12
통치자들아 들으라!  (0) 2017.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