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생을 즐겁게 사는 원리

鶴山 徐 仁 2017. 5. 22. 11:32
5월 22일 (월)
생을 즐겁게 사는 원리 (전도서 3: 11~13)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한 삶을 살도록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우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많은 것을 가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데 있으니 생을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즐거움은 크게 두 가지로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입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참된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어서 나중에는 그 욕망을 채울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즐거움으로는 일시적인 행복은 누릴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으로 구원받은 사람,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로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먼저,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함으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12).
선한 일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고 복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눅6:38).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일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가정에서 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13).
나에게 돈이 많고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학벌이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며, 세상의 권세나 명예의 문제가 아니고 건강하며 장수하느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했어도 즐거움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남자로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누려본 자로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다 괴로움이요 헛되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탄식하였습니다(전2:26). 행복은 내가 속한 가정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깨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애기하고 오손도손 사는 것, 즉 평범한데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무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소중히 여깁니다. 이 즐거움은 내게 주어진 일터에서 수고하며, 사명감으로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14).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영적존재입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이 인간 행복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식이 없다면 모든 세상 즐거움이 구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영혼의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지금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 가정생활에서의 감사와 즐거움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봅시다.
- 복음과 교회 섬김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다면 다시 기도하십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이제 저의 삶에서 불평불만을 거두어 주옵소서. 평범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맡은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고, 은혜안에서 즐거운 생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은 근원생명이시다

모든 생명은 죽음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의 사슬을 끓고 살아났습니다.
무덤에 갇혀 있지 않고 무담 밖으로 나왔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매우 낯설지 않습니까?
예, 인간의 상식과 경험에 비추어보면
매우 낯설고 놀라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근원 생명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근원 생명이 죽는 것이 이상하고 낯선 일이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낯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죽음에 갇힐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음의 권세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정병선 목사의 ‘모순된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십자가에서 아주 무력하게 죽었습니다.
100% 완전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단지 육신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혼이 버림을 받는 완전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본질적으로 죽음에 갇혀 있을 수 없는 근원 생명이십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참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희생 제사를 받으시고
곧바로 죽음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던 본래의 고유한 생명으로 불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무엇이 순전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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