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 안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십시오

鶴山 徐 仁 2017. 5. 3. 20:50
5월 3일 (수)
하나님 안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십시오 (창세기 24장 9~16절)
  
 

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10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11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3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15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라는 사명을 받은 종이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는 기도장면입니다. 그 종은 하나님께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 보면, 정말로 구체적입니다.

그 종은 먼저 자신이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오는 시간에 나홀의 성에 이르러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 종은 하나님께 자신이 한 소녀에게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하여금 마시게 하리라’고 말했을 때, 그 소녀가 만약에 하나님이 준비해 준 여인이라면 나에게 ‘마시라’고 말할 것인 줄 믿겠다고 기도합니다. 바로 그 때,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그 종에게 ‘물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구체적인 기도란 막연하게 ‘하나님 아시죠?’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이러 이렇게 행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알게 되고, 내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내 안에 그런 것이 없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사명을 맡길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그 일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의 구체적으로 기도드려야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할 때, 나의 소원과 마음, 그리고 모든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소원을 아시고, 우리에게 구체적인 꿈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 인생을 걸만한 목표는

인생도 그렇다. 목표가 뚜렷하지 아니하면,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면,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경우에 따라 산만해지기도 한다.
최신 유행이나 따라 다니다가 인스턴트 해답이
만고불변의 진리인양 맹신한다.
그리고 이 일 하다가 안 되면 저 일 하고,
전략도 없고 목표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어 보이게 행동한다.
. 결국은 작은 일을 붙잡으려고 큰일을 놓쳐 버리는
참 안타까운 인생을 살다가 끝내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걸 만한 목표인가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 목표를 갖고 있었다.
라틴어로 목표라고 하는 말이 '피니스(finis)' 인데
이것은 종말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안두익 목사의 ‘지금도 써 내려야 가야’에서-

 
   
 
  
 


목표가 무엇입니까? 종말입니다. 끝입니다.
인생의 진짜 목표는 인생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입니다.
우리의 종말에 남게 될 질문은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 후손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흐르면
다 먼지 속에 파묻히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목표가 되는 마지막까지 남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는 그것입니다.
'과연 내가 예수님 앞에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을까?'입니다

 
   
    
 

고린도후서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But thanks be to 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in Christ and through us spreads everywhere the fragrance of the knowledge of him.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예수께서 이 땅에오신 이유

  
  



5월 2일 (화)
크리스천 부모의 책임 (잠언 4:10~19)
  
 

10.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11.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15.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인생은 늘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오늘에서 내일로 내일에는 또 그 다음 날로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내일을 향하고 있는 오늘의 삶은 실로 변화무쌍합니다. 평화로운 날도 많지만 혼돈된 날도 있습니다. 평범한 날에는 여유가 있지만, 위기를 느끼는 날이면 매우 긴장합니다. 비상시는 형상시보다 더 많은 정열과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걸어 갈 때가 있는 반면 달려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 인생길은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입니다. 장기나 바둑은 오늘 두고 내일 또 다시 둘 수 있지만 인생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오늘, 어떤 일어 있어도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늘 미래를 향하고 있는 인간들의 삶이기에 어른들의 역할이 참으로 귀중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앞서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살았던 그 범주 안에서 한 세대 뒤따라오면서 앞서 어른들이 살았던 삶을 비슷하게 반복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왔기 때문에 자식들의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이 있습니다. 어른들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훈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자식을, 누가 그들을 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이 안내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훌륭한 인도자입니다. 바른 길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훈계할 수 있는 적임자입니다. ll-12절에서 “내가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나는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나아가야 할 그 인생길을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자식은 다닐 때에 즉, 걸어 다닐 때에 그 걸음이 곤란하지 않습니다. 달려갈 때에도 실족하지 않습니다. “다닐 때”라는 말은 평상시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려갈 때”라는 말은 비상시, 즉 긴박한 상황입니다. 비록 위기 상황일지라도 넘어지지 않고 실족하지 않는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평상시나 비상시, 일상적일 때나 긴박한 상황일 때라도 부모의 가르침을 받는 자녀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인 만큼 부모는 자식들을 바른 길로 잘 인도해야 합니다. 부모의 책임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1O절의 말씀은 첫째 듣고, 둘째 받아들이라 말씀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그리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뜻입니다· 건강함으로 장수하는 자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자는 건강의 축복이 제공됩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뜻은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건강하게 됩니다. 건강한 자는 당연히 장수하게 됩니다(l3). 부모는 오래 건강하게 살아 자식들에게 계속하여 가르치며 훈계해야 합니다. 모든 자식들을 향해 지혜를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노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노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회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 내가 살면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 것은 부모의 가르침을 소홀이 여긴 것은 아닌가요?
- 나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바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찾아보십시다.

 
  
  
 

살아계신 주 하나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뜨거운 사명감과 믿음을 더하시옵소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믿음이란 말과 참이란 말은 같은 말이다.

히브리 원어나 헬라어로는 정직이나 진실,
믿음이란 단어가 똑 같다.
즉 믿음이란 말과 참이란 말이 같은 말이다.
인간이 정말 진실하다면 하나님을 안 믿고는 못 배긴다는 말씀이다.
정말 정직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믿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나 정직이나 그 근원이 같다
그러니 믿음은 있는데 정직함이 없다?
또는 정직한데 믿음은 없다? 전부 엉터리라는 말이다.
정직함이 없는 사람이 가진 믿음은 거짓 믿음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윤희주 목사의 ‘여호사밧의 신앙과 생활’에서-

 
   
 
  
 


우리는 먼저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부정인줄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동조하거나 참여하면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로 서야 함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정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정직하려고 아무리 공부하고 수양하고
도를 닦고 애를 써 봐도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으면 정직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And the LORD was with him; he was successful in whatever he undertook. He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Assyria and did not serve him.

 
    
 
  
 김옥엽 시인
 사람으로 태어난 사실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스라의 양 떼 같이   (0) 2017.05.06
슬픈 노래   (0) 2017.05.05
행복이 넘치는 가정   (0) 2017.05.01
HOW GREAT THOU ART-ANNE MURRAY +  (0) 2017.04.29
들개 같이 타조 같이   (0) 2017.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