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한물갔다고?"..퇴역 중고무기의 화려한 변신
박수찬 입력 2017.04.02. 08:04
미국 애리조나주 데이비드-몬탄 공군기지에는 ‘제309항공우주정비 및 재생전대’, 속칭 에이막(AMRC)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미군이 운용하던 항공기들이 수명을 다해 퇴역하면 이 곳으로 옮겨져 보관되는데, 유사시 수리를 거쳐 현역으로 복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해체되어 사라지는 ‘비행기 무덤’이다. 지구의 하늘을 누비며 미국의 힘을 상징하던 항공기지만 오랫동안 사용해 내구연한을 초과하거나 급변하는 전장환경에 맞지 않아 퇴물로 전락한 항공기들의 마지막 휴식처인 셈이다.
2014년 7월 콜롬비아에 인도된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 퇴역후 함포 등이 제거된채 제공됐다. 해군 제공 |
그러나 무기의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예산 문제로 새 무기를 구입하기 어려운 후진국들을 중심으로 중고 무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퇴물이지만 후진국에서는 훌륭한 주력 무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중고 무기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선진국들도 중고 무기 제공을 군사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중고 무기 획득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 50년만에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이후 군대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공장을 운영하던 일본인들이 모두 귀국하면서 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자급자족할 수 없었던 탓에 미군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M-1, M-2 소총과 M-1911 권총 같은 개인화기부터 M8 장갑차와 트럭, 지프는 물론 군복과 철모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원조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지난 23일 캄보디아 군에 제공된 우리 군의 중고 트럭들. 15년 정도 사용한 뒤 폐기된 차량이지만 캄보디아 군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캄보디아 국방부 제공 |
반면 우리 군이 운용하던 중고무기를 군사외교 차원에서 외국에 기증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북한과 대치중인 상황에서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최신 무기에 밀려 퇴역하는 무기들도 많다. 우리 군에서는 ‘퇴물’이지만 국방예산이 넉넉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귀한 선물’이다. 정부는 이같은 점에 착안해 군사외교 증진과 방산수출 촉진 차원에서 중고무기를 외국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 23일 국방부는 캄보디아 군에 군용차량 222대를 제공했다. 캄보디아는 과거 북한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국가로 북한을 고립시키는 압박 외교의 일환으로 장비가 제공됐다. 우리 군이 15년 동안 사용하고 퇴역시킨 K311 다목적 트럭, K511 5t 트럭, K131 전술차량, 포클레인 등 전투지원분야에서 쓰이는 장비들로 구성됐다. 국방부는 올해 하반기쯤 트럭과 지프 등 중고 군용차량을 추가 제공해 캄보디아 군의 기동력 향상을 지원할 방침이다. 캄보디아의 젖줄인 메콩강 치안 유지를 위해 우리 군이 퇴역시킨 함정도 제공할 예정이다. 다만 장비에 탑재된 무기는 캄보디아 인도 전 철거된다.
2014년 7월 우리 군으로부터 제공받은 초계함을 몰고 출항하는 콜롬비아 해군 장병들이 우리 군 장병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 해군 제공 |
중고무기를 둘러싸고 개발도상국 간에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2007년 공군이 퇴역시켰던 A-37B 공격기를 놓고 페루와 파키스탄이 확보 경쟁을 펼쳤다. 페루는 “마약 단속과 국경 경비를 위해 쓰겠다”는 입장이었고 파키스탄은 “엔진 등 부품조달용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2009년 A-37B 8대를 페루에 무상제공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2012년 페루에 국산 KT-1 훈련기 20대(2억 달러 규모)를 수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고속정과 F-5A 전투기를 제공받은 필리핀도 2013년 국산 FA-50 경공격기 12대 도입을 결정했다.
험비 차량에 탑승한 채 경계중인 미군. 험비는 미국의 대외 군사원조 장비 중 가장 많이 제공된 장비다. |
군이 사용하다 퇴역시킨 중고무기를 타국에 지원하는 것은 외교관계 강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무기를 제공받은 국가가 원조국의 지원 취지와는 다른 용도-국내 시위 진압, 주변국 침공, 제3국 밀수출-로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거나 외교적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부터 지속된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테러 조직의 무장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라크군 장병들이 모술 전투를 앞두고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AK-47 소총은 러시아, 군복과 장구류는 미국에서 지원받았다. |
2015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예맨 내전은 군사원조의 부작용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예맨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2007년부터 8년 동안 예맨 정부군에 5억 달러(5645억원) 상당의 군사원조를 실시했다. 이 기간 동안 지원된 무기는 소총, 탄약, 야간투시경, 순시선, 차량, 비행기 등 다양했다. 하지만 2015년 내전 발발로 예맨 수도 사나 주재 미국대사관이 폐쇄되고 미군 군사고문단이 철수하면서 이 장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맨 후티 반군이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가 장비들을 몰수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미군은 뚜렷한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은 1975년 베트남전 종전 당시 남베트남군에 제공했던 정보 수집 장비와 암호장비들이 소련에 넘어가면서 암호체계를 재구성해야했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북한 역시 북베트남이 노획한 M-48 전차와 M-113 장갑차, M-16A1 소총 등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군 장병들이 미국에서 지원받은 장구류를 착용한 채 미군 군사고문단으로부터 훈련을 받기 위해 정렬해있다. |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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