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공병호 박사의 "은퇴 이후 중년 남 성의 위기"외 13

鶴山 徐 仁 2015. 8. 25. 15:40

은퇴 이후 중년 남 성의 위기
공병호

제가 여러분께 퀴즈 하나를 내보겠습니다.
일본말 가운데 ‘누레오치바(日’ぬれおちば’, 젖은 낙엽족, 거추장 스러운 중년 남편의 위기)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는지요?
일본어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 아니고서는 누레오치바라는 기억하시기가 쉽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제가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일본어를 아주 오랫동안 공부해 오신 한 분이 누레오치바는 ’젖은 낙엽‘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젖은 낙엽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라이언 로빈슨이란 사람이 쓴 책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그들은 신발 바닥에 딱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아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직장에서의 유능함이 반드시 은퇴이후의 삶에서도 유능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내는 일에 열중하는 남편 없이 평생을 살아 왔기에 감정적인 독립과 자아정체감을 이미 달성한 상태이다.
아내는 사회적 생존과 관계를 위한 적절한 기술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
반면 남편은 그런 기술이 부족하다. 그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게 된다.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반면 아내는 자기의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끝없이 방해하며 관심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짜증이 난다.”

여러분 누레오치바 ’젖은 낙엽 이 용어는 일본의 심리학자인 이사야마 교수가 만든 ‘은퇴 이후의 아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남편’을 묘사한 용어입니다.

물론 일본과 우리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젖은 낙옆과 같은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화 적으로 두 나라가 동양권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고 특히 일본 남자들을 능가할 정도로 한국의 남성들은 직장생활에서 오로지 일과 승진에 매진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을 30년 또는 40년 정도 보낸 다음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주워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또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런 방법에 대해서 어색하고,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분들이 나이로 보면 50대에서 60대에 접어 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도 보면은 꼭 젖은 낙엽 상태는 아니지만 부인들로부터 ‘좀 더 유연하게 은퇴이후의 삶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꼭 누레호치바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혼자 있을 때
‘당차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심리적 독립’ ‘경제적 자유’ ‘확고한 자아 정체성을 마련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은퇴를 앞두기 훨씬 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만들어서 관리해 나가는 방법’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좀 더 확고히 다져 나가는 방식’ 그리고 아내나 자식들의 관계 속에서도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방법들은 우리가 직무를 잘 하는 능력과 별개로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종의 실용지능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대부분이 젊은 분들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늙어 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직을 떠나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시절을 우리가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젖은 낙엽, 누레호치바‘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시고 혼자서 좀 더 슬기롭고 현명하게, 당당하게,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좀 더 계획적으로, 습관화 되어 갈 때 더 멋진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저에게 ‘어떤 사람의 인생에 성공과 실패라는 것은 죽음 직전에 판단이 되는거 같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바로 은퇴이후의 삶에서 성공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우고, 잊고, 체념할 줄 알아야
이시형

여러분 실연 해보신적 있죠?
그것도 짝사랑의 애달픔도 별 다르지가 않습니다.
실연의 아픔이란 건 때로는 죽고 싶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하는 이야기는 체념 할 줄도 알아야 되겠다.는 주제입니다.

떠난 연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올 이유가 없어요. 이성적인 판단을 해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깨끗이 체념해야합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야 그건 순수하지가 못하다”
여러분 가끔 소설에는 떠난 연인을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그 환영과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더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이고 문학이지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일단 떠난 사람, 괜히 때로는 원망하고, 미워도 하고, 이빨을 갈고 그러면 자기만 다칩니다.
이것은 연인을 위해서도 그럴 수도 없고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딱 생각해 보고 “아, 이 여자가 아니다. 돌아올 여자가 아니다. 돌아올 남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체념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전 정신과 의사니까요, 가끔 떼인 돈 때문에 속상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을 받기 위해서 심지어는 정말 엉뚱한 사람을 고용을 해서 때로는 그 고용한 사람이 오히려 나쁜 사람이 돼서 돈 받아 달라는 사람을 협박을 하고 아주 어려운 곤경에 처하는 이런 경우도 저는 들어봤습니다.

소송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도 얼마 안되는데.
여러분 판사들은 그런 이야길 합니다. “제발 소송은 하지 말아라.” 여러분 한국사람들은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할 줄을 모릅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이건 완전히 오기죠.
그렇게 되면은 거기에 들어가는 정신적인 충격이나 그 부담은 물론이고 당장 경제적으로도 감당을 하기 힘든 것이 소송입니다.
“오죽하면 저 녀석이 내 돈을 떼어먹었을까?”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래도 또 빌려준 내가 형편이 낫지 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고 체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김선규씨라고 내가 참 존경하는 후배의사가 한분 계십니다.
이 분은 40대 초반에 직장암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수술하러 갔더니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에 암세포가 다 번졌습니다. 겨우 통변만 할 수 있게 암 덩어리만 떼어내고 그냥 닫아버렸어요.
이 분도 모든 걸 체념했습니다. 병원도 물론 닫고. 그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참나물 먹고 물 마시고 죽을 날만 기다린 것이죠. 모든 걸 체념을 하고..

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죠? 죽질 않는겁니다.
1년이 지나 2년이 지나 이제는 가족들도 오면은 “아, 당신 아직 안죽었네.” 그러고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굴이 점점 좋아져갑니다. 다시 돌아왔더니, 여러분 이 분을 외과전문의가 보면은 귀신이 살아 왔다고 그러겠죠.
암 세포 하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의 결론은 정말 기적적인 생활을 했던 것은 “자기가 정말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기 사촌 동생도 직장암으로 똑같이 수술을 받고 형하고 함께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이분은 몸은 지리산에 와 있는데 마음은 증권시장에 가 있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한잔, 기분 좋다고 한잔,
결국 그 동생은 아깝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의 진단은 “동생은 마음을 비우질 못했다.”였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비운다는게 참 쉽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현재 이 분은 의사면서도 ‘암협회’ 회장이 아니고 ‘암환자협회’ 회장으로 지금 활약 중에 있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후배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또 완전히 잊을 것은 잊고 체념할 것은 체념해야지, 그 무거운, 정말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그 스트레스에 사슬에서 풀려날 수가 있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 질수 있습니다.
여러분 집념도 좋지만 때로는 체념 할 줄도 아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생활습관을 바꾸자
김서곤

질병에 의한 사망 원인 1위, 2위, 3위는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입니다.
암, 뇌혈관질환(뇌졸중, 뇌경색), 심장질환 모두 생활습관병입니다. 고혈압,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협심증 등도 모두 생활습관병입니다.
생활습관병은 말 그대로 생활습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죠.
반대로 말하면 생활습관을 바꾸면 다 낫는 병이기도 합니다.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질병이 있는 사람은 질병이 없어지고 '반(半) 건강인'은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80%를 차지하는 '반(半) 건강인'이나 건강한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20%의 질병자만이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분들의 건강, 누가 책임질까요?
의사선생님?, 아니면 병원이 책임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자기의 건강은 스스로 책임지는 겁니다.
내 면역력, 내 자연치유력, 내 저항력, 내 회복력 등 이런 것들이 내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지, 의사 선생님이나 병원이 내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의사선생님이 내 건강을 지켜준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죠.

오늘날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보자면 서양의학이 들어와서 모든 질병이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막상 병원에 가면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 헷갈립니다. 수도 없을 만큼 세분화되었습니다.

지금의 의료시스템, 무엇이 문제일까요? 병원에 가면 어떻게 진료하나요?
체온이 높으면 해열제를 처방해 주고, 혈압이 높으면 혈압을 낮추는 약을 처방하며 평생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고혈압 같은 경우는 생활습관병이기 때문에 생활습관만 바꾸면 혈압이 낮아질 수 있는데 말이죠.
이런 내용을 말씀해 주시는 의사선생님이 계시긴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은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진료시스템이 환자와 그렇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진료과정이 증상 치료(결과 치료)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
만약 고혈압이 생겼다면 그 원인을 찾아 없애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생활습관 같은 것이죠.
생활습관을 바꾸면 고혈압약을 안 먹어도 낫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노인의 경우, 체온이 38.2도까지 오르기 전에는 해열제를 처방해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것보다 낮은 경우에도 해열제를 처방해 줍니다. 저부터도 그냥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 먹습니다.
과연 이것이 좋을까요? 아닙니다. 병을 더 악화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원인 치료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원인 치료는 바로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면역력을 키워 자연치유력과 저항력, 회복력을 높여주는 것이죠.
비만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적게 먹고 활동량을 늘리는 등 생활습관을 바꿔야지, 병원에서 지방을 빼는 수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인 치료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의사선생님이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원인 치료는 바로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내 아 내는 살리는 사람
이병준

여성들이 하는 일들을 ’살림한다’고 그러지요.
밥하는 도구, 청소하는 도구, 이부자리 같은 모든 것들을 살림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살림’이란 말은 ’살려 낸다’ ’생명’이라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여인들이 밥하고 빨래하고 물 긷고, 옛날에 베를 짜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 또 작은 동물들을 기르는 것, 이런 것들 전부가 살림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저 여자 살림꾼이네"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 여성분은 살려내는 일에 전문가라는 뜻입니다.
최근에 이런 여성성, 손이 접촉되면 살려내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살림의 손을 가지고 있다. 접촉되면 살려내는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 표현들을 많이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성성의 특별한 기능이라고 쭉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칼 융, 그리고 칼 융의 아내였던 엠마 융도 여성의 창조성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합니다.
"여성의 창조성은 어머니로서의 생물학적 기능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환 전반을 다 표현해간다. 교육자가 되기도 하고, 남편의 반려자이기도 하고, 또 가정에서 어머니 역할, 또 다른 어떤 역할이라도 너끈히 해내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를 맺어가는 그런 힘이다. 관계를 맺어가는 이런 힘이 여성이 가지는 창조성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우리말로 하면 살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손은 접촉하면 살려내는 마이더스의 손이지요.
청소와 설거지 같은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고상한 단어로 하면 정화시킨다고 하지요.
그래서 사람이 건강하냐, 그렇지 못하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자기 주변을 잘 청소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차이에 둔다는 겁니다.

성공하는 CEO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책상을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말은 정리정돈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런 기능들이 여성이 가지는 탁월성이 되겠지요.
그래서 "청소를 시켜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면접시험 때 청소를 시켜본답니다.
청소를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청소할 때 남을 배려하는 거, 청소할 때 기분 좋게 하는 거라든지, 그런 것들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을 알 수가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청소,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모습들이 되겠지요.
이것들이 여성에게는 그런 기능들입니다.
남편이 어떤 잔소리를 하기 전에 내가 스스로 이 부분을 기쁨으로 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잔소리의 빌미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여자로서 행복한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겠지요.

또 어떤 분은 어떤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안 식구들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들쑥날쑥 아무렇게나 되어 있는 집은 집안의 규정이나 그 무엇이 없는 집안일 가능성이 많고, 신발이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집안은 집안의 질서나 역할이 잘 분담되어있다고 봅니다.

저도 5박 6일의 영성수련과정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중에 ’성자되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내용이 화장실에서 슬리퍼 돌려놓는 일, 내가 사용한 물건들을 제대로 다시 원위치에 해놓는 일,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인데, 왜 그것을 성자되기라고 표현을 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자가 사부를 찾아갈 때 목욕재계를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정돈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매일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이 사실은 자신을 가꾸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되는 셈입니다.
참 묘하게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대로 우울증·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특징 중의 하나는 치우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창문을 확 열어젖혀 햇살이 들어오게 하고, 뭔가 정리정돈을 시작하면 우울감에서 풀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할 때는 한 번 집안을 확 뜯어고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울 것 치우고 정리하고 나면 기분이 금방 상쾌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여성들이 가지는 탁월한 기능이 됩니다.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식당을 갔더니 신발을 집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식당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손님이 오면 바로 달려가서 손님이 벗어놓은 신발을 딱 집어서 정리해 놓고 또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속으로 ’참 직원 잘 구했다. 인상이 참 좋다’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이더라고요.
그 웃음이 접대용 같지는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그 모습이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들이 잘 정리가 돼 있으니까 기분이 좋고, 등달아 나오는 음식도 맛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주변을 잘 정돈한다는 거, 청소한다는 것은 나를 위한 작업임과 동시에 타인을 위한 작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내들이 자기를 잘 가꾸는 거, 집안을 잘 가꾸는 것은 남편만을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결국 나를 위한 작업이고, 가족 모두를 위한 작업이며 동시에 가족들을 살려내게 하는 ’살림’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들어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오늘 이 방송을 보신 분들도 대청소 한 번 해보시는 거,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기분이 아마 상쾌해질 거예요.

최근 긍정심리학에서 ’어떤 사람이 행복하냐’ 라는 조사를 했더니 이타적인 사람이 행복하더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불행했는데,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초점이 갔던 사람들은 윈윈의 행복이 있다는 겁니다. 주어도 모자라지 않는 그런 행복을 누렸다는 거지요.
마더 테레사가 그렇게 살았고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이렇게 살았지요.
노년에 남을 위해 산 사람들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진짜 이기주의, 진정한 이기주의로 산 사람들이었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희생하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그분들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행복이 그 속에 들어있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지요.

우울감이 있는 분들, 청소할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아까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활패턴을 바꾼다는 것, 너무 너무 중요한 작업입니다. 색깔도 좀 화려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구요, 조명도 형광등 같은 걸 좀 바꾸어주면 좋겠다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형광등을 쓴답니다. 형광등은 사무실용이지 집안에서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가정은 집집마다 형광등이 달려있어서 우울증 환자가 많답니다.
회색빛 조명에서 색깔 있는, 노란색이나 밝고 화사한 색으로 바꾸어주는 것만으로도 꽤 효과가 있습니다.
우울감을 앓고 있거나 그런 사람들은 좀 활동적인 일에 참여시키면 됩니다.
위로하겠다고 가서 ’얼마나 힘드냐’ 그런 말 하지 마시구요, 팔을 잡아 비틀어서라도 데리고 나가시는 게 치료에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집안이 잘 정돈되어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깨끗한 곳에 가는 것도 참 기분 좋지요.
어떠세요, 여러분들은. 공원 같은 데도 자연미가 있는 곳도 좋지만 잘 가꾸어진 공간에 가는 것들 기분 좋습니다.
가끔씩 식물원에 가보면 꽃들이 참 예쁘게 있는 거 참 보기 좋지요.
이렇게 남편들은 또 아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집이 늘 깨끗하고 청결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들도 함 시켜보십시오. 애들도 처음에는 싫어합니다. 청소하자 그러면 막 짜증을 내는데요, 조금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깨끗해진 공간을 보고 아이들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부모가 가르쳐야 될 영역입니다.

집안에서 엄마이든 아빠이든 콧노래를 부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잘 정리하고 청소하고, 때론 버릴 것 버리고 모을 것 모아놓고, 그렇게 잘 정리해 놓는다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겁니다.
그냥 청소한다고 그러니까 어감이 좀 그렇지만 아까 우리가 정화한다는 표현을 썼었지요.
내가 정화하고 있는 거, 정리정돈 하는 것은 온 우주를 정화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기쁨으로 하셔도 괜찮겠지요.
그게 살림의 기운이 될 겁니다.
살림의 기운, ’살림’에 ist를 붙이면 전문가가 되겠지요(살림+ist, 살림니스트).
그래서 우리는 살려내는 전문가들입니다.
우리 넷향기 가족 여러분도 내가 접촉하면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살려내는 전문가, 살림니스트가 되시기 바랍니다.

 

 

 

 

슬퍼하지 못하는 사람
박상희

오늘의 주제는 ’슬퍼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죠. 슬퍼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문젠가? 그건 발랄하고 명량하고 즐거운 사람이란 얘기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 발랄하고 명량하면 참 좋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희로애락을 다 경험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정말로 건강한 사람이죠.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 중에서는 슬픔을 직면하지 못하는 분이 참 많습니다. 또 젊은 세대일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의 주인공은요,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제가 10년 저까지만 해도 슬픔을 잘 직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 문제에 대해서 저도 직면을 못했습니다.
그냥 멋지고, 신나고, 즐겁고, 화려한 이런 삶을 살면서 "아, 재밌다!" 그러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항상 좀 답답하구요, 깊은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상담사가 되기로 하고 제 스승님 중의 한 분께 교육 분석을 받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석사 과정에 있었는데 저희 스승님께서 "상희 씨는 감정을 한 번 바닥으로까지 떨어뜨려보면 참 좋은 상담사가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가 망치로 뒷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래 내가 슬픔에 잘 직면하지 못해서 슬픔에 직면해야 될 때가 오면 아주 가벼운 무엇인가로 도피하곤 하고, 항상 나는 멋진 사람, 즐거운 사람, 화려한 사람, 이런 걸 추구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후로는 제 감정선이 요정도(목까지) 된다고 하면 여기(목) 아래로 떨어지는, 슬픔에 제가 느껴왔던 것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용기를 내어서 그 감정선 밑의 감정을 직면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슬픔이나 어려운 감정이 왔을 때 제가 그 감정을 맞닥뜨려 보았죠.

그런데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맨 처음에는 불안하고 어렵던 그 감정이 나중에는 더 깊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그런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사람도 더 깊이 만날 수 있게 되고, (저는 기독교인이니까) 하나님도 더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어를 해 놨던, 슬픔과 직면하지 못했던 그것을 만났을 때 얼마나 사람이 자유를 느끼고 편안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 내가 상담사인데, 정말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동영상을 보시는 분 중에서도 내가 슬픔을 만나지 못하고, 항상 피상적이고 표피적이고, 밝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느낌을 많이 받으시는 분이 있으면 조금씩 나의 슬픔, 나의 그림자와 만나는 연습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너무 갑자기 그런 슬픔과 확 만나면 위험할 수 있죠. 우울증 걸리실 수도 있으시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내가 느끼는 감정선에서 조금씩 조금씩 한 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주 깊은 인간관계, 깊은 나와의 만남, 타인과의 만남을 경험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나는 항상 너무 슬프다. 나는 항상 우울하다’하는 분은 물론 슬픔을 더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내 감정이 항상 아래에 있는 슬픔만을 경험하시는 분이시라면 내 감정의 선을 넘어서 오늘은 조금 더 깊은 감정, 즐거운 감정, 신나는 감정 그리고 조금은 가벼운 감정과 만나보는 연습, 나의 감정선을 넓히는 연습을 한번 꼭 해보셔서 자유롭고 행복한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완충지대 '타임쿠션'
공병호

제가 최근에 워커홀리즘이란 책을 읽다가 아주 재미난 개념을 하나 만났습니다. ‘타임쿠션!’
여러분 쿠션이란 단어는 잘 아시죠? 쇼파에서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것으로 쿠션이라고 합니다. 쿠션 앞에 타임이란 단어를 붙이면 타임쿠션이 됩니다.
‘시간에 쿠션을 주자’ 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거 같습니다.
타임쿠션이란 용어를 소개한 작가는 ‘화장실 가는 시간이나 약속 사이에 이동할 시간조차 없도록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잡지 않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약속 주변에 타임쿠션을 배치함으로써 긴장감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타임쿠션이란 개념이 과연 무엇인지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 올리셨을 겁니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삶에 대단히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적절한 긴장감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많은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적절한 긴장감이 지나친 긴장감으로 오지 않도록 우리는 늘 주의를 해야 합니다.

지나친 긴장감은 항상 우리의 건강 가운데서 특히 간에 많은 부담을 주고 그 간은 바로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으로 직결되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지 않는데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면 아마 지나친 긴장감을 습관적으로 만들어 내는 여러분들의 생활패턴에 의해서 그렇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 가지 습관은 ’타임쿠션‘을 생활 속에 좀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끝났을 때 그 일과 그 다음 일 사이에 약간의 여백을 주는 겁니다.
그 여백은 스스로 집중적으로 업무를 잘 처리한 자기 자신에게 일정한 보상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어떤 특별한 만남 전에도 약간의 시간쿠션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을 만나게 되면 일정과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서 인터뷰를 마치고 그 다음 인터뷰를 하고, 또 그 다음 사람을 만나고 그 다음 일을 하게 되면 쉼 없이 자신 자신을 몰아치게 되면, 결국은 그 모임도 그 회의 성격마다 많은 분들이 ”저분이 지나치게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피곤해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습관적으로 타임쿠션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우리 삶 속에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타임쿠션은 일종의 여백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여백은 잠심 휴식을 취하는 일일 수도 있고, 또는 긴장을 푸는 일일 수도 있고, 또 긴장과 휴식이 아니면 그냥 물끄러미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옛일을 생각 해 볼 수도 있고, 그냥 오고 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부분들도 얼마든지 타임쿠션, 또 생활의 여백을 주는 부분과 맞먹는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을 미루어 보면 타임쿠션은 ‘훈련과 습관의 결과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과도하게 업무로드가 걸린 사람 같으면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자기 자신의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타임쿠션을 마련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면 업무량을 많이 처리하면서도, 좀 더 집중을 높힐 수 있고, 피로감을 덜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생활 속에 타임쿠션을 만들자.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타임쿠션을 활용하자. 그리고 타임쿠션은 훈련과 습관의 결과물이다.’ 좋은 습관 한 가지로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직장, 스트레스가 따뜻한 애정으로
이시형

청년 실업이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업도 문제지만, 취업이 되었다고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언제 구조조정이 될지, 언제 감원선풍이 불지, 정말 하루가 편하지 않은 것이 직장생활입니다.
그 뿐이 아니지요. 직장은 상사한테 정말 억울한 야단을 맞고 이럴 때는 사표라도 쓰고 떠나고 싶지요.
또 직장이라고 하면 “아! 스트레스” 직장하면 “아! 골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직장은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직장은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만약에 직장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그런 곳이라면 사장이 아침마다 입장료를 받고 넣어주지, 왜 여러분께 비싼 돈을 주고, 월급을 주며 일을 시키겠습니까?

레이건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같은 것은 없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것이 직장이 아닙니다. 직장은 골치가 아픈 것이 정상입니다. 직장에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래도 내가 이런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 동료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실업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그런 동료들을 보기 미안해서라도 직장이 골치 아프다,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야기가 함부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이런 직장이 있어서 고맙다. 이 직장이 나를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성숙하게 만들고 이 직장이 있어서 내가 노부모 봉양하고, 아이들 공부시키고, 참 고맙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이 직장에 찬 벽돌에 손을 대어 보십시오.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닦아야 할 지혜, 슬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래서 교육을 받고, 교회도 가고, 절에도 가고, 좋은 책도 읽고, 강연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되고,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인생이 여러분을 기다리게 됩니다. 직장은 힘든 것이에요. 직장을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직장에 애정을 갖고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친구중에 한 명은 베란다, 한겨울에 장미가 피었는데, 매일같이 장미에게 가서 “정말 예쁘다. 잘잤어?” 인사를 하는데, 이 남편은 대학에 물리학 교수입니다. 
“여보, 당신 무슨 이야기를 베란다에서 꽃한테 하고 있느냐? 빨리 아침이나 차리지.” 그렇게 짜증을 낸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장미가 박교수가 가면 고개를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박교수도 그것을 듣고, 애정을 쏟으니까 이 장미가 겨울내내 피어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것에도 애정을 갖고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웃도, 모든 것에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잔잔한 감동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행복이 정녕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애정을 갖고 사물을 보면 이 자세가 우리 인생을 정말 풍요롭게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
이요셉

손가락이 영어로 무엇일까요? 보통 핑거라고 하지요. 그럼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안 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웃음이 삶을 여유 있게, 재미있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웃을 일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을 제가 연구를 많이 해보았어요.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어린아이들처럼 지금 사는 것이에요.
과거의 근심 걱정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오지 않을 것에 대해서 근심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충실히 마음껏 즐기고 행복하게 살더라고요.
이 세상에 가장 비싼 금이 있답니다. 백금도, 순금도, 황금도 아닌 그것은 바로 지금이라고 합니다.
60초 모여서 1분이 되고, 60분이 모여 1시간이 되고, 24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15일이 모여 보름이 되고, 30일이 모여서 한 달이 되고, 365일이 모여서 1년이 되고 3만일이 되어 일생이 된데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못 사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지금을 사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면, 정말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제가 마음공부를 했답니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은 간단해요. 웃으면 마음이 비워집니다.
지금 한번 마음 비워볼까요? 어깨 펴고 표정을 밝게 하고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면서 한번 웃음을 해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하하하” 이렇게 웃기 시작하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과거의 집착에서도 미래의 어떤 것에서도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여기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이라는 것이 웃음이래요. 근심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위로 솟게 하는 것이 웃음의 위력이라고 합니다.

어떤 한 분이 제가 진행하는 행복여행에 찾아오셨어요.
저는 행복여행을 진행하게 되면서 너무나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이 3일 동안 진행되면서 너무나 많은 기적들을 보게 됩니다.
유방암 환자분이셨습니다. 암이 재발되었습니다. 그것도 3기에요. 폐와 옆구리, 엉덩이까지 재발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어렵다고 하는, 서울대병원에서도 어렵다는 분이 이런 분이에요.
마음껏 웃자고 그래요. 웃고 싶다고 해서 들어와요.
그분이 웃고 시작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마음껏 웃는데 그곳에서는 웃을 때 작게 웃는 것이 아니라 15분, 어떨 때는 30분 이상 웃게 해요. 내면에 있는 깊숙한 웃음을 꺼내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웃음을 쓰는 것이지요.
그렇게 웃고, 웃고, 웃다보니까, 또 울음도 씁니다. 실컷 웃고 울다보니까 이런 마음이 들더래요. 정말 구름위에 붕 뜬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자유가 느껴지더랍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 ‘앗. 다 나앗네.’ 인생의 기적은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서 마음이 바뀌면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서울대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래요. 무슨 일 있었냐는 것이지요. 실컷 웃었고, 실컷 울었다고. 그러면서 의사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암이 사라졌다." 라고.
이 분이 2~3개월 후에 다시 병원을 갑니다. 혹시 오진일 수도 있으니까. 정밀 검진을 들어가요.
암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답니다.
저는 웃음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낫게 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 안에 있는 희망의 에너지가 희망유전자가 그 사람을 살렸다고 봐요. 우리가 지금 충실한 것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 것인가.

로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 수업을 쓴 사람이지요.
인생을 떠나는 마지막 105일 대상으로 인터뷰를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아쉬워하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지요.
하나는 ”좀 더 사랑할걸.“ 두 번째는 ”좀 더 웃을 걸.“ 이라고 말하더래요.
우리가 좀 더 사랑하는 방법, 좀 더 웃는 방법이 바로 무엇일까요?
아이처럼 지금 여기서 내 삶을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누리면서, 그러면서 미소 짓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넷향기 여러분 정말 오늘 하루가 한 주간이 한 달이 최고로 사랑하고, 최고로 웃는 여러분이 된다면 정말 그것이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웃으십시오.

 

 

 

 

나의 남 편은 잔소리꾼
이병준

잔소리를 누가 많이 할까요?
이런 질문 자체를 좀 우습게 생각을 하시죠? 그런데 결혼 생활을 오래한 아내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남자들의 잔소리가 만만치 않다고 하지요.

상담실에 한 아내가 와서 이런 하소연을 합니다.
"도대체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못살겠다. 남편 들어올 시간이 되면 벌써 숨이 탁 막혀 오고 답답하고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 집은 군대도 아닌데, 집은 편하라고 있는 건데 도대체 들어오면서부터 신발이 잘못 놓여 있다. 집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아이들도 아빠를 딱 질색으로 생각을 한다는 거죠.

왜 이렇게 남자들이 잔소리가 많을까요?
그 이면 속을 좀 보면, 사실 남자들이 비난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되면 내가 관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심리적 쾌감을 얻게 되지요.
이런 것들이 몸에 익게 되면 잔소리하는 게 자연스럽게 몸에 습득이 되고요, 고질병이 되게 되지요.
그러나 그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스스로를 물어뜯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비난을 해서 상대방을 깎아내리겠지만 그쪽에서 나에게 존경을 표시해 오지도 않거니와 사실은 비난을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꽁생원이 되어있는 거지요.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결혼할 때 거는 기대는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이구요, 모든 환경이 다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과정은 어릴 때일수록 필요한 것들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하고 관계경험을 하는 거, 그것은 대상관계이론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이 지나고 나면 ’마술적 사고’를 경험하게 되지요.
마술적 사고라는 말은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 내가 원하면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서 맞춰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물건 하나 들고 있으면서 마치 요술봉 하나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더 많다는 거지요.

보통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성숙한 사람은 ’아하 그 부분이 내가 할 일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지요.
한 부부가 와서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도대체 집안이 지지분해서 못 봐주겠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지저분하냐. 집안에 먼지가 쌓이면 아주 수북이 몇 센티미터가 쌓인다."
그런데 아내는 전혀 그런데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래서 제가 이런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재능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걸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뭐 이를테면 제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입장인데요, 저보다 더 탁월한 사람이, 더 전문가가 제가 말하는 말투나 표현 방식을 보고 ’어허 저거 아닌데’라고 불편해 할 수 있다는 거지요. 당연히 그분은 저보다 전문가입니다. 불평이 보이면 그 부분은 내가 전문가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지적수준(知的水準)들을 지적하는 수준으로 쓰지 않는 것들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남편의 잔소리는 내 중심적인, 내가 더 우위에 있다. 내가 더 똑똑하다. 내가 중심에 있다. 이런 것을 표현하는 그런 내용임을 알면 되겠지요.

또한 남자들이 시각적이라는 거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후각적이라는 것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냄새에 아주 민감합니다.
어쩌면 시각적인 요소보다 후각적인 요소가 채워지지 않을 때 더 짜증을 낸다는 거지요.
부부 세미나 때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미혼 남자에게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 한 여자는 얼굴이 수더분하고 보통여자인데 가까이 가면 향긋한 향기를 풍긴다. 그런데 한 여자는 정말 탁월한 미모를 가졌는데 가까이 가기만 하면 왠지 모를 불쾌한 냄새가 난다. 누구하고 살겠냐?"
그때 남자들이 향기나는 쪽을 선택한다는 거지요.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남자들은 엄마의 가슴을 기대하는 욕구가 들어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따뜻한 그런 분위기나 향기로운 냄새, 음식이 주는 맛과 냄새, 그런 것들을 맡을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되지요.

집에서 하수구 냄새가 날 때 정말 짜증 많이 납니다. 저희 집에서도 하수구 냄새가 날 때가 있지요.
그러면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서 하수구 구멍을 막는 게 접니다.
아내는 그저 ’웬 냄새야?’ 하는 정도로 지나갈 때, 짜증을 내면서 신경질을 내는 게 접니다.
그것은 후각지향적인 냄새를 좋아하는 남자들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2007년도 영화 『향수, 부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있었지요. 중세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워낙 그쪽은 습기가 많고 햇살이 별로 들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주인공은 생선 좌판에서 일하는 엄마로부터 태어나게 됩니다. 그때 당시 향수 산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게 되었던 이 남자,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더럽고 역겨운 냄새에 노출되었던 이 남자, 역설적으로 냄새에 아주 민감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지요.
그것 때문에 당대 최고의 향수제조업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최고의 향수를 얻기 위해 엽기적인 살인을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요.
그의 상태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상태 ‘사이코패스(psychopath)였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하는 요소입니다. 그 정도까지 가 있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뭐였을까. 사람들을 다 환상에 빠뜨리게 할 만큼 그 강력한 향수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것이 여인들의 몸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런 냄새였을까. 어떤 분은 그것이 아마 페로몬 향수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즉,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몸속에서는 아이하고 교감하기 위해서 냄새를 분비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아이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안정감을 누리면서 엄마하고 교감을 느낀다는 거지요.

아직 시력도 발달되지 않았고, 다른 감각이 둔해져 있을 때 그 후각적인 내용을 통해서 엄마하고 관계를 경험합니다.
이런 것들이 남자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냄새를 맡기보다는 생선냄새 같은 더러운 냄새를 맡았던 이 남자는 근원적으로 엄마의 냄새를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젖가슴, 엄마의 냄새는 안정감을 주는 새로운 대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은 그걸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좋은 냄새, 향기로운 냄새, 음식 냄새, 아내의 풋풋한 냄새, 그런 것들을 기대하는 것은 엄마의 젖가슴을 기대하는 남자들의 본질적인 마음이기도 하지요.

나폴레옹도 연인 조세핀을 만날 때, 제발 목욕하지 말고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웅은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 이면 속에는 오히려 더 외로움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어린애처럼 표현할 수 있을 때 그런 욕구들을 애인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었고, 그래서 ’목욕하지 말고 와라’ 즉 내가 당신을 여자로서 보는 느낌이 아니다. 엄마로서 느끼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겠지요.

정리정돈 하는 부분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남편, 너무 다그치지 마십시오.
아내하고 친밀감을 누리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입니다.
잔소리해대는 남자,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외로움은 이제 그만 '당신 탓이 아닙니다'
박상희

현대인의 가장 큰 비극이 뭘까요?
저는 상담을 하다 보면 현대인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외로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 많은 분들이 절절히 외로워하고 있어요.
어쩌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외로움에 몸살을 앓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스미디어가 굉장한 속도로 발전을 했고, 우리는 사람 틈에 있지만 정말 마음 깊숙이 있는 그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외로움’하면 생각나는 분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 중의 한 분은 너무 너무 친구한테 연락도 자주하고 친구를 많이 원하고 의존하는 분인데, 정작 ’나는 친구가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과 대화를 해봤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까 이분이 친구들을 숫자적으로는 많이 받아들이지만 어떤 중요한 핵심적인 곳에 가게 되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친구들을 밀어내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비밀을 탁~ 감춘다거나 연락을 딱~ 끊는다거나 하는…

그러면서도 본인은 친밀함을 너무나 많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 괴로워하곤 했죠.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듯이 그 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정도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폭행의 상처였는데요, 우리 모두는 가족사에 누구한테나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아픔들, 또 아무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는 나만의 아픔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 아픔이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나에게 못 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 되는 것이죠.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란 영화를 봤는데요, 제가 아주 인상 깊게 본 것은 거기에서 상담사 역할을 한 마이클 더글러스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죠.
"너의 탓이 아니다! 너의 탓이 아니다! 너의 탓이 아니다!"
그 얘기를 계속 듣는 주인공은 맨 처음에는 그저 "알아요, 알아요!"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자기감정이 폭발됩니다.

혹시 우리도 내가 어쩔 수 없었던 나의 가족의 이야기, 내 경험 때문에 지금 나의 이 소중한 시간 시간을, 너무나 좋은 만남을 거부하고, 너무나 친밀할 수 있는 귀중한 사이를 멀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나는 우정도 사랑도 내 아픈 과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의 문제 중에 가장 절절한 것이 외로움이라고 느꼈듯이, 아마도 이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도 지금 많이 외로워하시는 분들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혼자 외로워해야 될까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주변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얼마든지 열린 마음 따뜻한 손길로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꽁꽁 감싸지고 있는 나의 아픔, 누군가와 나눌 때 그것이 녹아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상담사도 아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담을 할 때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여행의 친구가 되는 느낌이 가장 강하거든요.
혹시 자기 탓이 아닌데 그 아픔을 이기 지고 가시는 분들이 있으면 (위의)유명한 이야기 다시 한 번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요.

 

 

 

 

감사하면 스트레스 이상 무!
이시형

우리 정신의학에서는 ‘스트레스의 대가’ 하면 한스 셀리(hans seyle-내분비학자)라는 분을 듭니다.
이분은 1958년도에 스트레스를 통해서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캐나다 분인데, 이분이 고별 강연을 하버드 대학에서 했습니다.
제가 그때 마침 그 대학에 있어서 정말 아주 감동적인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 하버드 강당에 백발의 대가 노교수들이 빽빽이 들어섰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내려가는데 웬 학생이 길을 막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 시대를 살아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이분이 딱 한 마디를 말했습니다.
“Appreciation!” 감사하며 살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장내는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여러분, 감사만큼 강력한 스트레스 정화제도 없고, 감사만큼 강력한 치유제도 없습니다.
여러분들, 종교인이 장수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종교인들이 범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이나 하찮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 자세가 종교인이 장수하는 비결로 의학에서는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참으로 편안하고 마음이 그저 평온하면서 또 우리가 뇌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러는 순간 세로토닌이 펑펑 쏟아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로토닌이 건강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라는 것이 인간을 그저 편안하게 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감사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라는 게 하나님께만 감사를 드리게 되겠습니까?
고생하는 아내일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고, 또 이른 봄부터 밭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부에게도 우리는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요즘 가끔 길에서 저의 동년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힘든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동지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여보, 노형 당신이 용케 살아남았구려.” 이렇게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고, 그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동지애 같은 느낌이 듭니다.
힘든 세월을 우리는 참으로 땀 흘려 가며 죽어라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이지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아침마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기도문을 꼭 외웁니다.
이분은 ‘홍당무’를 지은 작가입니다. 신체가 허약해서 아침마다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눈이 보인다. 귀가 즐겁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괜찮다. 고맙다. 인생은 참 아름답다.”

저는 이 기도를 들을 때마다 제 몸에 한없는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것입니다.
네 발로 이렇게 대지를 버티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생활을 어느 한순간도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아침에 제 발을 주무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발이 제일 고생을 하니까.
“수고했다. 고맙다. 조심할게. 잘 부탁해.”
저는 정말 진심을 담아서 발을 주무르면서 내 발에게 부탁을 드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내 몸에도 감사를 드려야 되겠지요?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지천에 널린 것이 감사뿐입니다. 정말 감사를 생활화하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