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모음

鶴山 徐 仁 2015. 8. 25. 15:28



자녀를 위해 울라


위대한 인물들의 뒤에는 부모의 도움이 있었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후계자가 된 것도
어렸을 때부터 외조모와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디모데를 사도 바울이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는
오막살이 통나무집 구석구석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그 기도 소리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설동주 목사의‘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한다.‘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가운데서 뒤를 돌아보시며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말씀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인 줄 알고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고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잠언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Gold there is, and rubies in abundance, but lips that speak knowledge are a rare jewel.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여호와의 행적을 보라 - 시편 46:4-8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처럼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에 치이다가 어느새 방전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인 충전소입니다. 휴대폰도 충전이 되어야 계속 사용할 수 있듯이 영적인 존재인 우리도 영적인 충전이 되어야 삶을 영위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 영적인 충전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영적충만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행복의 첫째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충만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나의 소명을 확인해야합니다. 소명이란,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나이 80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의 삶은 광야에서 낙오자로 사는 삶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민족의 지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소진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기억하며 정진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충만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 결단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을 확인했다면 결단하고 도전하는 과정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소명을 확인하고 과감하게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으로 향했습니다. 바울도 소명을 확인하고 자신의 기반을 버리고 이방인 전도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소명을 발견했다면 결단해야 합니다. 예전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고자 결단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셋째, 나를 부르신 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지치고 힘든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며, 그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소명의 길로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피난처이십니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나라와 왕들도 그분을 대적할 수 없는 크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행적을 바라보고 앞으로 행하실 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적용>
- 소명이란 무엇인지,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확인해봅시다.
- 소명을 위해 결단하고 도전한 기억이 있는지, 없다면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행적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부름 받은 소명의식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결단과 용기가 부족한 저를 믿음 충만케 하시어 담대함으로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지난날 경험한 하나님을 붙들고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종으로 인도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see you again


어느 가정에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
두 아들이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큰 아들을 안고서
“Good bye! Good bye!” 그 말은 잘 있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큰 아들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와 영원히 헤어진다. “Good bye!”
그리고 그 동생 막내는 예수님을 잘 믿는데 그 품에 안으면서
“See you again!” 다시 보자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의 ‘see you again'에서-

똑같은 어머니의 자식이라도 임종에 왔을 때
맏아들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니까 잘 있으라.
그러나 둘째 아들은 다시 보자. See you again.
이렇게 형편과 사정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다시 만날 약속이 있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신명기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If you ever forget the LORD your God and follow other gods and worship and bow down to them, I testify against you today that you will surely be destroye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감사 그리고 행복 - 시편 95:1-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요즘 당신의 감사생활은 어떻습니까? 무더위와 사회적인 여러 현상들이 우리를 감사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은 감사라는 밑거름 없이는 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행복 하고 싶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천국은 감사가 가득한 곳일 겁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감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이 나와 우리 가정에 일어났을 때 감사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상황가운데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주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이러한 감사가 마음의 기저에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능력의 왕이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능력의 왕이시라면 우리가 만약 시련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이며 결국에는 건져주실 것임을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또한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이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실 것임을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삶의 윤활유입니다. 감사가 충만하다면 우리의 삶은 부드럽고 안전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삶은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감사가 가득했다면 그들은 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완악해진 마음을 감사라는 윤활유로 채우고, 세상의 모든 유혹에 맞서 싸운다면 믿음의 사람들의 승리의 삶이, 그 기적의 삶이 바로 오늘 나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십시오. 참된 감사가 참된 행복을 부릅니다.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믿음의 선택


믿음의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변화시킵니다. 그 영향력은 영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했을 때 그녀의 미래가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했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인생 역전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녀의 자손이 영원히 잘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강준민의 [자람의 법칙] 중에서-

믿음은 처음부터 선택과 결단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따라가기로 결단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놓입니다. 선택과 결단이 있은 후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역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따라가기로 선택하고 결단하고 집중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함을 내 것으로 누리게 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The LORD will open the heavens, the storehouse of his bounty, to send rain on your land in season and to bless all the work of your hands. You will lend to many nations but will borrow from non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 겔 4:9-17
9.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 동안 먹되

10. 너는 음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씩 때를 따라 먹고

11. 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12.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13. 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14. 내가 말하되 아하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락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16.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17.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 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유다의 예루살렘이 이렇게 계속 바벨론의 공격을 당하고 에워싸여 함락되고 생지옥이 된 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5:5, 11).
첫째는 유다 백성이 이방인들보다 더 큰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신자가 불신자들보다 더 악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춰야 할 택하신 백성들이 더 어두워졌고, 공평을 원했더니 더 포악해졌고, 공의를 바랐더니 더 불의하더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성전 안에서 행해진 우상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에 대해<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렵혔다>(5: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만든 성소에서 우상을 숭배했으니 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잡곡으로 떡을 만들라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 수 곧 삼백구십일 동안 먹되>(9절).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온갖 잡곡을 다 모아 떡을 만들라고 하시고 모로 누워자되 좌편으로 누워 390일, 우편으로 누워 40일을 지내며 그 거친 떡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떡이 아니라 거친 잡곡 떡, 그것도 반듯이 누워 편히 자지말고 모로 누워 390일과 40일을 자면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그 떡이 딱딱하게 굳어지면 그걸 다시 인분에 구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모로 누워자고 줄로 몸을 동이고 거친 떡을 먹는 것까지는 견디겠는데 인분에 떡을 구워 먹는 것 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인분을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자 하나님이 다시 쇠똥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는 다 에스겔로 하여금 유다의 죄악과 허물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지금 에스겔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은 그것이 그대로 유다가 범죄할 때마다 겪으시는 하나님의 아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쇠똥으로 떡을 구을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락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15절).
쇠똥, 그래도 인분보다는 냄새도 덜 나고 섬유질이 많아 화력도 좋았습니다. 실제 티베트 유목민들은 야크 똥을 말려 긴 겨울용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그 어떤 나무 연료보다 유용하다고 합니다. 스리랑카 사람들도 코끼리의 똥을 말려 땔감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에스겔은 인분 대신 허락하신 쇠똥을 연료로 딱딱하게 굳은 거친 떡을 구워 먹으며 인간의 냄새나는 죄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에스겔로 하여금 유다의 죄악을 온몸으로, 피부로, 삶으로 체험하고 느끼며 더욱 절절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치고 전달하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에스겔의 그런 행위 계시는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실제 당하게 될 최악의 상황을 연기한 예언극이기도 했습니다.
<... 내가 예루살렘에서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 떡과 물이 부족하여 ...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16-17절).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생수의 원천


성경은 하나님을 생수의 원천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샘물과 시냇물, 그리고 생수의 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그 뿌리를 생수가 풍성한 시냇가에 심기울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서 변화와 성숙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심기운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사랑이나 혈육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왕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강준민의 [자람의 법칙] 중에서-

성경은 우리를 온전한 구원으로 안내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생명의 원천임을 알기에, 자기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시대에 이단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말씀을 왜곡하여 이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생수의 원천인 것은 말씀이 말씀으로 온전히 다가올 때 가능합니다. 그 말씀위에 온전하게 심기워 질 때 생수가 되고, 생명이 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ions may grow weak and hungry, but those who seek the LORD lack no good thing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예루살렘을 에워싸라 -겔 4:1-8
1. 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2. 그 성읍을 에워싸되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향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3.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4.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5.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6.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7. 너는 또 네 얼굴을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

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끝나기까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에스겔 선지자의 메시지는 말과 글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상징과 환상이 동원되고, 특히 선지자가 자신의 몸으로 연출한 퍼포먼스가 많습니다. 그는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하나님이 분부하시는 대로 난해한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의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이는 입체감과 현장감을 통해 전달력을 높이고 보다 구체적이며 생동감 있게 하나님의 경고를 체감하게 하시려는 일종의 배려요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실감나게 증거하는 선지자의 메시지를 보고 감동과 도전과 위기감을 느끼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람직한 반응을 보이며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징조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3절).
징조란 미리 보여지는 조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게 하시고 거기에 사다리를 세우고 공성퇴를 배치하게 하시고 철벽을 만들게 하신 것은 이제 곧 바벨론에 의해 제3차 포위와 공격과 점령이 있을 것이라는 계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는 언제나 사전 징조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하시면서도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마 2430)이라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막 13:28). 부디 시대의 징조를 읽는 일에 둔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종들을 통해 끊임없이 종말에 관한 징조를 연출하고 계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눈 있는 자는 볼 일입니다.

예언
<너는 또 네 얼굴을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7절).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을 향해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곳은 없습니다. 비록 철저하게 포위되고 철판으로 에워싸인 성 예루살렘이지만 그쪽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는 것은 힘 있는 말씀의 펀치를 날리라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늘 핑계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은 세상이 기독교에 대해 너무 적대적이다. 교인 수가 적어 설교할 의욕이 안 생긴다.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을 대상으로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아깝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봉쇄 당한 성읍일지라도 그쪽을 향해 팔을 걷어붙이고 힘껏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부디 어려운 상황일수록, 환경이 열악할수록 더욱 팔을 걷어붙이십시오. 어쩌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은 바로 그렇게 적들에게 에워싸인 성읍일지도 모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살아있는 믿음


우리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도 확신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렇게 교리적인 믿음을 믿음이라고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고 말해도 기쁨과 평안이 오지 않습니다. 참 기쁨과 평안은 교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모든 교리적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순교의 믿음은 다른 문제입니다. 순교의 믿음은 예수님이 내게 정말 살아 계시는 주님이시고, 내 왕이 되시는 것을 실제로 알 때 따라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교리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죽음은 여전히 두렵습니다. 나와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만이 성경에 있는 모든 복음이 내게 능력 있는 복음 되게 합니다.
-유기성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중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신앙의 형식을 아는 것이 습관이 되고, 이것을 교리적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인데,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안다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아는 것은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믿음으로 치부하며, 성경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쏟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난 현재형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만난 것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은 현재 하나님의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일례입니다. 지금 만난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까?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주의 영이 임하사 - 겔 3:22-27
22.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23.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24.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5.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24절).
주의 영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영입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땅이 진동하고 닫힌 문이 열리고 매인 것들이 다 풀립니다. 또한 주의 영은 열린 문을 닫기도 하시고 풀린 것을 다시 매기도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매이셨고 다시 사탄을 결박하시기 위해 닫힌 무덤의 문을 여신 분이십니다. 에스겔에게도 지금 그런 주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22절).
주님도 홀로 밤이나 새벽에 자주 광야, 혹은 산으로 나가셨습니다. 그것은 소음이나 인적을 피해 홀로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에스겔에게 <들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도 거기서 그에게 계시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은 복잡한 모든 인간 관계를 떠나 순수한 자기에게로 귀환할 때 가장 겸손해지며 바로 그 순간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자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깨닫고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다시금 이웃을 만나고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여호와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사 들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도 거기서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후 그로 하여금 다시 백성들을 만나 주신 말씀과 계시를 바르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직은 무더운 이 여름의 끝자락, 들로 산으로, 야외로 나가셔서 <거기서 내가 말하리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해 올 하반기도 주님 주신 말씀을 온 몸으로 보다 충실히 증거하며 사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들을 자는 듣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 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27절).
높은 망대에서 파수꾼이 열심히 경고의 나팔을 불어도 듣고 신속히 그 경고에 대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듣지도 않고 전혀 그 나팔소리에 관심도 반응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역시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듣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파수꾼은 여전히 나팔 부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며,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한다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여 나팔 부는 일을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어차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라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시며 다만 너의 소명은 파수꾼이므로 듣든 안 듣든 오직 전하고 경고하는 일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야말로 이 마지막 시대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당부요 이 시대의 파수꾼들인 우리 믿는 자에게 꼭 있어야 할 맞춤형의 권면이라 믿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사명으로 이루는 기쁨


‘지금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낙심하고 있지만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을 이겨냈을 때 주님은 나를 신부로 다시 세워주실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하면서 내게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가자. 이 땅에서의 삶은 누리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내가 살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때,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 혜택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가슴이 무겁고 짓눌리는 가운데도 사명을 감당하고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 노래의 기쁨이 있다.
-이찬수의 [오늘을 견뎌라] 중에서-

우리의 사명은 끝까지입니다. 일순간적인 헌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번제물이 되기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곳에 서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 땅가운데 보내시고 불러주신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시간들을 공백기로 두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에게 가장 큰 경고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이 무익하고 게으른 종아”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111:4
돌이켜보건데 내게 주어진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기적이며 은혜입니다. 그 기적같은 오늘을 무뎌진 감사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 창세기 29장 31절~35절
31.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야곱의 아내 레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레아는 야곱이 원하는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원했지만, 삼촌 라반 때문에 억지로 레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레아가 야곱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여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도 아셨고, 레아의 마음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억지로 사랑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아시고 레아에게 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반면에,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대 근동의 풍속에 의하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 당시 아내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자신의 지위가 확보된다는 것이고, 여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이 주어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나 사무엘상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처럼, 자녀를 낳지 못하는 아내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레아를 돌아보시고 많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을 아실까? 하나님이 내 신음소리를 들으실까?’ 아니,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정말 나의 고통에 귀를 막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신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고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이 가장 우리에게 좋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다리고, 인내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은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 내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아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맞추어서 그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간절히 기다리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오늘도 인내함으로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레아에게 행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행하실 줄 믿습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다 주(主)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심방하고, 특별집회나 수련회에 참석할 때조차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도 하고, 믿음도 있다고 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 한분에게만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유기성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중에서-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우리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많은 일들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회복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순종의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위로와 회복의 은혜 - 이사야 49:15-18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현대인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회의 희망인 청년들은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된 위로를 찾아 세상을 헤매지만 그곳에는 참된 위로가 없습니다. 참된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처방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위로를 받고자 하여 우상을 섬기고 주변의 강대국을 의지했을 때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돈이나 명예, 권력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친구나 애완동물 등에 과도한 관심이나 애정을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고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잊으셨다고 토로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인이 젖먹이 자녀를 기억하듯이 기억하고 손바닥에 이스라엘을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빠져 있더라도 우리를 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켜보시고, 끝내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성경에서 신실하다는 의미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과 환경, 모든 필요를 아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모두가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멋지게 쓰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적용>
- 나는 어떤 방법으로 위로 받으며 살아 왔는지 돌아보며 주님앞에 새롭게 결단합시다.
- 주님의 사랑하심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고 회복의 은혜를 구하십시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저희를 선택하여 부르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그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영적 눈을 열어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심으로 주 영광위해 살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사랑은 고통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가 대체로 사랑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험을 기피하는 것, 더 나아가 안전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물러서게 만든다. 분명히, 우리 대부분은 좋은 인생을 만드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자인 우리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는 삶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처럼 선한 사랑의 삶에 이르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우리 대부분은 고통과 훈련을 생략하고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다소 쉬우며 정해져있는 길을 가려고 한다.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의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중에서-

사랑은 철저히 고통이 뒤따릅니다. 내 자신을 사랑하기에 내 자신을 모험 가운데 내 몰아야 하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가두지 않습니다. 남녀가 사랑하기에 가두지 않습니다. 집나간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보낼 수 있었으며, 진정한 사랑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감수할 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꿈꾸는 사람들의 행복 - 여호수아 3:14-17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지금 어떤 꿈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그 꿈을 이루어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으십니까? 때로는 우리의 욕망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만족을 위해 우리의 욕망을 꿈이라 말하고 싶지만 신앙인의 진정한 꿈은 나의 뜻을 내려놓고 선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약속의 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들일까요?
첫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비전은 약속의 땅으로그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넘실거리는 요단강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두려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이 자신에게 전달되었음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모세의 꿈이 자신의 꿈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연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연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속의 땅을 꿈꾸는 사람은 그 연단을 이겨내고 통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기억해보십시오. 가나안 사람들의 큰 몸집을 보고 겁을 먹어 꿈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들을 일깨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은 연단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품고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명은 결국 약속의 땅을 밟았으며 꿈을 이루었습니다.
셋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에 순응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삼킬 듯이 넘실대는 요단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매고 발을 담그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진정한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꿈꾸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적용>
- 나의 꿈은 무엇이며, 그것이 내 야망은 아닌가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점검해 봅시다.
- 내게 주어진 연단과 시험을 무엇인가요? 지금 잘 통과하고 있는지요?
- 꿈은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순종을 위해 기도합시다.

[기도]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 삶을 예비하시고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지금 주어진 어려운 사정도 꿈 때문에 이겨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환경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주시옵소서. 더 큰 주의 나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인생의 승리


인생의 승리는 눈물과 땀과 피, 이 세 가지 액체로 주어집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릴 줄 아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이 액체들은 값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뜨거운 세 가지 액체를 우리에게 흘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려주신 세 가지 액체는 눈물과 땀과 피 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눈물과 피와 땀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강준민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주님이 흘리신 눈물, 땀, 피는 우리를 살리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방법도 눈물, 땀, 피가 있어야 합니다. 흘리는 눈물, 꿇은 무릎, 쏟은 피로 인해 승리를 경험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쓰임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일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 쓰임도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진실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다른 것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눈물과 땀이 있는 인생, 주의 보혈을 의지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잠언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Gold there is, and rubies in abundance, but lips that speak knowledge are a rare jewel.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파수꾼 - 겔 3:12-21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16.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의 신작 <파수꾼>이 전세계 동시 판매 첫날이었던 지난 달 14일 단숨에 알라딘의 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하퍼 리의 <파수꾼>에서는 아버지가 주인공 루이즈의 양심의 파수꾼이었지만, 오늘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에스겔을 향해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7절)고 하셨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왕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잘 전달하고, 또 외부의 적들의 동태나 침략을 백성들에게 신속히 알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파수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죄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 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죄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18절).
파수꾼은 그 사명이 엄중한 만큼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예를 들어 파수꾼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성실히 전했음에도 세상이 이를 듣지 않았다면 파수꾼에게는 더 이상 책임이 없습니다. 대신 파수꾼의 경고를 듣지 않은 세상이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므로 세상을 깨우쳐야 옳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아 사람들이 악하게 살다 멸망했다면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파수꾼의 몫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기억하십시오. 이 시대 모든 불신자들은 그들과 동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 믿는 자들, 한 시대의 파수꾼들로 부름 받은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21절).
이것은 파수꾼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파하여 세상이 깨우치고 돌아오면 돌아오는 그 사람은 물론 그를 깨우친 파수꾼도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구원에 봉사하고 세상을 깨우치는 일보다 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명에 기여하고 값진 성과를 낸 파수꾼에 대해 각별한 은혜와 보상을 허락하시되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최상의 축복입니다. 남을 구하는 파수꾼의 사역에 최선을 다합시다. 남을 깨우쳐 살리고 범죄에 빠지지 않게 하는 파수꾼의 사명이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깨달읍시다. 우리도 모두 신실한 파수꾼에게 약속하신 <영혼 보존>의 축복을 누립시다.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모험


모험은 우리가 매일 매일 삶의 난관에 적용시켜야 할 태도이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도전과 직면하고, 새로운 기회를 붙잡으며, 미지의 세계에 맞서 우리의 역량을 점검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자신의 독특한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 모험은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며, 즐기거나 견디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험은 인생 그 자체의 흐름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저 단순한 경험이던 것이 모험으로 변화된다. 선교적 제자도와 공동체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삶으로 우리를 부른다는 것이다.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의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중에서-

우리가 날마다 인생이 모험임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냥 계획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맡기고 걸아갈 수 있는 믿음의 한 방법이 모험입니다. 미지를 향해, 미래를 향해 떠나는 모험은 가나안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던 것과 같습니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지만 가 본적이 없기에 모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한 항구에 가두어 두시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 속에 깊이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신명기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If you ever forget the LORD your God and follow other gods and worship and bow down to them, I testify against you today that you will surely be destroye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두루마리를 먹으라 - 겔 3:1-11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환상 중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주시며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2:8)고 하셨습니다. 그 두루마리 안팎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2:10)이 잔뜩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두 번째 침략 때 포로가 됐고, 그로부터 5년 후 선지자로 부름 받았으며 다시 4년 후에는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세 번째 침략이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노역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렇게 두루마리에 적힌 그대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전했습니다.

꿀 같이 달더라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3절).
아니, <애가와 애곡과 재앙>으로 이뤄진 두루마리가 지독하게 쓰기는커녕 꿀처럼 달더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졌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게 어떤 내용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입을 벌리고 받아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 잘 소화만 하면 다 꿀처럼 단 말씀이 됩니다. 흔히 우리는 입에 쓰면 뱉고 달면 삼킵니다. 그래서 두루마리의 진정한 가치와 맛을 다 못 느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입을 크게 벌리고 먹어야 하며 쓰다하여 뱉을 것이 아니라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 소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비록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일지라도 결국은 내게 다 덕이 되고 약이 될 뿐 아니라 꿀처럼 달게 됩니다. 다윗도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그랬습니다. 입이 아니라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 잘 소화해야 비로소 꿀처럼 단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하라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11절).
2장에서도 하나님은 이 말씀을 두 차례나 반복하셨습니다(5, 7절).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2:4)고 명하신 말씀입니다. 선포되는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안 듣고는 백성들의 몫입니다. 그것은 오직 백성들 개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전하는 사람은 말씀만 충실히 성실히 전하면 그 뿐입니다. 만약 안 듣는다고, 배척하고 박해한다고 전하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듣든 안 듣든 전하십시오. 그런 원칙과 신념에 투철하지 않으면 누구도 전도나 선교를 할 수 없으며 설교자로서의 사역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듣고 안 듣는 것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설교자나 전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듣든 안 듣든, 때를 얻든, 못 얻든 전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말씀을 전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며 소양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다시 생각하는 공동체


박해를 견디기 위해서는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정과 위험에 관해 숙고하면서, 폴 워델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라고 주장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랑하며 증명하는 공동체는 공동체 외부의 누군가에게로 사랑을 확대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더욱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더라도 말이다. 스캇 베이더세이는 이 모든 논의를 이렇게 매듭짓는다.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의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중에서-

교회는 박해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항상 좋은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해를 당했던 초대교회가 있었음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신앙의 여정에서 고난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우리에게 견딜 힘을 가지게 하는 맷집 같은 것입니다. 더욱 공동체와 함께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더욱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이겨낸 간증이 있는 공동체는 건강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Whoever can be trusted with very little can also be trusted with much, and whoever is dishonest with very little will also be dishonest with much.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일어서라! - 겔 2:1-10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하나님은 위기의 시대에 선지자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하거나 나라가 외적의 침략으로 위태로울 때, 모진 고난이나 시련이 닥쳐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에스겔도 마찬가집니다. 북왕국이 망하고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의 침공으로 패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에스겔 자신도 포로가 되어 지금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부역을 하며 고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중인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1절)고 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마음이 이러하시다 하라>(4절).
이게 바로 당시 포로생활 중이었던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몹시 혹독한 말씀이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가시와 찔레 같았고 전갈과도 같았습니다(6절). 그만큼 강퍆했고 표독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신다 해도 비웃고 조롱하며 대적할 게 뻔했습니다. <자기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지켜주지도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믿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종살이 하는 우리에게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인가> 하며 오히려 선지자를 배척하고 박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들에게 보내신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고 그들 가운데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담대해야 하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이 마치 가시 같고 찔레 같을지라도, 전갈 같고 독사 같을지라도 반드시 찾아가야 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해야 합니다.

패역한 족속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7절).
2장에는 <패역한 백성>, <패역한 족속>이라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패역>이란 <패역무도>라는 말로 그 행하는 모든 처사가 인륜에 어긋나 한없이 악하며 거의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당시 유다가 얼마나 악하고 못나게 굴었으면 하나님이 이렇게 <패역>이란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계실까요? 따라서 살벌한 포로지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해야 하는 에스겔로서는 충분히 두려움과 큰 공포감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내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요즘은 세상 분위기가 참 노골적입니다. 대놓고 기독교를 욕하고 원색적으로 교회를 비난하며 적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게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가시처럼 찔레처럼 아프게 하고 전갈처럼 증오해도 우리 일어서야 하고 복음을 증거해야 하고 듣든지 안 듣든지 외쳐야 합니다. 에스겔의 소명을 통해 이 시대 우리들의 사명을 고취합시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높은 부르심


우리의 가장 높은 부르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형식이 되었든 지역 교회에 참여하려면 사랑의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아울러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우리 또한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기회를 준다. 이것이 교회가 지닌 가장 깊은 가치이다.
-조지 바나·데이비드 키네먼의 [처치리스]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교회는 하나님 사랑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로만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만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에, 더 깊이 세상으로 들어가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라 하신 곳이 선한 곳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반드시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은 교회중심적인 삶을 살지만 세상을 향하여 열려 있는 선교자적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 손을 펴서 세상을 향하여 내밀어 보십시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36: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They feast on the abundance of your house; you give them drink from your river of delight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라 (고린도전서 4장 1-6절)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묵상글]
만약에 우리가 중요한 일을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면, 어떤 사람을 찾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중요한 일을 맡기실 때, ‘충성된 사람’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일을 맡겼을 때, 충성되게 일할 사람을 찾게 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군대가 떠오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를 보면, 그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늘 본문과 함께 여기에 사용된 ‘충성’이란 단어는 바로 ‘피스티스’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서는 ‘충성’을 ‘신실함’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흔히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절에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의 의미는 ‘이제 주님의 그 비밀을 맡은 사람은 그 믿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충성이라는 단어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충성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믿음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우리를 뽑아주셨고, 우리는 그 것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6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삶속에서 믿음을 삶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본이 된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Model'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군가 따라갈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가족들에게 믿음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는 Model이 되고 있습니까? 당신은 교회에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Model이 되고 있습니까?

[적용]
오늘 내가 신앙의 Model이 되어야 할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믿음을 삶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단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말한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애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오늘,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내가 바꿔야 할 모습을 체크해 보면 어떨까요?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내어드림의 과정.


내어드림의 열쇠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잔느 귀용은 말한다. “고난의 형태로 무언가가 당신을 찾아오면, 그 즉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고 그 일을 받아들여라.” 때때로 이 받아들임은 지독한 싸움 후에야 올 것이다. 그렇더라도 당신의 그 경험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힘을 내기 바란다. “당신은 연약함 중에 십자가를 질 때도 있고 강건함 중에 십자가를 질 때도 있다. 그러나 연약함에서든, 강건함에서든 십자가를 져라!” 나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조용히 맡길 때도 있고, 아주 억울하게, 그것도 그분과의 격론 끝에야 맡길 때도 있다. 받아들임의 지점에 이르는 경위는 다를 수 있으나 받아들임에 이르는 사실만은 달라서는 안 된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 영성]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살아가는 일은 나 자신을 내어드림이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릴 때 가능합니다. 철저히 깨어짐을 통해 나를 내어드립니다. 그러나 깨어짐은 더 많은 생명을 봅니다. 내어드림은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갑니다.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지 못하는 불안감, 맡기지 못하는 자존심, 버리고 싶은 과거의 수치심 등은 십자가 앞에서 벗어버려야 할 짐입니다. 오늘 혹시 두려움 때문에 용기 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철저히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하나님께 드리는 한 걸음을 떼기 바랍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요한복음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씨 뿌리는 마음으로 -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2005년에 강원도 양양에서 산불이 났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지난 주간에 그곳을 다녀왔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간 황량한 산등성이마다 작은 씨앗을 뿌렸는데 10년이 흐르자 숲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씨앗을 마음에 뿌리고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우리의 삶에 씨를 뿌려야 할까요?
첫째, 성실하게 씨를 뿌려야 합니다. 농부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씨를 뿌리는 성실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숙을 위해 주시는 시련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크나큰 어둠이 드리워져도, 우리의 눈에 눈물이 흘러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갖고 씨를 뿌려야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뿌리는 씨앗은 무엇일까요? 첫째, 그것은 복음의 씨앗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씨앗을 성실하게, 믿음으로 뿌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선을 행하는 씨앗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면 선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냉대와 불합리함이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선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사랑과 물질을 나누며, 나눔의 씨앗을 뿌려야합니다. 마지막은 기도의 씨앗입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의 씨앗을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으십니까?

<적용>
-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 인생은 믿음과의 싸움입니다. 나의 믿음을 어떠한지 진단해 봅시다.
- 신앙인으로 기도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대해 순종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사 염려와 걱정보다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살기 원합니다. 말씀 붙들고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겨자씨


씨앗 속에는 무한한 미래가 담겨져 있다. 씨앗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다. 그렇지만 씨앗 속에 분명한 미래가 담겨져 있음을 안다. 영화의 예고편처럼 씨앗은 미래의 예고편과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겨자씨는 작지만 점점 커져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된다. 작은 겨자씨를 심으면서 나무를 보고, 나무에 깃들인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작은 겨자씨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강준민의 [깊은 묵상으로의 초대]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해 누룩이 되길 바라며 겨자씨를 심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씨앗은 너무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어놓은 겨자씨는 믿음으로 볼 때 미래의 열매를 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the LORD delights in those who fear him, who put their hope in his unfailing lov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인생의 법칙 - 역대하 20:20-23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됩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해는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뜹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유다 나라의 여호사밧 왕과 그의 백성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생의 법칙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첫 번째 법칙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연합군과의 전쟁이라는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전쟁을 마주하면서 여호사밧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였으며 기도하였습니다(12).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명했습니다. 위험을 기회로 만들어 줄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인도 위기 앞에서 인간적인 방법들을 찾아 헤매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 법칙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받은 말씀을 그대로 행하여 순종하였습니다(18).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무모해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확신이 주어졌다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 법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순종하며 그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찬송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요? 여호사밧의 군대가 감사함으로 찬송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십시다(22).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찬양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그 위험을 기회로 바꾸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적용>
- 위기의 순간에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경험이 있는지요? 이제 새롭게 결단합시다.
- 나의 삶에 감사와 찬양의 분량이 부족하지 않나요? 그 원인을 점검해 봅시다.
- 나에게 위기를 주시는 이유를 생각하며 말씀앞에 순종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사 염려와 걱정보다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살기 원합니다. 말씀 붙들고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감사는 감사를.


일단 쉬운 것들부터 감사하고 나면,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과거의 힘들었던 일들을 인해 감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머잖아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해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어려운 일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 영성] 중에서-

감사는 철저히 영성 훈련입니다. 그렇기에 감사는 우리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은혜가 있을 때 지속적으로, 끝까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손길이 내 삶에 어느 순간에든지 함께 함을 아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을 발견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바퀴 - 겔 1:15-28
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16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17.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19.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20.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21.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앉고>(15절).
확실히 에스겔 1장의 여러 묘사들은 기이하고 난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를 즐겨 외계인이나 UFO와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하는데 다 엉뚱한 발상입니다. 물론 누구도 이런 환상적인 영적 실체를 명쾌하게 풀기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최대한 올바르게 탐색하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아름다운 구도 행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바퀴 안에 바퀴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16절).
<네 생물>이 언제나 동역 안에서 하나의 실체로 움직이는 주님의 몸을 가리킨다면 <네 날개>(11절)는 동역하며 함께 사역하도록 신성한 능력을 공급하는 주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숯불과 횃불>(13절)은 생물들이 서로 동역하도록 뜨거운 동력을 제공하고 <바퀴 틀 안에 눈이 가득함>(18절)이란 주님의 사역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면 신성한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뜻합니다(엡 1:17). 또한 <바퀴>(wheel)란 하나님의 경륜을, <바퀴 축>(hub)이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바퀴 테>(rim)란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를, <바퀴살들>(spoke)이란 그리스도의 많은 지체들인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퀴 안에 바퀴>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들은 서로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긴밀히 동역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각 지체가 저마다 따로 놀지 않고 한 몸 안에서 피차 유기적인 연대와 고유한 사역을 통해 더불어 동역하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게 존재하고 또 그렇게 사역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바퀴의 가르침을 통해 제대로 배워야겠습니다.

궁창 위의 보좌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26절).
<궁창 위의 보좌>란 곧 하늘 위의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킵니다. <궁창 위의 보좌의 형상>도 하나님의 형상을 뜻합니다. <궁창 위의 음성>(25절) 역시도 하나님의 음성을 가리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궁창 위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아주 위엄있게,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의가 불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망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27-28절). 사도 요한도 주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3-16).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궁창 위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계 4:8)며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영원히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앞에 엎드려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옳을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감사


감사는 영혼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원망과 부정적 사고라는 영적 퇴행성 질환을 물리치라고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신다. 나는 감사를 하나님의 ‘영적 방향제’로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원망의 퀴퀴한 냄새를 영혼이 호흡할 수 있는 깨끗하고 상큼한 공기로 바꾸어준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 영성] 중에서-

감사는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감사는 나의 영혼을 살리는 윤활류 입니다. 감사가 내 인생을 덮으면 아름다운 인생을 바라봅니다. 감사가 있을 때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있을 때 즐거움을 뒤로 하고 축복의 길을 갑니다. 감사가 내 발걸음을 움직이면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아집니다. 감사로 인생을 마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지금 연습이 필요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I am the bread of lif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네 생물 - 겔 1:4-14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유다인 포로들이 하루하루를 체념과 절망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신분이었던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사 포로된 유다 백성들에게 환상을 통해 위로와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언의 내용이 마치 3차원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어느 날 하늘이 열리면서 북쪽으로부터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내려오고 불이 번쩍거리고 벌겋게 단 쇠 같은 것도 보였습니다.

네 생물의 얼굴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10절).
에스겔 선지자가 본 이 네 생물은 제각기 앞쪽은 사람, 오른쪽은 사자, 왼쪽은 황소, 뒤쪽은 독수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이는 신약 요한계시록 4:7에도 나오는데, 사람의 얼굴은 주님의 인성을, 사자의 얼굴은 죄와 세상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승리를, 소의 얼굴은 섬기시고 헌신하시고 희생하시는 주님의 덕성을, 하늘 높이 나르는 독수리의 얼굴은 주님의 초월적인 정체성을 계시하는 그림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약의 네 권의 복음서와도 일치합니다. 그 특성상 누가복음은 별명이 사람의 복음,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 마가복음은 소 복음,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으로 분류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다 주님의 품성과 덕성처럼 네 생물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즉 가장 순수한 인간성과 사탄에게도 굴하지 않는 용맹스런 사자의 모습과 희생하고 헌신하는 소의 모습, 그리고 독수리와도 같이 초월적인 비상을 꿈꾸는 신령한 모습의 그리스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생물의 움직임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12절)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에스겔 1장의 네 생물을 UFO와 외계인으로 해석하며 실제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억지스런 해석입니다. 네 얼굴을 가진 네 생물은 동역 안에서 실재하시는 주님의 다양한 사역을 상징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네 얼굴로 구성된 이 생물은 하나님의 움직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존재합니다. 네 생물에는 리더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인도자시고 대장이십니다. 그들은 움직일 때마다 몸을 돌리지 않고 앞으로만 곧게 나아갑니다. 움직이는 속도도 몹시 빨라 번개처럼 달립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이 가고자 하는 데로만 갑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큽니다. 오늘 우리는 이 네 생물의 움직임에서 주를 위한 사역의 참된 동역의 원리를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