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우리는 우리 삶으로 말씀을 보여줘야 합니다./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5. 8. 7. 07:38



교회공동체의 참된 삶


우리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시는 곳에 집을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을 말씀과 행동으로 선포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의 진수를 원래 의도된 대로 모든 풍성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번잡함과 기쁨 가운데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의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중에서-

말씀은 읽고 들려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삶으로 보여주는 말씀도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삶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내는 일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철저히 말씀 속에 살아내는 삶이 없으면 입술로 고백할 선포도 없습니다. 점점 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심판과 회복 - 겔 1:1-3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본서는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두 번째인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과 또 다른 많은 백성들과 함께 잡혀갔는데 포로된 지 5년째인 주전 593년에 선지자로 부름받아(2절) 주전 571년까지(29:17) 22년간 포로생활 중인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했습니다. 내용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미래에 있을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발 강가에서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3절).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유다 땅에 살면서 다가올 멸망을 예고했다면 에스겔은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예언자였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사역의 목표는 종살이하는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에 대한 허황된 기대를 깨뜨리면서 동시에 예루살렘의 멸망이 곧 유다의 멸망과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살 되던 해인 4월 5일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와 임재를 경험합니다. 유다 땅이 아닌 포로지 갈대아 땅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유다를 포로로 삼았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은 여전하며 비록 백성들은 적에게 잡혀갔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포로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1-24장은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25-32장은 열방에 닥칠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33-48장에는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성전의 회복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땅에 풍성함이 넘쳐나는 그림으로 묘사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에스겔서 메시지의 특징은 성역과 일상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에스겔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 거룩함을 지키는 것과 이웃을 학대하지 않는 것,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이 모두 공평과 정의라는 제목하에서 포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서가 거룩이라는 개념을 제의적 차원과 사회윤리적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행실로 말미암아 그 땅이 더럽혀졌다고 언급한 것(36:17)이나 공평한 저울에 대해 언급한 것(45:10) 등은 에스겔서가 제사에 대한 관심과 일상적인 윤리를 서로 분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언제나 일상과 제사가 이원적으로 분리된 데서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할 때 반드시 일상의 삶이 무너졌듯이 일상적인 삶의 붕괴는 곧 그들의 우상숭배를 뜻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뜻의 <여호와 삼마>(48:35)로 끝나는데 놀랍게도 이 표현이 가리키는 <거기>도 성전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인 <성읍>을 뜻했습니다. 여호와는 성읍, 일상적인 땅에 거하십니다. 즉 일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임재의 공간이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 되게 하는 게 바로 에스겔이 전하는 예루살렘 회복의 진정한 비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려기보다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게 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