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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도록, 직접 배우도록
예수를 알려면 스스로 밤을 새우기를 수 도 없이 해야 하거늘, 스스로 생명을 찾고자 생명을 구하고자 하여 두드리기를 수 도 없이 해야 하거늘, 그리고 알았다면 진실로 사랑한다면 자기가 아는 것을 수 도 없이 밤을 새우며 전해야 하거늘, 죽은 영들에게 생명을 심어주는 일을 가장 부지런히 해야 하거늘, 코미디같이 하는 설교, 기적이나 신비를 추켜세우는 설교, 신학이나 철학적 요소로 유식한 것처럼 하는 설교, 그저 사람의 비위나 맞춰주는 설교, 이런 것들은 영을 살리지 못한다.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도록 부지런히 인도해야한다. 생명을 살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고마운 세월(id)의 ‘아! 설교’에서-
진실로 예수님을 알고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성도들에게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도록 인도해야합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예수이름을 부르고 직접 예수님께 기도하도록. 설교자는 제대로 가르쳐 깨닫게 해주는 스승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십시오. 죽어가는 영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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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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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6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if they fall away, to be brought back to repentance, becauseto their loss they are crucifying the Son of God all over again and subjecting him to public disgrac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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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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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순금 - 애 4:1-10 |
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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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도하는 내용입니다. 너무도 서글프고 처참하게 변해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전에는 금, 아니 순금처럼 부유하고 찬란했던 도성, 하나님의 영광이자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었던 거룩한 성이 이제는 빛을 잃고 변질되어 완전히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1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광야의 타조 같도다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3절). 아기에게 젖을 줘야 할 엄마가 먹은 것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알을 그냥 땅에 내버려두는 광야의 타조처럼 잔인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타조는 알을 땅에 버려두어 ...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욥 39:14-15). 잔혹한 들개도 제 새끼에게는 젖을 물리는데 유다는 당시 그렇게 할 사정이 아니었으므로 그야말로 들개만도 못한 처지였다는 것입니다. 결코 변해서는 안 될 순금이 그 순수한 성질과 빛을 잃어버렸을 때 당해야 했던 수모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날마다 호사스런 성찬을 즐기던 지체 높은 사람들이(5절) 하루 아침에 극빈자가 되어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탕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을 바라 본 선지자의 심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6절). 예루살렘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무너졌기 때문에 갑자기 무너진 소돔의 멸망보다 더 혹독하고 고통이 컸습니다. 소돔은 한 차례 유황불로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또 소돔의 멸망에는 사람의 손이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예루살렘은 여러 달에 걸쳐 극심한 고문을 당하며 온갖 고통과 비참함을 다 겪으며 서서히 죽어갔고 또 자신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죄악이 과거 소돔의 죄악보다 더 크고 무거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게 굳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소돔은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었던 은혜의 수단들,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 성전, 선지자 등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단죄는 당연히 그보다 더 엄중해야 했습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 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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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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