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이요셉 소장의 "웃음으로 극복한 우울증" 외 4

鶴山 徐 仁 2015. 7. 12. 13:29
웃음으로 극복한 우울증
이요셉

오늘도 좋은 일이 틀림없이 일어납니다.
웃으면 복이 오기 되고요. 정말 웃으면 삶속에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삶을 통해서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퀴즈를 하나 내볼게요. 한번 맞춰보시겠습니까?
“장미에 가시가 있을까요? 가시에 장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장미에 가시가 있지. 아니지. 가시에 장미가 있지.”

참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가시가 없는 장미가 없고 장미가 없는 가시는 없다는 것이에요.
둘 다 항상 공존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어떤 경향이 있냐하면 안 좋았던 것을 계속 떠올리는 것이에요.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계속해서 반복한데요.
그것이 삶을 크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작게 협착해서 보는 그런 것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한 마음이 들거나 우울증을 앓게 되면 웃음이 없어진데요.

일본에 아주 유명한 우울증 연구하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심리학자였어요.
의사이면서 심리학자인데, 우울증을 연구하다가 자기가 우울증을 걸려야겠다는 것이에요.
이 사람이 우울증을 걸리는 방법으로 한숨을 1000번을 쉬었데요. “아이고! 아이고!”
두 달 만에 우울증에 걸려버리더래요.
다시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루에 1000번을 웃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이 사람도 웃음을 회복하지요. 웃음을 통해서 우울증을 회복하는데요.

어떤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이 분이 신앙이 있는 크리스천이었는데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너무 어려웠데요. 밖에 나가기도 싫고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너무너무 싫은 것이에요.
이 분이 그 안에서 웃음을 찾기 시작합니다. 웃음은 빛 같아서 그런 감정들이 멀리 도망가기 시작해요.
정말 3일 동안 웃고 난 다음에 정말 결심해요.
나 여태까지 너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웃지 못했던 것이,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억울하더라는 것이죠.
이 분이 집에 오자마자 웃기 시작합니다. 문 걸어 잠그고 웃는 것입니다. “하하하하”
이 웃음이 얼마나 컸던지, 100m밖에서 그 소리가 들리더래요. 사람들이 그러더래요. “저 아줌마가 미쳤나봐.”

그런데 이 분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었던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얼굴이 밝아지니깐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큰 집에 살다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거든요.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위 사람들이 얼굴이 밝아지니깐 이렇게 말하더래요. “아줌마, 집터가 좋은 가봐.” 집터가 좋대요.
교회 갔더니 “은혜 받았나봐.”
시댁에서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얼마나 남편이 잘해주면 그렇겠느냐?”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더래요. “저것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면 저렇게 되겠느냐?”
그래도 웃었더니 너무 즐겁다는 것이죠.

여러분 웃음이라는 것은 삶속에서의 어떤 우울, 스트레스도 몰아내주는 것이 탁월한 방법이 웃음의 위력입니다.
기쁨이라는 말은 기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기쁨이라는 단어를 쓴데요. 즐거움이라는 것은 내 삶속에서 물 흐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죠.
그것을 웃음이라는 것이 외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닌 가장 가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면, 내가 즐거워지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멋진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간에 한번 어깨를 펴고 이렇게 말을 해보는 것은 어떠할까요?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해.”
그리고 이렇게 웃어보는 것입니다. “하하 하하하”
그 분이 이야기했던 우리 집터가 좋았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본 것처럼 그 삶이 여러분 삶속에 틀림없이 나올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을 아십니까?
이병준

오늘은 결혼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달 저는 주례를 선 적이 있습니다. 이 젊은 나이에 주례를 선다는 것이 아주 어색하지요.
오신 하객들이 ’이렇게 젊은 사람이 주례를 하고 있냐’하고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주례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죠.
"혹시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정식 면허증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오늘 결혼하는 이 신혼부부는 저한테 정식 면허증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고요.

이 부부는 결혼하기 전 6주 동안 저에게 코칭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목적, 성격 분석, 부부 사랑법, 대화하는 방법, 부부의 성, 또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이런 것들을 배웠던 것이죠.
첫 강의할 때 "결혼의 목적에 대해서 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주 당혹한 표정을 짓던 신랑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요, 이 부분은 결혼한 부부들에게도 똑같은 당혹스러움을 줍니다.
넷향기 가족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결혼의 목적, 알고 계시나요?
 
결혼 예비학교에 가서 결혼의 목적에 대해서 물으면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을 하지요. 맞습니다. 행복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누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나’일까요? 아니면 ’배우자’일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하지요. 결혼하고 나면 나의 배우자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혼에 대한 신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신화 또는 환상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핑크빛 사랑, 낭만적 사랑, 환상적 사랑, 찰떡궁합 이런 것들은 5월에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혼이 있을까요?
완벽한 결혼을 꿈꾸다가 완전히 벽이 되는 결혼이 되는 그런 가슴 아픈 사실.
그것은 결혼에 대한 목적부터가 잘못됐다는 거지요.
사람들은 부부가 어떻게 만나는지, 남녀가 어떻게 매력을 느끼고 만나는지 그런 데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래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요.
등이 달라붙은 여자와 여자, 들이 달라붙은 남자와 남자, 등이 달라붙은 여자와 남자입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신들이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연히 행동이 건방지고, 신의 영역까지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니까 신들이 모여서 비상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쟤네들 어떻게 할까? 쟤네들이 능력 발휘를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절반으로 나누는 거다"라고 해서 결국 붙은 두 사람을 반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반으로 나누어진 남자와 여자는 본능적으로 서로가 자기 짝을 찾아서 움직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 바뀌어서 남녀칠세지남철이라고 표현을 하지요.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옛날부터 지금까지 신비로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이마고 부부치료(IMAGO치료, Imago Couple Relationship Therapy) 에서는 다르게 이야기 하지요.
어린 시절의 동일한 상처를 받은 사람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이론을 만들었던 하빌 핸드릭스((harville handrix)는 이런 표현을 하지요.
우리는 결혼을 하나의 상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를 딱 고른 다음에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상자가 마음에 들면 그 안에서 머물게 되는 거고요, 만약 그 상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자 밖으로 나와서 바깥쪽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다른 짝을 찾는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이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혼이 행복하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좋은 배우자를 만났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했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지요.
결국 자신의 불행이 배우자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새로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거 감이 잡히시지요?

결혼의 목적이란 나에게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황금률의 세계지요.
즉 상대방이 외롭지 않도록, 상대방이 나를 통해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것 때문에 결혼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 배우자를 사용하게 되면 필요충분조건이 되겠지요.
그러나 배우자를 위해서 내가 헌신하거나 봉사하게 될 때에 그것은 없어지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는 데도 모자라지 않고, 주면 그 사람이 받아서 행복하고, 나는 줌으로써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윈윈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결혼의 목적이란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거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랑을 통해서 내 사랑이 완성되는 거고, 더 큰 행복을 경험하는 그런 과정이란 뜻입니다.

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이란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 그걸 기억하시면 아마 불행 끝 행복시작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
박상희

저는 상담사를 하면서 많은 후배나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상담은 가르치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처럼 강의를 할 때는 강사가 되기도 하지만, 보통 때는 내담자를 가르치기보다 함께 여행을 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적절한 분석과 해석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많은 상담사 지망생들이 훈련되지 않았을 경우에 너무 많이 가르치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많은 분들이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물론 수많은 경우를 보지만 그 중의 한 학생은 특별하리만큼 너무나 가르치려는 욕구 때문에, 상담을 공부하기도 힘들고, 많은 사람이 그 분 옆에 가기를 싫어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 분은 어렸을 때부터 교수가 꿈이었던 분인데요. 너무 똑똑했고, 별명이 똘똘이였을 만큼 박식하고 무엇이든지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했는데, 가정에서도 남편이나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고, 교회에서 모임의 리더가 되었을 때도 가르치려고 했고, 학교의 학생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가르치려고 하니까 동료들과 스승님들은 이 분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갈등이 많았지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러나 다행히 상담을 공부하고 싶었던 분이기 때문에,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 끝에 ‘내가 이렇게 과도하게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참견하고, 알려주고 싶고, 침범하고 싶은 것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유일한 꿈이었던 교수에 대한 좌절 때문에 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시간에 계속해서, 적어도 상담사라면, 아니 상담사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도, 누군가와 아주 건강하고 성숙하고, 성장이 일어나는 관계를 맺으려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내 세계가 아닌 상대방의 세계에 귀를 기울여주는 연습에 대해서 많이 훈련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그 연습을 경청이라고 이야기하지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내 잣대가 아닌, 내 상처가 아닌, 내 욕구가 아닌, 온전히 상대방의 욕구, 상대방의 바램,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분은 경청의 연습을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고, 참견하고 싶은 욕심과 열망이 일어날 때, ‘이것은 저 사람의 세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루지 못한 꿈, 그 좌절 때문에 내가 또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을 자동적으로 깨닫는 훈련을 통해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을 때마다 조금은 절제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고, 조금씩 온전히 여유를 갖고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서 훈련을 하였습니다.

이 분은 가르치려는 열망이 대단하다보니까 막상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에는 정말 잘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르쳐야할 곳에서는 내가 가진 달란트를 쏟고, 그렇지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해야할 때에는 온전히 경청해서 그 사람의 세계에 맞춰주는 연습을 함으로써 훌륭한 상담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내 좌절된 꿈 때문에 내 행동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의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이 연예인일수도 있고, 정치가일수도 있고, 선생님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원했던 꿈을 못 이룬 좌절 때문에 인간관계를 망치지 마시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그러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작은 무대들부터 만들어보셔서, 그 무대에서는 마음껏 일하시고 자기를 펼치실 수 있는 그런 행복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삶을 살것인가? 간(肝)전문의 이승규
공병호

여러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부지게 살 것인지 아니면 대충 대충 살 것인지, 누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알아서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언제가 저는 세계적인 간이식 전문가로서 우뚝 선 아산병원의 이승규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대단하구나. 이런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인터뷰 내용을 간단하게 여러분께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분 말씀 가운데 ‘오늘날 대부분의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는 40살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 이후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소일 하면서 인생을 보내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처럼 외과의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의사건 간호사건 간에 그 분야에 대해서 굉장히 매력과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몰입해 가는 속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 자신도 40살이 은퇴가 아니고 70까지, 은퇴하는 시점까지 칼을 계속해서 잡겠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는 머리가 희게 될 정도까지 외과의사로서 명성을 날리는 분이 많지만 한국은 대부분 50살 정도가 되면은 직접 수술하는 것은 손을 놓는 부분이 대단히 안좋은 습관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적하셨습니다.

70까지 칼잡이로서 자기 자신의 생을 걸겠다. 이것은 직업에 대한 대단한 확신을 드러내는 이야기죠.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은 직업에 대한 확신일 뿐만 아니고 직업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사례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정말 간과 관련된 그런 수술은 상당히 고난도 기술이라고 합니다.
신장 이식 수술은 2시간 반에서 3시간, 심장 수술은 5시간 간 이식 수술은 아주 어려운 경우는 12시간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오전 8시 30분이나 9시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집도를 하는 대단히 집중력을 요하고 대단히 어려운 그런 수술을 지난 2008년만 하더라도 326회 2007년에는 320회까지 수술을 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향해서 달려가는 이승규 선생님과 같은 경우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 분 말씀은 ‘본인이 무난하게 자신이 졸업했던 서울대 의대에서 의사직업뿐만 아니고 교수직을 손쉽게 가질 수 있었다고 하면은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의 분야에 파고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은 은사를 따라서 고려대 의대에 몸을 담게 됐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영영 서울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렵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본이 앞에 펼쳐 졌을때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실력으로서 승부를 걸어야겠다. 그럼 그 실력은 한국 제일 정도가 아니고 세계 제일에 자기의 목숨을 걸어야겠다.’ 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인터뷰 내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은 늘 부족함을 느낄 때만이 ‘전부’를 거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분이 무난하게 모교의 교수로서 자리를 얻게 됐다면 아마도 안주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틈틈이 젊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인생이란 열등감을 극복해 가는 일련의 여행길이고 과정길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 갈 것인지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유형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부지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충 대충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