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고비와 장애물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외 4

鶴山 徐 仁 2015. 6. 24. 16:26


더 좋은 것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생의 모든 고비와 장애물들을 돌이켜보라. 실수의 내리막과 극복의 오르막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종이접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접히면 접힐수록, 주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멋진 형태로 변모하는 게 우리 인생이니까.
-밥 고프의 [사랑으로 변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고비와 장애물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시온의 대로와 같이 넓은 길로 간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일지라도 믿음으로 고비와 장애물을 넘어섰습니다. 결국 그들의 인생의 고비와 장애물의 흔적들이 영광의 면류관이 된 것입니다. 고난의 과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진정한 위로자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지금 내가 겪는 고비와 장애물 때문에 간증도, 선교의 도구로도 쓰임받게 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디모데전서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 창세기 18장 9-15절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런데 장막 뒤에 있던 사라가 그 말을 듣게 됩니다. 12절을 보니까,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1절에 성경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고 설명합니다. 여자의 생리가 끝났다는 것은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0세의 사라가 자식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때, 속으로 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람의 심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의 그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소원대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서 대박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불가능한 일을 일으키시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기적은 우리의 주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면, 기적을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도구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만군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적은 내가 원하는 시점이 아니라, 누구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시간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의 순간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불가능한 일이 달려 있기 때문이며, 그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십니까? 하나님께 나가십시오!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우리의 비웃음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격려의 공동체를 이루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실 때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구원하시되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구원하신다. 따라서 믿음의 형제자매가 서로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떠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하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다른 성도들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몸을 무시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며, 그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튤리안 차비진의 [더 크리스천] 중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삶이 참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이 다름을 인정하지만 개개인의 구성원은 자신의 방식이 아닌 함께라고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오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손님처럼 다니면 온전한 하나됨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 지체입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늘 기억하며 서로 격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 서로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열려 있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Put to death, therefore, whatever belongs to your earthly natu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evil desires and greed, which is idolatry.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개인적 종말과 사후세계 - 누가 16:19-28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기독교의 종말론은 성경이 계시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속합니다.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지구 역시 하나의 행성이기에 다른 별처럼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각종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이 횡횡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종말에 대한 바른 성경적 신앙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크게 두 부분, 곧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로 나눕니다. 개인적 종말이란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한 것이고, 우주적 종말은 대 우주의 파국과 새 하늘, 새 땅에 관한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후에 각기 다른 세계로 인도됩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음부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22-23). 왜 두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명확한 언질을 주고 있지만, 성경 전체의 진리를 보자면 나사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었고, 부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죽음 후의 세계, 곧 사후세계를 명시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에는 믿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는 것이며, 천국과 지옥은 왕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26).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현 세계로 오고 갈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은 오로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교와 문화에 사후세계에 대한 기억이 존재합니다. 우리 민족은 이를 저승이라고 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데스’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많은 임사 체험자들, 곧 죽음과 소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죽음 후에 어떤 세계에 다녀왔다고 증언합니다. 물론 우리는 과학이 증명하기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사후세계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성경이 이를 계시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의지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천국은 신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며(고후 5:8), 지옥은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는 곳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계14:1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구체적인 묘사가 부족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크다 보니 자연히 각종 상상력이 동원됩니다. 천국에 가서 기와집을 보고 왔다는 둥 지옥에 갔더니 커다란 뱀이 계속 깨물고 있다는 등......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불교에서 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한에서 믿을 뿐이며 그 이상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자칫 이단을 부르게 됩니다.

[적용]
-만약 당신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요?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천국의 삶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기도]
생명의 주되시는 하나님, 선택하시고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을 주심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더욱 천국의 삶을 경험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이 땅에 사이비 이단들이 극성이오니 진리의 말씀으로 물리쳐 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환경에 기준을 둘 때가 많습니다. 그 결정적인 예가 롯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을 택한 결과 그는 망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상대적으로 버려진 들판 황폐한 땅을 차지하여 텐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그는 영육 간에 풍성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은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환경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인가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복이었나요? 다윗이 계속 고백하는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함께 하시면 나는 부족함 없다는 뜻입니다.
-송태근의 [네가 어디 있느냐] 중에서-

신앙의 열매는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좋아 보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기 나쁘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열매로 우리를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기 나빠도 선한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따라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것에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보기 좋아도 축복이 되지 않고 우리 인생의 지름길을 막는 도구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what counts is a new creation.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말의 능력을 믿으라 - 민수기 14:26-30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리더의 자기관리에서 중요한 것이 언어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생활을 해야 할까요? 성경에 여기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언어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12지파의 정탐꾼 중 유다지파의 갈렙,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 외에 나머지는 이구동성으로 악평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이 거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보고는 과연 객관적일까요?
이에 반해 유다지파의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 갈렙의 눈에 가나안의 백성들은 “네피림의 후손 거인”이 아니라 “우리의 먹이”로 보였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같은 지역, 같은 백성, 같은 땅을 보고 돌아온 같은 신앙과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 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것일까요? 누구의 의견이 객관적일까요? 그 비밀은 민수기 14:4에 있습니다. 회중이 실제로 원하고 있던 것은 가나안으로의 행군이 아니라,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틈만 나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시도합니다. 가나안 정복이 아닌 애굽으로의‘유턴’이 목적인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객관적인 모습이 보일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으로 진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에게는 실상이 보인 것입니다. 이처럼‘내가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목적이 결국 보는 것과 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피해야할 언어생활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남들과 비교하는 언어습관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정탐꾼들은 처음에는 가나안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자신들과 가나안 주민들을 비교하는 말을 한다. ‘저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우리는 저들과 비교해서 메뚜기 같다!’ 원망의 시작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등감과 원망이 싹튼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을, 나의 아내를, 나의 자녀를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원망과 부정적인 언어를 피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죽은 원인은 불평과 원망에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피해야할 언어생활입니다. 대신에 믿음안에서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언어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 것입니다.

[묵상]
- 언어생활을 잘못하게 될 경우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피해야할 언어생활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해 봅시다.
- 앞으로 어떻게 언어를 절제하며 잘 통제하며 살아갈지를 정리하며 다짐하십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고 동행하심을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입술을 잘 지키고 믿음의 눈으로 모든 사건을 바라보게 하시어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성경에 기초한 교회


성경적인 기초가 약하고 교회 권징의 책임자들이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하거나 그릇된 의도를 품고 있는 경우는 교회 권징이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회 권징 자체는 성경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게 성장시켜 주는 열쇠 가운데 하나다. 물론 교회 권징을 잘못 시행하면 교회가 망가지지만, 교회 권징을 소홀히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교회 권징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남들을 짓밟으면 그 교회 안에서는 복음이 힘을 잃고 주변 불신자들에게 복음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 준다.
-대린 패드릭&마크 디바인의 [나의 사랑하는 교회] 중에서-

성경에 기초한 교회는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자기들의 방식을 이루는 도구로서가 아닌 철저한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말씀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는 말씀의 반석위에 세워졌기에 그렇습니다.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지 않기에 더욱 책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초한 교회는 질서가 있고 성령의 운행하심이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요한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이른 타작 마당 - 렘 51:33-44
3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3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35. 내가 받은 폭행과 내 육체에 대한 학대가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시온 주민이 말할 것이요 내 피 흘린 죄가 갈대아 주민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예루살렘이 말하리라
3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
37.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어서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과 탄식 거리가 되고 주민이 없으리라
38. 그들이 다 젊은 사자 같이 소리지르며 새끼 사자 같이 으르렁거리며
39.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이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0.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때가 이른 타작 마당>(33절)이란 타작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마당 밟는 일을 하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며 이는 곧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타작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빗대어 표현한 말입니다.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33절).

그의 샘을 말리리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36절).
바벨론은 많은 물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바벨론은 무엇보다도 물이 풍성하여 땅이 비옥했고 따라서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환경이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의 보복을 당하지 않아야 행복이 보장됩니다. 하나님이 물이 넉넉했던 바벨론에서 샘을 말리시면 그 땅, 그 나라의 운명은 이제 시간 문제입니다. 샘이 마른 땅에서 누가 버티며 어떤 식으로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산 당시 바벨론이 최악의 환경과 자연 조건에 처해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의 송사를 들으셨다고도 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다>(34절)고 합니다. <내가 받은 폭행과 내 육체에 대한 학대가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35절)며 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복을 다짐하시며 바벨론의 바다와 샘을 말리시겠다고 호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뿐 아니라 이렇게 탄원과 송사도 들으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응답하사 보복을 약속하십니다.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리라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이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9절).
바벨론의 최후를 정확히 예언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연회를 베푸사 그들을 취하게 하시고 기뻐 소리 지르게 하신 후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저 쓴 잔을 마시며 마음껏 흥겨워하라. 그러나 그 잔을 마신 자들은 잠에 떨어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57절). 실제 그들이 한창 술에 취해 떠들며 흥청거리던 바로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개인은 물론 한 나라나 민족 공동체의 운명도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합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닙니다. 왕의 탁월한 지도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그들에게 당한 자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어떻게 복수하실 것인지를 결정하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개인과 민족의 운명과 최후를 결정하십니다. 보십시오.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40절).
<...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41절).
<...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44절).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성경을 먹어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는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데까지 자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기초 동력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성경의 기치를 높이 들고 주님이 가라시는 곳에 가고, 하라시는 일을 하는, 마음껏 순종하는 우리가 됩시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머리와 삶이 하나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송태근의 [네가 어디 있느냐] 중에서-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또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구비되어 살아가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며 따라갑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방향이 없어 길을 잃어버린 삶입니다.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는 주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함으로 우리는 마지막까지 믿음의 경주를 온전히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이 늘 기억나는 삶을 살아 끝까지 열매되도록 간직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멸망의 산 - 렘 51:20-32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의 철퇴 곧 무기라 나는 네가 나라들을 분쇄하며 네가 국가들을 멸하며
21. 네가 말과 기마병을 분쇄하며 네가 병거와 병거대를 부수며
22. 네가 남자와 여자를 분쇄하며 네가 노년과 유년을 분쇄하며 네가 청년과 처녀를 분쇄하며
23. 네가 목자와 그 양 떼를 분쇄하며 네가 농부와 그 멍엣소를 분쇄하며 네가 도백과 태수들을 분쇄하도록 하리로다
24.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26.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잇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원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7. 땅에 깃발을 세우며 나라들 가운데에 나팔을 불어서 나라들을 동원시켜 그를 치며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나라를 불러 모아 그를 치며 사무관을 세우고 그를 치되 극성스런 메뚜기 같이 그 말들을 몰아오게 하라
28. 뭇 백성 곧 메대 사람의 왕들과 그 도백들과 그 모든 태수와 그 관할하는 모든 땅을 준비시켜 그를 치게 하라
29. 땅이 진동하며 소용돌이치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할 계획이 섰음이라
30.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그치고 그들의 요새에 머무르나 기력이 쇠하여 여인 같이 되며 그들의 거처는 불타고 그 문빗장은 부러졌으며
31. 보발꾼은 보발꾼을 맞으려고 달리며 전령은 전령을 맞으려고 달려가 바벨론의 왕에게 전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으며
32.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갈대밭이 불탔으며 군사들이 겁에 질렸더이다 하리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25절).
<멸망의 산>, <불 탄 산>은 다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벽의 높이며 나라의 규모가 마치 산처럼 거대했기 때문에 산이라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태산 같던 나라를 하나님이 원수라고 부르시며 바위에서 굴리시고 불태워 잿더미가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크고 나무가 울창한 산이라 해도 바위에서 굴리거나 불태워 버리면 그 나라의 운명은 곧 재로 화해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원수된 바벨론을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시온에서 행한대로 갚으리라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4절).
행한 대로 갚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창조의 질서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하나님은 바벨론이 시온에서 범한 모든 행위를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게 비록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교만하여 기고만장했던 바벨론의 그 죄악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는 별개로 반드시 되갚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날마다 뭔가를 뿌리는 행위고 또 날마다 그 뿌린 것들을 거두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과거 거대한 산 같던 바벨론이 이제 시온에서 뿌린 악을 거두며 바위에서 굴러 가루가 되고 모조리 불타 잿더미가 된 허무한 역사를 기억하십시오. 하루하루 선한 씨앗을 뿌리고, 축복의 나무를 심으십시오.

군사들이 겁에 질리리라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갈대밭이 불탔으며 군사들이 겁에 질렸더이다 하리라>(32절).
하천을 주요 교통로로 삼았던 바벨론에게 있어 <나루를 빼앗긴다>는 것은 그 나라에 곧 멸망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갈대밭이 불탔다>는 것도 복병들이 잠복하는데 필수인 은폐물이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으로 바벨론의 군사들이 적에게 완전히 노출된 채로 공격을 받아 섬멸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발꾼과 전령만 바쁘게 됐습니다. <보발꾼은 보발꾼을 맞으려고 달리며 전령은 전령을 맞으려고 달려가 바벨론의 왕에게 전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으며>(31절). <보발꾼>이란 긴급한 공문서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군대의 전령과도 같은데 모든 성읍이 숨가쁘게 함락되므로 연일 그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기에 바쁘다는 뜻입니다. 군사들이 겁에 질려 무기를 버리고 적에게 투항하거나 달아나면 더 이상 그 전쟁은 대책이 없습니다. 이렇게 전령들이 급하게 달려와 패전 소식을 전한 후 얼마있지 않아 적군이 왕궁까지 침투하여 결국 바벨론 왕을 죽였습니다(단 5:30). 그런데 바벨론 성이 함락되던 바로 그 날 왕궁에서는 흥청망청 흥겨운 주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하신 말씀을 새겨 들읍시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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