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8 07:51
[격동의 우크라이나 - 이성훈 특파원 르포 5信]
-前대통령의 저택 가보니
인공호수·동물원·골프장까지… 키예프 시민들 방문 줄이어
"대통령 저렇게 부패했으니 나라가 잘 돌아가는 게 이상"
- 우크라이나=이성훈 특파원
지난 6일 비가 내리는 평일 오전인데도 부패한 국가 지도자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육중한 철문을 통과하자, 모두 붉은색 벽돌과 대리석으로 포장된 산책로가 넓은 잔디밭 사이로 뻗어 있었다. 사이사이 대리석 조각들이 서 있어, 유럽의 야외 미술관에 온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키예프 시민 코스티야(28)씨가 "비밀문서가 발견된 곳"이라며 가리킨 곳을 보았다. 작은 폭포와 통나무 쉼터가 있는 인공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야누코비치는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비자금 명세 등을 담은 문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호수에 던져 버렸다.
호수를 끼고 돌자 대리석 기단과 통나무로 된 5층짜리 저택이 보였다. 안에서 귀중품을 분류하느라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됐다.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금 장식품과 보석들이 쌓여 있었다. 계단 난간도 금박(金箔)으로 치장된 청동, 바닥은 자주색·옥색 등의 화려한 대리석으로 돼 있었다.
그곳에서 10분쯤 걸어 들어가자, 골프장이 보였다. 그 옆의 타조·사슴 등이 있는 동물원, 식당으로 개조된 범선이 있는 요트장으로는 출입이 통제됐다.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숲 사이로도 돌계단이 나 있었다. 내부에도 자동차 도로와 헬기장 등이 있어, 야누코비치 저택의 경계가 도대체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일부 관람객은 자전거를 타며 돌고 있었다. "빨리 둘러봐도 1시간"이라는 택시 기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 우크라이나 시민이 수도 키예프 북부 메지히랴에 있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대저택에서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다. 이 저택은 지난달 야누코비치가 실각해 러시아로 도피한 후 일반에 공개돼 관광지가 됐다. 저택 안은 귀중품 분류 작업을 위해 출입이 통제됐다. /이성훈 특파원
대통령이 축재(蓄財)에 빠진 사이 국가의 금고는 비어갔다. 야누코비치는 취약한 권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연금·임금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2008년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현재 외환 보유액도 100억달러(약 10조6000억원) 남짓에 불과해 파산 직전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