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05 05:30 | 수정 : 2013.11.08 18:41
가난했던 한국, 반세기 만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등장
지난 50년간 세계 GDP는 약 7배 증가했고 한국 GDP는 약 35배 증가했다. 그래서 한국은 가장 가난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나라에서 반세기만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했다.
지난 50년간 세계 GDP는 약 7배 증가했고 한국 GDP는 약 35배 증가했다. 그래서 한국은 가장 가난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나라에서 반세기만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했다.
중상주의시대 이후 「16세기 스페인」이 1940만㎢에 달하는 大식민제국을 건설할 당시(1500~1600년) 세계 GDP가 1.3배 증가하는 동안 스페인은 1.6배 증가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양·상업강국으로(1500~1700년) 세계 GDP가 1.5배 증가하는 동안 5.6배의 GDP 확장이 이루어졌다. 「18~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고 3670만㎢의 영토를 지배하면서(1700~1870년) 세계 GDP가 3.0배 증가하는 사이에 9.4배 증가했다.
「19~20세기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1870~1940년중 세계 GDP가 4.1배 증가하는 동안 9.5배 증가했다. 20세기 1·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화와 수출주도로 경제강국을 이룩한 일본은 1913~1970년에 세계 GDP가 5.0배 증가하는 동안 14.1배 증가했다. 세계적인 고성장으로 거대국가를 건설한 사례와 비교해보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것은 역사가 기억할 작품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15번째 국가로 발돋움했다. 우리 앞에 있는 14개 국가는 「미·중·일 등 G7 국가」 그리고 우리나라 면적의 「170배인 러시아」, 「100배인 캐나다」, 「85배인 브라질」, 「77배인 호주」, 「33배인 인도」, 「20배인 멕시코」, 「5배인 스페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보면 1960년에 79달러에서 70년에 243달러, 77년에 1000달러, 96년에 1만달러, 2007년에 2만달러를 돌파했다.
수출은 70년 8.4억달러, 77년에 100억달러, 95년에 1000억달러를 각각 돌파하고 2012년 5478억달러를 기록하여 세계 7위 수출국가, 9위 무역국가로 등장했다. 1950년대 이후 세계 10대 수출국가로 진입한 국가는 일본(1960년), 중국(2000년), 한국(2009년)의 3개국 뿐이다. 우리 주력수출상품을 보면 DRAM 세계1위(65.3%), 휴대폰 세계1위 (31.1%), 자동차 세계5위 (5.8%), 조선 세계1위(48.1%), 디스플레이 세계1위(53.8%), 철강 세계6위(4.1%)다.
해외건설시장에서도 초대형 프로젝트와 플랜트시장의 강자로 자리 매김하고 세계 최고층 빌딩 중 1,2,5위는 한국건설사가 건설했다.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해서 하계․동계를 막론하고 메달 순위는 5~10위 사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맹위를 떨치는 한류의 지구촌 확산 또한 국력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이러한 국력을 토대로 한국은 80년대 후반 세계무대의 중심에 등장한다. IMF 개도국 졸업, 올림픽 개최('88), GATT개도국 졸업('90), OECD 가입('96), 월드컵 개최(2002), OECD 원조공여국(2009), G20정상회의(2010),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 동계올림픽(2018) 등 숨 가쁘게 달려오고 있다. 물론 우리 현대사에 수많은 주름과 명암이 있었고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민이 이룩한 위업을 덮어버릴 순 없다.
2500년간 유라시아 대륙 제패한 기마민족 DNA 덕택
기적을 이룬 고속성장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우선 경제성장은 인력(L), 기술(T), 자본(K)의 결합이므로 이 요소들이 결정적인 뒷받침을 해왔을 것이다. 먼저 「노동력」이 우수하고 근면한 것은 세계정상의 교육열과 교육투자, OECD 국가 최고의 근로시간 등 수많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기술」은 GDP대비 R&D 투자가 세계 3위, R&D 투자 절대규모 세계 7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부동의 1위, 기술성취도(TAI) 세계 3위, 정보통신기술지수(ICT) 세계 1위 등 그동안 기술입국이라는 기치하에 성공한 나라다. 한편 「자본」은 6․25의 폐허 속에서 내․외자 총동원체제가 가동되면서 총저축률의 급격한 상승, 대외개방을 통한 외자도입 그리고 정부주도 자본조달과 배분이라는 틀을 활용하면서 열악한 자본 환경을 극복했다.
그러나, 기적은 평범한데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L,T,K 3대 요소 외에 다른 나라가 활용하지 못했던 2가지 근본적인 에너지원이 있었다. 그 하나가 「수출지향형 확장경제」, 「신산업에 대한 도전」으로 요약되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경쟁 친화적인 문화」, 「강한 성취동기와 불굴의 의지」로 표현될 수 있는 『한국인의 DNA』다.
특히, 한국인의 DNA는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인은 과거 유라시아 대초원을 무대로 활약하던 기마유목민의 DNA를 가지고 있으며 그 DNA는 엄격한 자연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용감」하고 동시에 「유능」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들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인간유형에서 유래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사」(오늘날의 조선상고사)에서 “여진·선비·몽골·흉노 등의 본래 아(我)의 동족”이라 하여 기마민족국가인 고조선에서 흉노·돌궐이 분파된 것을 갈파한 바 있다.
기마 유목민은 개개인이 강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사회전체가 풍부한 자립심,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가치관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탁월한 지도자의 등장, 집단의 위기 등의 시기에는 강력한 결속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곤 했다. 이 기마 유목민이 주축이 된 기마군단은 혁명적인 전투력을 발휘하면서 약 2500년간 유라시아 스텝지역에서 동·서양에 걸쳐 거대국가를 끊임없이 건설해온 주역이다. 스키타이,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거란, 몽골, 티무르·무굴, 셀주크·오스만 튀르크, 금·청나라 등을 건설한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바로 고대로부터 우리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역사를 재조명 하면서 한민족의 성장 DNA를 탐구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