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이날 간담회는 그동안 언론 접촉을 피했던 문 의원이 다음 달 초 자서전 발간을 앞두고 마련한 자리였다. 문 의원은 “대선 이후 1년이 다가오고 책도 내는 만큼 언론을 피하는 것은 그만둘 때라고 여겼다”며 의중을 솔직히 피력했다.
"안철수 언젠가는 같이 해야”
문 의원은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해선 “신세를 졌던 입장에서 빚도 갚아야 하고 잘되기를 바란다”며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과는 경쟁 관계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함께 힘을 모은 바 있다”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안 의원이 별도 창당해 정치세력화로 경쟁하지만 언젠가 같이해야 한다. (따라서) 우호적 경쟁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 의원은 신당 창당에 따른 민주당의 태도에 대해서도 “민주당도 좀 더 긴장하고 혁신하는 계기가 된다면 당에도 도움이 된다”며 “(안 의원과) 같이 힘을 합치면 야권 전체가 풍부해진다”고 했다.
문 의원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은 데 대해선 “참여정부의 불찰이고 그 부분에 대해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문 의원은 “(대화록이) 미이관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구도 생각 못했다”며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문 의원은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넘긴 대화록을 남북 간 대화용으로 활용하지 않고 지난 대선에 악용한 게 본질”이라며 “이렇게 호도되고 있는 게 유감스럽다”고 여권을 비판했다. 또 새누리당에서 제기하는 ‘사초 실종’ 주장에 대해선 “말이 안 된다. 완성된 회의록과 녹음 파일까지 국정원에 넘겼다”고 반박했다.
문 의원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선 “대선 때의 문제라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털었어야 하는데 점점 문제를 키웠다”며 “박근혜 대통령이나 여당이 미안해하며 진정성 있게 푸는 모습을 보이면 야당과 저도 협조할 텐데 정당한 임무라고 주장하면 야당도 도울 길이 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신부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데 대해서도 “신심을 가진 분들에게 성직자는 절대적”이라며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토론하면 되는데 이를 용납하지 못한다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 이는 국격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문 의원은 김한길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해선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가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당내에선) 절대불가가 아니었던 만큼 (새누리당이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행하지 않아도) 협의가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국회 보이콧에는 “그렇게 당하고서 지도부가 다른 선택을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싸가지 없는 진보 안 되는 거였다”
다음 달 초 출간되는 문 의원의 자서전은 ‘2012년 복기(復棋)와 성찰을 바탕으로 한 2017년 대한민국 희망 보고서’로 요약된다. 김경수 봉하사업본부장은 “너무 이른 출사표라고 할지 모르지만 패배에 대한 보고와 승리에 대한 약속을 먼저 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게 문 의원의 생각”이라고 했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낸 『운명』이 주어진 운명이라면, 이번에는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주도적 선택임을 강조한 것이다.
문 의원은 대선이란 레이스를 뛰었던 ‘선수’로서의 한계에 대해 성찰했다고 한다.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데도 머뭇거리다 4월 총선이 끝난 뒤에야 출마를 결심한 점을 스스로 지적하며 “변호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시안적 규범주의에 갇혀 있었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안철수 의원과의 단일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단일화의 키를 쥔 20~30대와 야권 지지자에게만 집중했고 나머지 중도층과 50대 이상 유권자를 잡는 데 소홀했다는 걸 시인했다. 그는 “대선을 치러보니 태도가 정말 중요하더라. ‘싸가지 없는 진보’는 안 되는 거였다”며 “같은 말을 해도 태도에 따라 국민이 받아들이는 건 천지 차이”라고 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나는 꼼수다’의 증오의 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태도 등 진보의 배려 없는 태도를 반성한 것으로 보인다.
채병건·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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