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법원 진보성향모임 우리법연구회 사실상 와해됐다는데…
입력 : 2013.11.08 16:17
간판급 인물 법원 떠나… 법조 성골 민사판례연구회는 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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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전경.
“요즈음 ‘우리법연구회’는 활동이 거의 없어요.”
‘법원 내 하나회’로 불리며 노무현 정부에서 주요 보직에 진출했던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박시환(朴時煥) 전 대법관,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金宗勳)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연구회를 떠났다. 1988년 5월 김용철(金容喆) 대법원장 연임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법관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우리법연구회는 한때 회원 수가 150명에 달했지만 2010년 60명으로 줄었다. 연구회는 2010년 이후 연구논문집 발간을 중단한 상태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무하는 A판사는 “2009년 우리법연구회 명단이 공개된 이후 (우리법연구회 가입이)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며 “무슨 일을 해도 우리법연구회가 연관이 되면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니 연구회가 위축(萎縮)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우리는 무난한 연구모임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무난하지만은 않았다. 회원들은 논문 등을 통해 대법원장의 권한과 대법원의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이어 왔다. 1988년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의 퇴진으로 이어진 2차 사법파동, 1993년 김덕주(金德柱) 당시 대법원장을 물러나게 만든 3차 사법파동의 중심에 우리법연구회가 있었다.
연구회가 법조계의 논란의 핵으로 등장한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연구회 출신 변호사들이 참여하고 법무부 장관, 대법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연구회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우리법연구회는 법원의 하나회”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정권교체로 잠시 잠잠하던 우리법연구회는 2009년 신영철(申暎澈)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 개입 논란에 불을 지피면서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신 대법관 퇴진(退陣)을 요구하는 글을 연달아 올렸다. 퇴진운동을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여당과 보수단체 등은 “법원 내 하나회로 전락한 우리법연구회는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의 해체 요구에 대해 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보고에서 “우리법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로서 해체하라 말라 요구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이렇듯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우리법연구회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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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 및 우리법연구회 해체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개시 기자회견.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B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다 보니 정치적 색깔이 지나쳤다”며 법조계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스스로 학술단체라고 하지만 정치적 색깔이 분명하다 보니 법원 내 하나회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어요. 회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민사판례연구회와 대비되는 것이죠. 민사판례연구회는 순수학술 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에 대법관의 상당수가 연구회 출신이어도 거부감이 그리 많지 않아요. 과거 박시환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서 시끄러웠던 것과는 많이 다르죠. 사실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똑같은 판결이라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고 하면 주목을 받게 되잖아요. 판사도 그렇지만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죠. 법원에서 우리법연구회를 없애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요. 박시환 전 대법관 등 간판급 인물들이 모두 법원을 떠나면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도 원인입니다.”
사실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한 또 다른 사조직으로 법원 내 성골(聖骨)집단이다”는 비판을 받아 온 민사판례연구회(민판)는 올해 2월 말 출범 36년 만에 회원 수가 207명에 달하는 등 급속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현직 대법관 14명 가운데 5명이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의 경우 연구회에 가입했다가 탈퇴했다.
◆ 법관 성향 변화로 회원 영입 어려워
우리법연구회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이유를 최근 임용되고 있는 판사들의 성향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정부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후반 변호사의 설명이다.
“우리법연구회가 법조계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은 젊은 판사들의 성향과 관련이 있어요. 단순히 연구회 주축 세력이 법원을 떠났기 때문에 연구회가 와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 구성원의 성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죠. 연구회라는 것이 꾸준히 회원이 들어와야 유지가 되는데, 젊은 판사들의 생각은 부장급 판사들과 많이 달라요. 요즈음 임용되는 판사들을 보면 거의가 강남 출신으로 집안 배경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요. 요즈음 대학가에 운동권은 거의 사라졌죠.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신입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에 관심에 가질 리 없죠. 아마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될 거예요. 로스쿨 도입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판사하기 힘들죠. 대출받은 학비를 갚기 위해서라도 로펌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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