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은 시대적인 단어로 취급되며 한국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말로 취급된다.
하지만 체면이라는 상투적인 이미지에는 아직까지도 한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다.
일리노이 대학의 한윤선 박사는 체면이 한국 소비자 문화에 미친 영향을 다룬 논문에서, 사회적
으로 "튀지 않고, 딱 맞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체면을 지킨다는 것은 요구되는
기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한국인들은 단지 신의를 지키고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보다 우월한 모습을 보이며 완벽해져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일종의 '체면 인플레'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한국인, 혹은 그것을 동경하는 한국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서울 시내 백화점들은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을 명품 매장에 할애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고가의 가방과 옷을 구매하는 데 막대한 돈이 뿌려진다.
맥킨지 컨설팅 그룹이 2010년 시행한 명품시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다르다". 당시 세계 경제
가 침체기로 접어들었음에도 한국의 명품 판매량은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16.7퍼센트 증가
했는데, 이는 한국에 전반적으로 퍼진 "명품 친화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을 "따라
가야 한다는 압력" 때문인 것으로 해당 보고서는 분석한다. 2010년, 명품 소비에서 한국을 앞지른
나라는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중국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술자리에서 술을 대접받을 때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수입 위스키인 발렌
타인이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위스키인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비싼 술이니까,
이 상황에서는 바로 그게 중요한 점이다. 발렌타인 30년산이나 조니 워커 블루 라벨을 주문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이며, 당신이 그런 비싼 술을 살 재력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행동
이기도 하다. 주거지 또한 사회적 지위나 가치를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한강 이남의 서초구와
강남구는 서울시에 있는 여타 지역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그 지역에 있는 학교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은 그곳의 아파트를 앞다투어 샀으며, 그 결과 아파트 매매가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지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 살고 있는데, 왜냐하면 거주지 주소가 서초구나 강남구라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
내주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한 아파트가 동작구에서는 13억 3천만 원에 매매되는 데
반해 서초구에서는 24억 5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졸업장은 마치 3백만 원짜리 핸드백이나 서초구에 있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보유하
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소유한 사람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다.
명문대에 진학하면 앞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분 상승까지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학위의 가치가 그토록 특별한 것이다. 교육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의 위신을 드높이는 데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을 하건 너 자신이 행복하다면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자녀
를 기르는 부모는 드물다. 반대로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높은 성적을 받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며,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에 들어가도록 끝없이 종용한다. 전 세계 인구 중 한국인
이 차지하는 비율은 1퍼센트도 안 되지만, 2007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 온 유학생 중 10.7
퍼센트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체면을 세울 수 없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입학한 학교가 가족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완벽해 보이던 결혼생할이 파경을 맞았을 때,
혹은 당신의 회사가 부도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불행하게도, 사건 그 자체의 충격과 체면
을 잃음으로써 받는 수치심이 결합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해 종종 비극적인
결말이 벌어지기도 한다. 매년 수능을 전후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의 인생 전부와 사회적 가치가 바로 그날 하루에 결정되는데, 어떤 학생들은 그 부담감을
이겨낼 수 없어서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학생들만 자살하는 게
아니다. 2013년, 한국의 자살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8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10만 명 중 약 3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문제로 널리 알려진 일본은 24명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 다니엘 튜더 지음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에서 ♣ 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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