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曠野敎會)(1)2013-3-18 |
초대교회 시절 전도설교 한 번하고 돌에 맞아 순교한 전도자가 있다. 스데반 집사이다. 그는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바대로 뜨거운 가슴으로 전도설교를 하고는 성난 청중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그는 비록 그렇게 죽었지만 천사 같은 얼굴로 자신에게 돌 던지는 청중들을 위하여 기도드리며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의 전도설교 내용 중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시나이 사막, 광야를 40년간 유랑하였던 시절을 일컬어 "우리 조상들이 광야교회에 있었다."고 표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한 세월은 무려 430년이다. 드디어 모세의 지도로 종살이를 벗어난 해방공동체를 이루어 홍해바다를 건너 시나이 광야로 나왔다. 그곳에서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가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다. 그 세월을 스데반 집사는 광야교회 시절이었다고 표현 한 것이다. 광야생활의 핵심은 훈련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이 광야생활의 목표였다. 그 기간이 왜 필요하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한 기간은 무려 430년이다. 그렇게 오랜 생활 종살이 하게 되면 "종의 근성(根性)이 몸에 베이게 된다. 그런 근성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새 땅에서 새 역사를 창출하여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러기에 광야에서 40년에 걸친 훈련이 필요하였다. 히브리어로 광야란 말은 미드바르(MIDBAAR)이다. 그런데 이 명사의 동사형은 드바르(DABAAR)이다. DABAAR란 동사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이다. 광야는 즐길 것도, 의지할 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다. 미국의 구약 학자 BRUGGEMAN이 광야를 표현하기를 Nothinglessness라 하였다. "아무것도 없음의 자리"란 의미이다.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듣는 곳이 된다. 그래서 지구상의 3대 종교가 광야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광야 사막 같은 세월을 살아간다. 바로 광야교회 교인들로 살아간다. 의지할 것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하늘로부터 들리는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그 소리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며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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