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10월26일 QT - 용서의 힘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10. 27. 11:22


용서의 힘



당신 곁의 누군가에게 오늘 용서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들을 자유케 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다면, 당신이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풍성하게 공급되는 그 용서의 원천으로부터 길어내어 당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존 윌리엄 스미스의 [포옹] 중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용서입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한 번의 크나큰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은혜 앞에 자신을 세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자가 됩니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망을 얻고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합니다. 용서는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단상[斷想] - 692
수요일밤
핑크빛에
흔들리는
가을밤.
글쓴이 : 김민수 현)백석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현)기독교 대안학교 그레이스 아카데미 자문위원/미술강사
현)스타선교회 홍보사역
현)크로스인 대표/디자이너
응답이 없음은 - 욥 35:9-13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욥에게는 그 수많은 탄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현실이 몹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욥은 반복해서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하늘은 마치 육중한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욥은 하나님의 그 무거운 침묵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 대해 무심하시고 무정하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바로 이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비밀에 대해 말합니다.

학대를 받아도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9절).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학대가 끊이질 않고 군주들의 횡포도 쉼 없이 계속됩니다. 따라서 억눌린 자들의 비명과 탄식과 호소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 하나님의 침묵이 사람들의 곤궁에 대해 무관심하셔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욥 자신의 교만과 공허한 말들이 하나님의 침묵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고 했습니다. 실로 죄는 기도를 막습니다. 죄가 마음에서 계속 곪게 놔두면 더 이상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기도의 결과를 바란다면 반드시 개인적인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요일 1:9)며 죄 고백이 바로 성공적인 기도생활의 필수 조건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어디 계시냐고 묻는 자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10절).
야고보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3:2)고 했는데 지금 이 대목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바로 기도 응답을 실종시킨 주범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실 태세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며 묻거나 찾지 않고 있습니다. 갈수록 기도하는 사람이 줄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데도 기도는 더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시 78:34). 그런데도 실제로는 환난과 압제를 통해 유익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강제하고자 함에도 정작 환난에 이끌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어디에 있느냐>, <싼 물건이 어디 있느냐>는 열심히 물어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 이는 드문게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또한 이 시대의 안타까움이고 비극입니다.

교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12절).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드물까요? 결국은 그게 다 교만 때문이라는 게 엘리후의 고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없애시기 위해 환난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낮추기는커녕 환난 아래서도 더욱 악하게 굴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죄악을 품고 교만한 심령으로 기도하면 절대 안 들어 주십니다(시 66:18).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죄가 가득함이라>(41:15).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고(시 10:17),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자에게 그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손이 짧거나 귀가 둔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진실하고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유보하고 계신다는 사실, 헛된 것, 위선적인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오직 중심을 살피사 진실한 기도만을 들어주신다(13절)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꼭 기억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