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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대화하기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성에게는 좋은 통화의
창구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 주고, 어떤 상담도 할 수 있으며, 가장 적절한 해답을 던져 주는 대화의 방법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말씀하고,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김병삼·오태현의 [행복한 여행]
중에서-
언제나 어디서든지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하지만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렵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에 주고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궁금중에 대한 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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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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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 693 |
내가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빛을 주고 꿈을 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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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수 현)백석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현)기독교 대안학교 그레이스 아카데미 자문위원/미술강사 현)스타선교회 홍보사역 현)크로스인 대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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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보라 - 욥 35:1-8 |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 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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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똑바로 설 수 있는, 그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란 뜻의 헬라어
<안드로포스>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게 바로 짐승과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우러러 살지 않는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하늘의 만상들, 즉 해와 달과 별
따위를 우러러 보며 경배하지만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그만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2절).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의를 스스로 과시하는 말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하늘을 우러러 자기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게
엘리후의 기본 신념입니다. 그럼에도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32:2)함으로 엘리후를 화나게 한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욥은 <내가 악하다면 화가 있을 것이지만>(10:15), 의로울지라도 화를 당하고 있다면 그 의가 내게 대체 무슨 유익이 된단
말이냐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다>(시 73:13)고 했습니다. 역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말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고 했습니다. 이 어찌 어김없는 진실 아니겠습니까?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보라!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5절). 엘리후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며 높이 떠 있는
구름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구름은 우리보다 훨씬 위에 있고 또 하나님은 그런 것들보다도 더 높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실은 우리의 죄나 그 어떤
의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죄나 의로 인해 일희일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의 가장
흉악무도한 죄인들도 하나님께는 그 어떤 피해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하나님의 크심과 영광을 말해 줍니다.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6절). 죄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말씀은 맞지만 죄 마저도
막상 하나님을 대적하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나 완전하심을 멸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그 권능과 통치하심으로부터
끌어내릴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을 방해하거나 그분의 계획과 의도를 좌절시킬 수도,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광을 훼손할 수도 없습니다.
솔직히 욥이 삶을 고치고 오늘 우리가 새로워진다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이 이득을 보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우리 자신이 복될 뿐임을 깊이
깨달을 일입니다(7절).
그대의 공의는 다른 인생들에게도 있다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8절). 악은 사람들의 전유물입니다. 사람만이 죄를 짓고 악을 생산하며 마귀와 수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의로우시며 악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공의가 있습니다. 사람은 공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상대적이고, 죄악으로 인해
많이 손상되고 퇴색되긴 했어도 여전히 공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으로 생색을 내거나 공치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그런 공의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욥이 자신의 의를 내세우거나 오늘 우리가 자신의
공의로움을 과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전혀 온당치 못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어도 겸허하게 회개해야 옳고, 비록
공의로울지라도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진솔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참되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높으심과 우리
인생들의 낮고 천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며 더욱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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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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