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敎育.學事 關係

관광 명소 하버드 대학 이야기/ 趙甲濟

鶴山 徐 仁 2012. 5. 10. 00:45

관광 명소 하버드 대학 이야기
기금이 320억 달러.
趙甲濟   
 나는 1996~1997년 사이 미국 매사추세츠州 캠브리지市에 있는 하버드 대학의 중견기자 연수 프로그램인 니만 팰로우에 등록, 청강생으로 이 대학의 맛을 본 적이 있다. 1636년에 세워진 하버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돈이 많은 대학이다. 각종 대학 랭킹에서 하버드는 '미국 1등' '세계 1등'으로 평가된다. 시간과 돈과 학문이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이 대학은 基金이 세계 1등인데 2008년 말 현재 369억 달러였다가 금융위기 때는 120억 달러를 날렸다. 작년에 320억 달러까지 회복하였다. 웬만한 나라의 外貨보유고 수준이다. 이 基金을 관리하는 회사가 하버드 메니즈먼트 캄퍼니이다. 한때 이 회사의 임원 6명이 받은 봉급은 2680만 달러, 국제투자를 담당하는 전무는 연봉 640만 달러였다. 연간 예산은 약40억 달러, 한국돈으론 약5조원이다(서울대는 약7000억 원).
 
 하버드 야드라고 불리는 교정은 관광코스인데 특히 한국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존 하버드 동상 곁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하버드라는 이름은 400여 권의 책과 779 파운드를 기부한 목사 존 하버드에서 딴 것이다. 하버드 대학은 목사들을 양성하는 神學대학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초창기엔 청교도 정신을 建學 이념으로 삼았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을 모범으로 삼아 대학을 운영하였는데, 이 대학이 있는 소재지 이름도 캠브리지라고 붙였다. 일부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영국의 캠브리지가 1등, 하버드가 2등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캠퍼스가 아름다운 대학 50개를 뽑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하버드는 11등이었다. 에머리, 다트머스, 노틀담, 인디아나, 시카고, 해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프린스턴, 듀크, 예일, 코넬, 스탠포드 등이 꼽혔다. 뉴잉글랜드 지방은 단풍으로 유명한데 10월 초의 하버드 단풍도 일품이다.
 
 오바마를 포함, 8명의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 출신이고, 7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이 대학에서 학생이나 교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62명이 이 대학 출신인데 이 분야에서도 세계 제1이다. 교수가 2100명, 학부학생이 6700명, 대학원생이 1만4500명 정도이다. 약1500만 권을 소장한 80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와이드너 도서관이 가장 크다. 100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죽은 와이드너라는 졸업생의 어머니가 기부한 350만 달러로 지은 도서관이다(장서량은 美의회 도서관에 이어 2위).
 
 지금까지 총장은 27명, 평균 재임기간은 14년이다. 2007년부터 하버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인 드루 질핀 파우스트가 재임중이다. 하버드 학생들 중 백인은 42%(국민 평균은 66%)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출신이 17%(국민 평균은 4.3%)이다. 기숙사비를 포함한 연간 등록금은 약4만9000 달러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한국인으로선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재필의 의학박사 제외하고). 30대 초반이던 미래의 建國 대통령은 그때 이미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면담하고, 미래의 미국 대통령인 프린스턴의 우드로우 윌슨 총장의 총애를 받았다. 이런 학력과 경력이 자존심의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와이드너 도서관 맞은 편엔 추모교회(The Memorial Church)가 있다. 1932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교회 겸 戰死者 추모시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 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에 참전하여 戰死한 하버드 졸업생들의 이름이 벽에 새겨져 있다. 동판에 새겨진, 한국에서 戰死한 하버드 졸업생은 17명이었다.
 
 미국 CIA 국장을 오래 지낸 알렌 덜레스는 獨子를 두었는데 이름이 알렌 메시 덜레스 2세였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면서 公職者의 길을 준비하고 있던 중 6.25 남침전쟁이 터지자 해병대에 지원, 장교로서 한국戰線에 배치되었다. 최전방에서 싸우다가 머리에 총상을 맞고 영구적인 정신장애자가 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은 1997년에 '알렌 메시 덜레스 51년 賞'을 제정하여 국가를 위하여 봉사한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아들은 공군조종사로 참전, 북한지역을 폭격하던 중 실종, 戰死처리되었다. 밴 플리트는 부하들에게 아들에 대한 수색이 度(도)를 넘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셀던 도드 아이젠하워도 장교로 참전하였다. 아이젠하워가 195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아들은 한국전선의 미군 전투 대대에 배속된 소령이었다.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戰線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휘관에게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사단본부 근무로 옮겼다. 장군을 아버지로 둔 미군 장교 130여 명이 한국전에 참전, 3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렇게 높은 死傷率은 이들이 위험한 일선 근무를 자원하였기 때문이다. 
 
 
[ 2012-05-10, 00:05 ]